VPF 둘러싼 560억대 소송 이긴 소니코리아…포렌식이 결정적 [장서우의 판례 읽기]

2025. 8. 3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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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영사기 보급사들 “VPF 덜 줬다” 소송
재판부, 원고 측 증거 이메일 등 ‘위조’ 결론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한 영화관. 사진=뉴스1



56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소니코리아가 3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1심에서 승소했다. 극장에 디지털 영사 시스템을 보급하는 업체들과 ‘디지털 영사기 사용료(VPF)’ 정산 방식이 달라 빚어진 갈등이 화근이었다.

원고 측에서 증거로 제출한 이메일이 위조된 것이란 사실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소송은 소니코리아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민사소송에서 증거의 위조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된 이례적인 경우로 포렌식을 통한 디지털 자료의 진정성 규명 작업의 중요성이 확인된 선도 사례로 평가된다.

 

 “계약서대로 정산 안 했다”며 소송 제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7민사부(이승원 부장판사)는 씨네허브, 더디씨에이치, 디씨엔씨 등 3개 사가 소니코리아를 상대로 약 560억원의 손해를 물어내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 7월 11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원고 측 3개 사는 극장에 디지털 영사 시스템 관련 인프라를 보급하는 업체들이다. 디지털 영화 상영에 필요한 네트워크와 서버, 프로젝터 등 장비를 공급해 주고 시설비 개념으로 VPF를 걷어 수익을 낸다.

영화계에 VPF가 처음 등장한 건 2008년이다. 한국 극장 산업을 주도해 온 CGV, 롯데시네마 등은 2007년 필름 대신 디지털 파일로 영화를 상영하는 ‘디지털 시네마 사업’에 본격 착수하면서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배급사에도 부과했다.

필름 인쇄 값이 사라진 대신 ‘가상의 필름(Virtual Print)’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분담하자는 취지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당 일주일 동안의 상영 횟수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소니코리아는 VPF 징수 과정에서 디지털 영사기 보급사와 배급사 간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 원고 측 회사와 같은 업체들이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면 소니코리아가 배급사로부터 VPF를 대신 징수하고 이 중 수수료를 뗀 나머지 금액을 정산해주는 식으로 수익을 배부하는 구조였다.

영사기 보급사 입장에선 메이저 배급사를 비롯해 수십 개에 달하는 군소 배급사들로부터 일일이 VPF를 걷는 데 인력도 노하우도 부족했기 때문에 형성된 관계였다. 원고 3개 사가 소니코리아와 VPF 징수 위임 및 수익 배분 계약을 맺은 건 2012~2013년이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22년 10월 이들 회사는 소니코리아가 자사에 정산한 VPF가 계약서상 비율에 따라 계산한 금액에 못 미친다며 차액만큼을 손해배상액으로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소니코리아와 1차 계약을 체결한 이후 VPF 계산 방법의 세부 사항 등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일부 수정한 2차 계약이 있었고, 소니코리아가 바뀐 방식을 따르지 않고 VPF를 잘못 계산해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法, 손배 청구 근거된 계약 성립 불인정

소송의 쟁점은 원고 3개 사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2차 계약’의 존부였다. 원고 3개 사가 손해배상액을 각 2억원씩 총 6억원으로 일부 청구했다가 약 560억원까지 대폭 늘린 근거였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소니코리아에서 VPF 징수 대행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으로부터 받은 ‘2차 VPF 징수 위임계약서’의 스캔본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소니코리아 측은 해당 증거가 위조된 것이라고 맞섰고 이 주장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졌다.

원고 측이 낸 이메일이 본문 내용이 수정되거나 첨부파일을 ‘바꿔치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작됐다는 것을 입증해 내면서다. 재판부는 소니코리아가 원고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출한 이메일이 원본을 추출한 것이고, 원고 측 증거는 진정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소니코리아 측이 계약 체결 당시 오고 간 PST 파일(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프로그램에서 이메일, 일정, 연락처 등 데이터를 저장하는 파일 형식)의 해시값을 명시해 증거 수집 기록에 기재한 점이 주요 근거가 됐다. 이 해시값이 포렌식 분석 결과 보고서상 해시값과 동일하다는 데 기초해 재판부는 “데이터가 변경됐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2차 계약서에 날인된 소니코리아 측 인장이 계약 체결 당시 소니코리아가 사용하고 있던 등록 인감 중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도 법원 판단에 주요하게 작용했다. 소니코리아 측은 인영의 동일성 유무에 대한 감정 결과가 불일치로 나온 것을 증거로 냈다.

무엇보다 원고 3개 사는 2차 계약서의 원본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관리 대상 계약서가 너무 많아 원본 보관을 포기하고 대부분 스캔본을 보관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개별 배급사, 극장과의 계약이 아닌 VPF 전반에 관한 내용인 데다 해당 계약에 따라 (원고들이) 받은 VPF가 최고 100억원에 이르는 바, 이런 중요 문서를 단순히 보관 또는 관리가 어려워 원본이 없다는 주장은 쉽게 믿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 3개 사는 1차 계약서의 문구 수정 등을 소니코리아 측에 제안한 뒤 협의를 거쳤다고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2013년 6월 21일경 2차 계약서 초안에 관해 협의하던 중 6월 28일 (원고 3개 사 중 한 곳이) 1차 계약을 체결하고 다시 7월 3일 2차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그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며 원고 측 주장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에서 제출한 2차 계약서의 진정성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원고와 피고 간에는 해당 계약에 따른 어떠한 법률관계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다. 계약 자체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따라 소니코리아가 원고 3개 사에 VPF를 과소 지급했다는 주장도 기각됐다.

원고 3개 사는 존부에 다툼이 없는 1차 계약서상 계산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소니코리아가 VPF를 과소 정산했다고 주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조회되는 ‘과거의 극장별 상영 내역’에 기초해 일주일간 최대 상영한 회차를 42회로 특정하고, 상영 중 피고와 사전 합의 없이 상영관이 이동된 경우 VPF 징수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데, 소니코리아가 이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고 측에서 주장하는 VPF가 정상적이란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돋보기]
 

 민사소송서 디지털 증거 진위 다퉈진 드문 사례

이번 소송에서 소니코리아 측이 원고 측 주장을 전부 기각시킬 수 있었던 데는 세밀한 포렌식 기술이 크게 작용했다.

원고 측에서 증거로 제시한 이메일의 작성 일자가 10여 년 전인 2013년이었기에 송·수신인의 기억에만 의존해선 위조 여부를 규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니코리아에서 VPF 징수 업무를 사실상 독점했던 직원이 퇴사 직전 관련 자료를 일괄 삭제한 것도 소송 대응을 까다롭게 만든 요인이었다.

해당 직원은 리베이트 의혹으로 소니코리아로부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됐는데, 수사 과정에서 원고 3개 사 중 한 곳과 자신이 세운 개인 회사 간에 약 17억원 상당의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이 소송 전체를 기획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소니코리아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디지털포렌식팀은 형사 소송에서 주로 활용돼 왔던 디지털 자료의 증거 능력에 관한 법리에 입각해 증거 이메일들을 엄격한 절차에 따라 대조·분석했다.

형사소송뿐 아니라 민사소송에서도 디지털 증거의 진위가 첨예하게 다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원고 측이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가게 됐다.

태평양 송무팀의 문성호 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는 “이메일 위조 여부에 대해 원고 측은 1심과 같은 주장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신들이 제출한 이메일이 원본임을 주장하는 근거는 포렌식의 일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2심에서도 이 부분을 재판부에 충분히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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