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정훈탁 2025. 8.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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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내 고향 전남 강진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은 김영랑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국민 애송시를 지은 시인이다. 대학에서 현대시를 배울 때 교수님께서 국민 애송시 세편을 들자면,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그리고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고 하셨다. 일제강점기에는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영랑이 있다는 말이 회자되었다고 하셨다. 김영랑 전집을 읽던 문학도 시절, 울림소리(ㄴ,ㄹ,ㅁ,ㅇ) 시어로 운율을 살린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좋았다. 햇발, 샘물, 부끄럼, 물결에 직유법을 사용한 것도 좋았다. 흔히 직유법은 관용화되어 신선함을 주지 못할 때가 많지만, 여기서는 참신해서 좋다. 이 시를 지을 때가 1935년이니 더욱 놀랍다. 직유법은 보조관념의 참신성이 보장되어야만 생명력을 얻는 표현이므로 끊임없이 새로운 보조관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영랑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오늘따라 빛고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실비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