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끝나나요?… 신고도, 잠적도 소용없는 교제 폭력
동탄 사건 이후에도 살인 사건 계속 발생
“법 개정하고, 접근금지 감시제도 도입해야”

지난 5월12일 김씨는 동탄의 한 아파트 통행로에서 흉기에 무참하게 찔렸다. 가해자는 김씨의 지인이 마련해준 거처를 알아내 근처에서 잠복했고 김씨가 외출하기 위해 나서자 자신이 타고 온 렌터카에 강제로 태웠다.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양손은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머리에는 두건을 씌웠다.
그렇게 납치하고선 두 사람이 과거에 함께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 내리게 했다. 김씨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달아나자 뒤쫓아가 아파트 단지 내 주민 통행로에서 흉기로 무참하게 찔렀다. 가해자는 범행 후 아파트 자택으로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가 경찰에 첫 신고를 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경찰이 현장에 왔지만 김씨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연인 간 폭행은 형법에 따라 처리되는데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못한다. 반의사불벌죄다. 가정∙교제 폭력 피해자들은 본인 또는 가족에 대한 보복을 우려하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지난 2월 또다시 가해자를 신고했으나 경찰은 ‘단순 말다툼이었다’는 진술을 듣고는 현장을 떠났다. 그날 김씨는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당했다. 이런 신고가 9번이나 이어졌고, 김씨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600쪽에 달하는 고소장과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한달이 넘도록 고소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오히려 과거 김씨에게 지급했던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했고, ‘담당자가 교체된다’는 통보를 했다. 경찰이 고소인인 김씨를 마주한 건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사회적 공분을 산 이 사건 이후에도 ‘교제 살인’은 계속됐다. 지난 6월 서울 구로와 대구, 7월 경기도 의정부와 대전, 8월 경남 김해에서 5명의 여성이 전 연인 또는 스토킹 가해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 경찰에 수차례 신고한 바 있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7만790건이었던 교제 폭력 신고 건수는 2023년 7만7150건, 2024년 8만8394건으로 늘었다. 교제 폭력 검거 인원도 2022년 1만2828명, 2023년 1만3921명, 2024년 1만4700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에서 하루 평균 242건의 신고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형법이 적용되는 교제 폭력에는 이러한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 형법은 가해자에게 어떤 벌을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법률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계속 접촉할 수밖에 없는 생활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단순히 가해자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다고 보고 피해자 보호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 유럽처럼 △의무체포 제도 △접근금지 감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정폭력의 경우 공권력의 조치가 이뤄진 상태에서도 살해 당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한다. 현재 조치가 미흡하다는 방증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발간한 ‘동탄 납치·살인 사건으로 본 가정·교제폭력 대응체계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반드시 체포해오는 제도로, 미국과 영국, 호주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교제, 스토킹, 가정폭력 범죄에서 스마트워치 배포나 접근금지 명령만으로는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 가해자와 마주친 상황에선 스마트워치를 눌러도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가정폭력처벌법상 임시조치에 GPS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포함해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할 경우 즉시 위치를 확인하고 신속 대응할 수 있는 감시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탄 교제살인 피해자인 김씨는 살해 당일, 스마트워치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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