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에 빠진 세상 구하는 ‘희생적 돌봄’ [.txt]
격리 대상 좀비, 사회적 약자 연상돼
편견 넘어 ‘인간성’ 찾는 노력 필요
‘좀비만도 못한 인간 없나?’ 질문도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감염자를 즉각 사살하고 포상금을 걸어 감염자 신고를 독려한다. 그 결과, 감염자 수가 급감하면서 국가적 재난 사태를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지만 좀비 치료제 개발과 보급은 요원해서 근본적 해결 상황에는 이르지 못한다. 한편, 동물원에서 맹수 전문 사육사로 일하는 ‘정환’(조정석)은 하나뿐인 딸인 ‘수아’(최유리)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함께 고향인 응봉리로 내려가 어머니 ‘밤순’(이정은)의 집에 숨어 지낸다. 수아는 여타의 좀비처럼 공격 본능을 그대로 내보이며 정환과 밤순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수시로 달려든다. 좌절하던 중에 수아가 춤 연습을 위해 듣던 곡에 반응을 보이자 정환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기에 그녀가 아직 인간이라고 확신하며 희망을 갖는다. 또한 좀비는 야생 동물에 비견되며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야생성을 억제하고 사회화가 가능하다. 수아는 정환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인간성을 조금씩 찾아간다.
원래 좀비는 ‘살아 있는 시체’로 불리는 만큼 몸을 움직이지만, 생명 유지를 위한 신체 활동은 부재하다. 인간을 덮쳐서 물어뜯지만 그것은 식욕과는 무관한 반사적 행동이다. ‘좀비딸’이 구축한 좀비 세계관의 차별점은 좀비가 인간의 음식을 먹고 숨을 쉬며 치료와 훈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좀비는 기억력 회복을 위해 치료와 뇌의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한 기억상실증이나 알츠하이머 환자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훈육을 받아야만 하는 발달장애인을 떠올리게 한다. 정환은 기억세포가 자극을 받으면 바이러스 수치가 줄어든다는 의학적 근거를 찾아내며 수아에게 익숙한 음악을 들려주고 추억이 새겨진 사진을 보여준다. 또한 수아가 사람을 물지 않도록 훈련하고, 진한 화장과 콘택트렌즈로 좀비의 외양을 가린다. 이처럼 정환은 수아를 위해 지극한 돌봄을 실천하는 주체가 된다.
반면에 정부는 통제와 치료가 불가능한 무차별한 공격성과 강력한 전염성을 좀비의 본질로 상정하며 그들을 격리 및 제거하고자 할 뿐이다. 통제 불능의 감염자는 감염되지 않은 국민 보호를 명목으로 사살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다. 본능대로 움직이며 인간을 위협하는 좀비는 언제든 죽여도 상관없는 벌거벗은 생명이다. 결국, 국민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찰나부터 더 이상 국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도 아니게 되며 따라서 당연히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
영화는 좀비가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는 전제가 편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편견을 부수기 위해서는 좀비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물론 그 전환의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좀비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생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차원을 넘어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인간성을 찾아내기 위한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를 위험에 빠트리는 이기적인 범죄 행위라는 지탄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국가적 위기를 담보하면서 법적, 도덕적 판단을 뛰어넘는 윤리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정환은 그 모든 지난한 일들을 견디며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간다. 강인한 의지의 기원은 딸을 지키기 위한 타협 없는 부성애이다.
영화는 심지어 인간이 좀비보다 더 비인간적일 수 있음을 가정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얼마나 인간의 보편적 외모와 행동 양식에 부합하느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정환과 수아의 대척점에 있는 수아의 친아빠가 그 명백한 예시이다. 연락을 끊고 살던 그는 자식을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아내려고 한다. 애초에 그 신고가 국가의 안위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빚 갚기라는 사적 이득을 목표로 했기에 그를 정의로운 국민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또한 군인들의 위협에도 친딸이 아닌 수아를 끝까지 지키고자 한 정환과 대립되는 인물이다. 비록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만 가족애의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감지하고 있는 수아와도 분명 다르다. 돈에 눈이 멀어 천륜을 저버린 친아빠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실격이다. 말 그대로, 좀비만도 못한 인간이다.
포기를 모르는 정환의 희생 덕에 수아는 살아남는다. 마침내 좀비는 인간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치료와 훈육이 필요한 인간이자 국민의 일원으로 거듭난다. 나아가 수아를 지키기 위한 정환의 몸을 사리지 않는 노력은 의도치 않게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날 백신 개발의 단초를 마련한다. 이로써 돌봄은 파국적 상황을 타개할 최선의 윤리적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좀비를 보살핀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만큼, 의무 이상의 무한한 돌봄뿐만 아니라 법의 경계를 초월한 위법적 돌봄까지 실천할 각오를 요구하는 돌봄의 극한 영역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좀비딸’은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할 무엇보다 강력하고 근원적인 동력이 희생적 돌봄의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우화로 다가온다.
김경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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