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 ⑻ 떠나자! ‘PCT 트레일 데이즈’로

아웃도어 용품 마니아인 남편은 이미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트레일 데이즈의 참여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8월에 들어서면서 트레일 데이즈 참여를 위해 걷는 일정을 조정해 왔다. 그러나 늘 그렇듯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아서 오리건 주 중간에 있는 도시 벤드(Bend)로 내려와 7시간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했지만 말이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여행을 잠시 멈춘 것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한 친구는 이 행사에 가기 위해 7번 히치하이킹을 했다고. 심지어 반대편 오리건 주 입구 마을인 애쉬랜드(Ashland)에서 온 하이커도 있었다.
우리는 모든 행사를 빠짐없이 보고 싶어 목요일에 마을에 도착했다. 오후 4시경 마을에 도착해 서둘러 텐트를 친다. 행사 참가는 무료였지만, 행사장 근처에 텐트를 치는 것은 유료였다. 총 3박 4일간 머물 예정인 우리는 한 사람당 50달러씩을 지불해야 했다. 늘 산에서 공짜로 캠핑하다 보니 100달러가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입장 팔찌를 받았다.

목요일에는 전야제 파티가 열렸다. 미국식 파티는 처음이었기에 너무나 설레고 신기했다. 마을 중심의 선더 아일랜드 브루잉(Thunder Island Brewing)이라는 수제 맥주 회사와 함께한 이번 파티는 역시나 기대 대로였다. 맛있는 햄버거, 맥주, 음악과 사람들이 어우러지니 여행의 고됨이 씻겨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림보 게임도 해봤다. 한껏 흥이 올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신나게 춤도 추며 림보 바를 넘었다. 안타깝게 상품은 놓쳤지만 재미는 충분했다.

행사 당일은 새벽부터 비가 내려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안개비 수준의 것이라 아침에는 비를 맞으면서도 무료로 나눠주는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메뉴는 늘 그렇듯 팬케이크에 소시지, 달걀이었지만 말이다.
12시 30분이 되어 문을 연 행사장에는 텐트, 가방, 워터 필터, 침낭, 신발 등 각종 유명 장비 브랜드의 부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티커, 카라비너, 에코백 등 기념품도 한가득 받았다. 다음날 한국으로 짐을 부칠 예정이라 무게에 대한 걱정 없이 이것저것 선물을 신나게 받으니 금세 두 손이 가득해졌다. 샌들을 준다는 말에 모르는 하이커들끼리 짝을 이뤄 콩주머니를 차는 이벤트에도 참가했다. 한국인이 제기를 차듯 이들은 ‘해키색(Hacky sack)’이라는 콩주머니를 차고 논다고. 처음인 듯 아닌듯 무척 어려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팀원들과 신나게 몸을 움직이니 웃음이 절로 났다.

다행히 토요일에는 날씨가 맑게 개었다. 덕분에 텐트도 무료로 수리를 받을 수 있었다. 부서진 폴과 구멍 난 바닥, 고장 난 지퍼를 고쳐야 했다. 지금 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비가 자주 오는 워싱턴(Washinton) 주에서는 또 모를 일이었다. 바닥과 지퍼 수리는 간단했지만 폴은 교체용 부품이 없어 수리가 어려웠다. 그나마 추후에 우편으로 새것을 보내준다는 고마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종종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가방에 대해서도 브랜드 디자이너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녀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등판을 써보면 어떻겠냐며 선뜻 무료로 제품을 제공해 주었다. 나 말고도 여러 친구들이 이렇게 가방이나 텐트, 옷 등을 무료로 받아 인삿말로 어디에서 무엇을 받았냐고 서로 자랑하듯 이야기를 나눴다. 또, 전날 눈여겨 봤던 가방이나 이어폰 같은 제품도 할인된 가격에 저렴하게 구매해 장비도 교체했다.

오후에는 각 브랜드에서 여는 경품 추첨 행사가 활발했다. SNS 팔로우나 설문조사를 거치면 경품권을 주는데 이때 제공하는 선물이 50~60만 원 정도의 판매용 가방, 침낭 같은 것들이라 모두들 이 시간이 되면 부스 앞에 장사진을 치고 모였다. 우리도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25달러짜리 작은 손수건 하나만 겨우 당첨되고 말았다. 아쉽지만 이게 어디냐 싶기도 했다. 주최 측이 진행하는 전체 경품 추첨 행사는 이 축제의 메인 코너였다. 우리는 장당 2달러에 판매하는 경품권을 기분만 내자는 생각으로 10달러치, 5장만 재미 삼아 사두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번호가 불릴까 조마조마하게 손에 땀을 쥐며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는 행사 내내 박수만 열심히 치고 왔다.

밤에는 마지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마지막 DJ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작 시간인 8시에 마트에서 사 온 먹을 것들을 챙겨 피크닉 구역에 가니 음악소리가 크게 울리며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삼삼오오 모이고 있었다. 취하니 영어가 평소보다 편하게 나와 하이커 친구들과 대화도 제법 나눴다. 왜 꼭 취하면 이러는지.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다시 분주해졌다. 다시 우리의 일상인 하이킹 코스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올 때와 같이 7시간을 걸려 돌아가는 우리나 더 멀리 떠나는 친구들에게 언제 만날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지내라며 아쉬운 인사도 나눴다. 달력을 보니 귀국까지 30여 일 남짓.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이벤트는 캐나다 국경 도착뿐이다. 가방과 신발 끈을 단단하게 조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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