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재앙인 줄 알았는데 운명적 마주침이었다 [.txt]

한겨레 2025. 8. 3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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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책 l 고전학자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전 리라이팅’ 기획으로 만난 열하일기
‘우정·유머·유목’으로 사유하는 법 배워
이분법과 제도권 탈피하는 ‘리셋’ 계기
고미숙 작가. 한겨레 자료사진

그해 겨울 나의 일상은 꽤나 분주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대학로에 진출한 후 주방, 책방, 탁구 등 여러 활동이 시작되었고 그 대부분을 내가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회원이 들어오면 공부방의 책상을 분양(?)해 주곤 했는데, 회원이 늘면서 나는 차츰 외곽으로 밀려나다가 결국은 출입문 입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드나드는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각종 활동을 조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다 보니 궁둥이를 붙일 시간이 20~30분 안팎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짬짬이 원고를 작성했다. 구체적인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다음 해(2003년) 1월쯤 마감을 했고, 3월 말에 책이 나왔다.

‘그게 가능한가?’라고 묻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때의 나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이었다.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공동체가 부과한 임무였다. 그때 ‘수유+너머’의 저자들과 다방면으로 교류하고 있던 출판사 그린비에서 ‘고전 리라이팅’이라는 기획으로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해 왔다. 서양 고전이 주를 이루었고, 간간이 동양 고전이 포함되었는데 그중에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내 몫으로 할당된 것이다. 처음엔 ‘재앙’이었다. 나는 조선 후기 사설 시조, 잡가 같은 소위 ‘딴따라’ 양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한문학의 정수인 ‘열하일기’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운명적 마주침’에 순응했다. 얼떨떨한 상태로 ‘열하일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별 감응이 없었다. 두번, 세번. 네번째쯤 독파했을 때 나는 텍스트에 깊이 스며들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44살의 나이에 청나라 건륭황제 만수절 축하 사절단에 끼어들어 함경도 의주에서 출발하여 만주 벌판을 지나 연경까지, 다시 연경에서 고북구 장성을 넘어 열하 피서산장으로 가는 여행기다.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한여름에 출발하여 가을에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지음, 그린비(2003)

나는 그 여행기에서 세 가지 키워드를 발견했다. 우정과 유머와 유목! 연암 박지원은 진정 소통과 교감의 달인이었다. 그 미학적 무기는 유머. 그는 늘 웃거나 웃겼다. 스스로를 ‘소소 선생’(스마일 샘)으로 칭했을 정도다. 사대부 명문가 집안에 당대 최고의 문장가한테 어떻게 이런 캐릭터가 가능하지? 그 철학적 원천이 바로 유목이다. 그의 철학은 ‘사이에서 사유하기’다, 이분법을 벗어나 주자와 양명, 장자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늘 예기치 않은 배치를 만들어냈다. 물론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당시 내가 ‘지식인 공동체’를 시작할 때 세웠던 비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게 연암이 내게 선사한 메시지인지 아니면 내가 열하일기를 ‘내 멋대로’ 해석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그해 겨울 나는 ‘그렇게’ 썼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인가. 원고 때문에 힘들거나 조급했던 기억이 전혀 없다. 나의 시선은 오롯이 공동체의 활동이 제대로 순환하는가, 어떻게 해야 사람과 사람, 지식과 지식을 연결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그래서 원고를 쓰는 시간이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힐링 타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의 습관은 이후에도 이어져 지금도 20~30분에 한번은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좀 분주하게 글을 쓴다. 철저히 ‘생활형’ 저자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첫 책’은 아니다. 고전문학 연구자로서 낸 책도 있고 설익은 ‘문학비평집’도 있고, ‘한국의 근대성’을 스케치한 책도 있다. 30대, 엘리트 지식인, 20세기적 계몽주의 등이 그 책들을 둘러싼 배치였다면, 이 책을 쓰면서 나의 행로는 완전 ‘리셋’되었다. 40대에 접어들었고, 제도권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고, 더 근본적으로 20세기적 계몽주의와도 결별했다. 명리학적으로 보면 대운의 변화와 함께 큰 변곡점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첫’ 책이다. 2003년에 나왔으니 무려 22년 전이다. 그사이에 출판사가 바뀌고 재작년엔 20주년 리커버판이 나왔다.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았다!’

고미숙 고전학자

그리고 다음 책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그린비 출판사가 기획한 ‘호모 시리즈’ 중의 하나. 청소년들이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생기발랄한 10대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가 실상을 알고 나서 ‘깜놀’했다. 입시 지옥이 스펙 천국으로 바뀌면서 진짜 ‘헬-게이트’가 열리는 중이었다. 공부의 즐거움, 지성의 기쁨 따위는 없었다. 하여, ‘공부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삶과 생명의 원천인지’를 꼭 알려주고 싶었다. 이 책 덕분에 전국 중·고등학생 수천명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공동체의 비전에 ‘청년과 세대 공감’이란 키워드가 부상하게 되었다.

그린비(2007)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40대 초반 병이 들었다. 그즈음 공동체 멤버 가운데 한의대 본과를 다니던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과 병에 대해 상담하다가 ‘동의보감’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몸이 곧 자연’이라는 사실, 삶이란 ‘생리와 심리, 윤리의 삼중주’라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경이로웠다. 동시에 ‘풍요 속의 피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쓰면서 인문학과 의학의 장벽을 넘어서는 ‘짜릿함’도 느꼈고, 나아가 인생과 세계에 대한 ‘효능감 넘치는’ 지도를 갖게 된 ‘뿌듯함’도 누렸다.

북드라망(2012)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낯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제티비시(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한 적(2017년)이 있는데, 그 강의를 듣고 연암 박지원이 ‘백수의 원조’라고 한 이야기가 귀에 맴돌았다고 한다. 담당 편집자가 청년이었고 눈빛이 하도 진지해서 거절하는 게 더 부담스러웠다. 덕분에 연암의 생애와 우리 시대 ‘청년 백수’라는 이슈를 교차시키는 책을 쓰게 되었다. 연암이 또다시 내 인생에 ‘슬그머니’ 끼어든 것이다. ‘백수는 미래다!’ - 이것이 이 책의 구호다. 이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는 독자들을 만날 때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프런티어(2018)

청년 붓다

50대 이후 내 공부의 지평은 동의보감에서 사주 명리로, 다시 주역으로 이어졌다. 그다음 스텝은 자연스럽게 불교다. 불교의 이치는 심오하고 광대무변하다. 하지만 초입자로서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붓다의 생애 자체였다.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붓다의 신비로운 카리스마가 아니라 생기 넘치는 ‘리얼리즘’이었다. 특히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마침내 그 길을 찾아내는 전 과정은 12살에서 35살 사이, 즉 혈기왕성한 청년기에 이루어졌다. 이 사실을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북드라망(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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