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평범해지고 싶어요”…죄책감에 세상 등지는 생존자들

한겨레 2025. 8. 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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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회차 공개]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
참사 생존자는 기쁘지 않다, 무섭고 외롭다
1995년 6월29일 저녁 5시57분께,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사고 직후 강남소방서, 서초경찰서 등 관내 행정 관공서의 전화가 시민들의 폭주하는 신고로 불통됐다. 관공서 관계자는 물론 취재기자들조차 이 소식을 믿지 못했다. 이 사고로 502명이 죽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유대계 이탈리아인 가정에서 태어난 화학자 프리모 레비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 종전과 함께 기적적으로 생환한 그는 후대에 홀로코스트를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아우슈비츠를 증언했다. “망각은 반복을 낳는다”며 생존자의 증언 책임을 강조하면서 왕성한 집필, 강연, 인터뷰를 이어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살했다.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대학에서 활발하게 강연을 하고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전문가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끝내 지워지지 않는 아우슈비츠 트라우마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리모는 죽기 전해에 쓴 마지막 책에서 말했다. “우리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더 나은 사람들이 죽었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죄책감·허무감에 세상 등지는 생존자들

프리모 레비와 함께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증언자’로 불리는 철학자 장 아메리, 독문학 역사상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파울 첼란 등 수많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생존에 성공한 뒤 자살했다.

한국에서도 참사 생존자들에게 ‘자살’은 너무 가까이 있다.

이태원에 함께 갔던 친구 두 명을 잃은 고등학생 생존자는 참사 한 달여 만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김초롱 작가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아몬드)에서 이태원에서 살아남은 뒤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과 분투하며 무너진 일상을 다시 쌓아 올리는 지난한 여정을 그렸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푸른숲)는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살아남은 뒤 3차례의 자살시도와 오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저자의 처참하리만큼 고통스러운 생존 기록이다.

트라우마의 가장 큰 문제는 다시는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트라우마는 발을 딛고 서 있던 세계를 통째로 붕괴시킨다. 땅바닥도 나침반도 방향계도 다 사라져버린다. 무너진 폐허 위에 홀로 서 있는 고립감, 수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불가해함, 결국 모든 것을 우연과 운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허무감, 남은 생도 알 수 없는 힘에 내맡겨졌다는 공포감은 극심한 우울과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

“미친 듯이 평범해지고 싶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활인’이라는 감각으로 살아간다면, 이들은 ‘생존자’라는 감각으로 살아간다. 그것은 매 순간 생과 사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간절히 되찾고 싶어하는 것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이다.

‘나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저자는 고백한다. “나는 한평생 소망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일상을, 남들이 지루해 마지않는 생, 매일 아침 눈을 떠 따박따박 회사에 가고, 그저 그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고 돌아와 씻고 눕는 그 단순한 일상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의 작가는 정신과 의사에게 애원하듯 말한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미친 듯이 평범해지고 싶어요.”

무엇보다 이들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것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때론 자기 혐오로 치닫고 자기 혐오는 일상을 망치도록 방조한다. 김초롱 작가는 죄책감 때문에 오랫동안 침대에서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네가 감히 침대에서 잠을 편하게 자느냐’는 내면의 질책이 끝없이 올라와서였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네가 살아서 참 다행이야” “너는 운이 굉장히 좋구나” 같은 말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다. 그 말은 그들을 곧장 죄책감의 벼랑 끝으로 몰아버린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결혼을 약속하고 이를 준비하며 이태원에 들렀다가 예비 신부를 잃은 남자는 바로 곁에서 예비 신부가 선 채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가는 모든 과정을 목격했다. 그는 공청회에서 말했다. “사람들은 제게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채 혼자 살아남는 것은 다행인 일이 아닙니다.”(‘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중에서)

그런 점에서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을 시작한 ‘나는 생존자다’ 시리즈의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 편을 보면, 당시 생존자에 대한 몰이해는 가히 충격적이다. 언론은 앞다퉈 이들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말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10배 100배 열심히 살 것’을 종용하며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 있다. 그래서 그 고통은 좀처럼 이해받지 못한다. “네가 살아서 다행이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잊어야지 어떡하겠어” 같은 말은 생존자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각을 새기며 그들을 외롭고 고립된 존재로 만든 뒤 끝내 생의 가장자리로 내몬다.

가장 큰 위로 “밥은 먹었어? 답장 안 해도 돼”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책에서 생존자의 고통을 친구와 가족도 몰라주는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프리모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밤 거듭해서 꾸던 악몽이 있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아우슈비츠 수용자들도 비슷한 꿈을 꿨다고 한다. 꿈 내용은 이렇다. 프리모가 생환 뒤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수용소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상냥하게 답한다. ‘굉장했겠는걸!’ ‘심했겠는걸!’ ‘힘들었겠는걸!’ 그러나 대화는 곧 끊어지고 그들은 프리모 얘기를 건성으로 들은 뒤 화제를 돌린다. ‘오늘 밤 식사는 뭘로 하지?’

프리모는 이 꿈에 대해 생환 뒤에 마주할 무서운 고독을 예견하는 꿈이었다고 말한다.

5·18민주화운동부터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 세월호, 이태원까지 우리 사회엔 무서운 고독과 마주하고 있는 생존자들이 너무나 많다. 김초롱 작가는 책에서 자신에게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을 전한다. “밥은 먹었어?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봤다. 답장은 안 해도 돼. 나만 보낼게. 자주 생각하고 있으니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거창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존자를 고립시키는 무지와 몰이해는 없없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였던 한 소방관이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이태원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소방관으로서는 두 번째 희생이다. 참사가 없는 그곳에서 더는 외롭지 않기를,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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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후 afterthislif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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