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명목을 찾아서] (21) 흥덕왕릉과 안강송(安康松)…사별한 아내 그리워한 로맨티스트 왕, 차나무 심기도

흥덕왕은 신라 제42대(재위 826년~836년) 왕으로, 능은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번지에 있다. 능의 규모나 묘제, 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찾는 사람보다 능원(陵園)의 아름다운 숲과 아랍인 석상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그해 아내 장화부인(章和夫人, 훗날 정목왕후 定穆王后로 추봉)을 잃었다. 신하들이 새 왕비를 맞아들여야 한다고 하였으나 "새가 짝을 잃어도 슬퍼하는데 어찌 사람이 짝을 잃었다고 곧 다시 아내를 맞겠느냐."라고 하면서, 시중드는 여자도 가까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사별한 왕비를 그리워하다가 나중에 함께 묻힌 유일한 군주라는 점이다. 이런 지극히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이 뭇 부부의 동경의 대상이라고 한다.

이외 그는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해 중국, 일본과 교역을 확대함으로 나라 재정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능 앞쪽의 소나무를 두고 조경수 업계는 '안강송'(安康松)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소나무의 유전적인 형질은 모두 같다. 그러나 자라는 곳의 지형이나, 토양, 기후 등의 영향을 받아 수형이 약간씩 달라 대체로 5종류로 분류한다.
첫째가 금강송이다.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울진까지 분포하고, 특징은 줄기가 곧고, 옹이가 없으며 속이 붉으면서 재질이 좋아 황장목(黃腸木), 또는 춘양목(春陽木)이라 하여 궁궐을 짓거나 보수하는데 사용하였다. 최근 숭례문 복원에도 쓰였다.

셋째는 동북형으로 주로 함경남도나 강원도 북부지역에 분포하며 줄기가 곧게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넷째는 중남부 평지형이다. 서해안 특히, 서산 일대에 많이 분포한다. 줄기가 곧고 수관이 잘 발달되어 모아 심으면 경관적 효과가 커서 대구의 2·28 중앙공원에도 심었다.
다섯째 위봉형이다. 주로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 분포한다. 전나무와 비슷하게 자라며 성장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 5개 유형은 조경가가 나무를 심을 때 입지에 적합한 수형을 선택할 때 통칭(通稱)되는 이름일 뿐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이름은 아니다.
흥덕왕은 대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명찰 동화사 창건기에 의하면 "493년에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심지 왕사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 그러나 극달화상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이 붙여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심지의 중창을 실질적인 창건으로 보는 것이 보통의 견해이다."라고 했다.
즉 동화사의 실질적인 창건주는 심지 왕사이다. 이 심지 왕사는 흥덕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제41대 헌덕왕(憲德王)의 아들이자, 흥덕왕의 조카이다. 재위 10년 흥덕왕이 대를 이을 자식을 두지 아니하고 죽으니 이후 왕좌(王座)를 차지하기 위해 골육간에 치열하게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 전쟁터가 경주가 아닌 달구벌로 839년(민애왕 2) 정부군 10만 병사가 반란군 수천 명에게 참패해 왕조가 몰락했다. 이 전투가 달구벌에서 있었던 최초의 큰 규모의 전투이다. "동화사비로암3층석탑(보물)"은 863년(경문왕 3) 대구 전투에서 패퇴해 경주에서 시해(弑害) 된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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