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는 정상이 아니다? [콘텐츠의 순간들]
3년 전 〈비밀남녀〉라는 연애 리얼리티쇼가 있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모든 출연자가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데이트에 임한다는 포맷이었다. ‘프랜차이즈 주점 운영’ ‘장기 연애 경험 보유’ ‘장거리 연애 불가’처럼 그리 대수롭지 않은 비밀들 사이에서 나를 사로잡은 비밀은 티나의 ‘남성 기피증’과 데이빗의 ‘모태솔로’였다. 둘은 호감형 외모로 처음부터 많은 관심을 얻었지만, 데이트 때마다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고, 내내 겉돌기만 하다가 종국엔 화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두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던 나는 방송 내내 화가 났다. 플러팅 기술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핀잔을 주고, 서툰 화법 탓에 선택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건 연애 경험 없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성이잖아? 이럴 거면 경험 단계를 고려해서 리그를 분리하든가!

나의 그런 바람이 하늘에 닿아 ‘루키 리그’가 탄생했다. 넷플릭스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솔연애〉)는 2030 세대 내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로맨스 서사의 중심이 된 적은 없었던 ‘모태솔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애 리얼리티다. 방송은 출연자들이 ‘왜 모태솔로인가’를 진단하면서 시작한다. 스토킹 피해로 오랫동안 마음의 문을 닫았던 지수,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경험해 연애를 주저했던 지연,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수적인 가치관 때문에 연애를 거부했다는 승리, 의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만 하다 연애할 시기를 놓쳤다는 현규. 이들이 스스로 밝힌 이유 속에는 젠더에 따른 격차가 느껴지지만, 〈모솔연애〉는 각자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출연자들을 ‘연애 초보’라는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것에 집중한다.

〈모솔연애〉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모솔’의 원인은 ‘남중·남고·공대·군대’ 혹은 ‘여중·여고·여대’라는 한국 사회 특유의 분리된 성장환경이다. 출연자들은 성별로 나뉜 울타리 안에서 적절한 사회성을 기르며 제 몫을 해내는 성인이 되었지만, 이성과 마주할 땐 극도로 긴장하며 소통을 회피하려 든다. 이들에게 ‘연애’란 부자연스러운 과제이자 성취의 대상이다. 상호는 자신에게 호감을 표했던 여성 출연자 지수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감정과 취향을 묻는 기본적인 대화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면서 “연애에 ‘성공’하고 싶다”라는 말만 인터뷰에서 반복한다.
수치심과 담력의 힘
〈모솔연애〉는 출연자들의 이런 서툰 모습들을 부각하며, 시청자가 ‘코칭’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좋아하는 상대인 여명 앞에서 실수를 거듭하다 풀숲에 엎드려 숨은 재윤, 데이트 상대로 선택받지 못해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 해먹에서 추락하는 상호, 평소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사랑이란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도와 민홍,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정목과 지연. 시청자는 이들의 모습에서 미숙함과 천진함을 느끼고 마음껏 훈수를 두면서 그로부터 쾌감과 안도를 얻는다. ‘모태솔로’라는 놀림과 계몽의 대상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인 것이다.
스튜디오 패널과 시청자들은 보편적 연애 담론을 기반으로 출연자의 말과 행동을 세세하게 평가한다. 특히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저래선 안 된다” “여성 출연자가 한 말을 잊다니 말이 되느냐”처럼, 남성을 계도 대상으로 전제하는 반응이 두드러진다. 표면적으로 남성에게 여성을 배려하라는 코칭처럼 보이지만, 오직 연애라는 영역에서만 여성에게 강자의 위치를 허용하는 관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애를 둘러싼 담론에서 남성은 보통 여성의 비위를 맞춰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된다. 〈모솔연애〉라는 특수한 포맷 안에서 여성 출연자들은 마치 남성을 위한 행동 모델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숙한 여성에게도 연애 코칭을 하자’는, 균형 맞추기가 아니다. 중요한 건 연애 경험의 횟수가 인간의 성숙을 보장하진 못한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모솔연애〉의 코멘트에서 느낄 수 있는, ‘연애에 정답이 있다’는 태도나 ‘모태솔로는 분명 문제가 있다’ 같은 시선은, 오히려 여성에게 족쇄가 된다. 기존 연애 담론이 고착시킨 성역할이 사랑의 규범이 된다면, 연애는 차별이나 불평등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역할놀이로 한정돼 소모적인 갈등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모솔연애〉의 후반 에피소드에서 재윤은 여명에게 사실 자신의 마음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거짓을 고해서 관계를 망친다. 하지만 재윤은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 대화와 편지로 적극적인 사과를 한다. 재윤의 말에 상처를 받아 크게 흥분했던 여명 역시 그 사과로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하게 밝힌다. 이들의 어떤 점이 서툰가? ‘모태솔로’라는 사실이 이 성숙한 관계의 흠결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흔히 ‘모태솔로’를 성별 갈등의 주범 혹은 결과로 취급한다. 그러나 남들의 규격에 맞추지 못해 자신을 서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모태솔로’들에겐, 스스로를 수없이 다그칠 수 있는 부끄러움과 타인의 시선에 길들지 않은 담력이 있다. 어쩌면 그들의 그러한 수치심과 담력이 ‘정상’이라는 허상을 좇으며 생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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