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만드는 데 최소 ‘억’···기업들 줄서는 '이것' 만드는 남자 [강홍민의 굿잡]

2025. 8. 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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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 디자이너’ 임창섭 산돌연구소 팀장

진지한 ‘궁서체’, 딱딱한 ‘돋음체’···일반인들이 떠올리는 글씨체라고 하면 한글이나 워드 파일에서 고를 수 있는 몇 개의 종류만 떠올린다. 단순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만 인식해오던 글씨체가 언젠가부터 ‘폰트’로 명칭이 바뀌더니, 이제는 기업(브랜드)의 마케팅 전략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1020세대에서는 독특한 폰트로 다이어리 등 자기만의 공간을 꾸미거나 특이한 디자인의 폰트가 마니아층을 형성해 팬덤이 만들어질 정도다.

폰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폰트를 만드는 디자이너들도 새삼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극소수만이 한다는 ‘폰트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폰트를 만들기 위해 적게는 2,500자, 많게는 12,000자가 넘는 글자를 한 땀 한 땀 손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국내 유일 폰트를 만드는 폰트 전문 기업 ‘산돌’에 인턴으로 입사해 팀장자리까지 꿰찬 임창섭 산돌연구소 팀장을 만났다. 그를 통해 디자인 실력은 물론,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마케팅 촉까지 장착해야 하는 ‘폰트 디자이너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임창섭 산돌연구소 팀장



폰트 디자이너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2017년도에 입사했으니 올해로 8년차가 됐네요. 인턴으로 들어와서 팀장이 됐으니 시간 참 빠르네요.(웃음)”

‘폰트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새로운 폰트를 만드는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저희 직업을 원초적으로 표현하자면 ‘글자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지털 환경에서 표기되는 글자는 모두 ‘폰트’라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출력되고 있어요. 하나의 폰트 파일에 적게는 2,500자, 많게는 12,000자가 넘는 글자가 들어 있는데, 이 폰트에 들어가는 모든 글자의 형태, 위치, 쓰임을 만드는 게 폰트 디자이너의 역할인 거죠.”

참여한 프로젝트 중에 우리가 알만한 폰트도 있나요.
“대표적으로 ‘지마켓 산스’, ‘배달의민족 을지로체’, ‘산돌 클레어 산스’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고요. 지금은 폰트를 연구하는 산돌연구소에서 팀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폰트에도 종류가 있는 걸로 아는데, 폰트의 종류와 몇 종의 폰트가 시중에 나와 있나요.
“폰트를 유통방식에 따라 나눈다면 기업이 의뢰한 폰트를 제작하는 ‘커스텀 폰트’와 자사에서 직접 기획·제작하는 ‘리테일 폰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커스텀 폰트’는 보통 기업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저희 회사에 의뢰해 제작되는 방식인데, 기업 방향에 따라 기업 내에서만 사용할 수도, 마케팅을 위해 고객들에게 무료폰트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어요. ‘리테일 폰트’는 일반 사용자의 니즈에 맞게 산돌이 직접 제작한 폰트로 일반 사용자들도 산돌의 폰트 플랫폼 서비스인 산돌구름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폰트 디자인에 따라서도 나눠진다고요.
“크게 ‘부리(세리프·Serif)’와 민부리(산세리프·Sans-serif)로 나눌 수 있는데요. ‘부리형’은 세로획을 아래로 긋기 시작할 때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아래로 조금 긋다 수직 아래로 내려 그을 때 생기는 꺾인 표현이 있을 경우 부리로 분류합니다. ‘민부리형’은 획의 아웃라인은 부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획의 뼈대로 생긴 형태가 아닌, 쓰기 도구 표현이나 장식 표현의 형태는 민부리 또는 디스플레이 형태로 표현해요. 줄임말로 ‘산스’라고 부르죠.”

임창섭 폰트 디자이너가 이해를 돕기 위해 '강홍민의 굿잡'을 폰트별로 만들었다(본인 제공)



현재 유통되고 있는 폰트의 종류는 몇 종이나 되나요.
“현재 저희 플랫폼인 산돌구름에서 사용 가능한 폰트 종수는 2만 여종 정도이고, 산돌이 직접 제작한 폰트는 942종입니다.”

생각보다 많네요. 요즘에는 기업에서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커스텀 폰트’의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나요.
“의뢰한 기업이 폰트를 만드는 목적과 방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에요. 설문조사 또는 워크숍을 통해 폰트 디자인의 방향성을 정하고,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저희가 제작한 시안을 기업에서 컨펌 하는 형식을 몇 차례 진행합니다. 이 시안이 통과가 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천 자의 글자를 하나하나 디자인하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되죠. 이 파생 과정이 끝나면 디자인 작업물을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파일로 제작하는 제너레이트 과정을 거쳐 하나의 폰트 파일이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의 폰트 파일은 버전도 한 개인가요.
“폰트 파일 하나에도 여러 종이 나올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목용·본문용과 같이 크기, 굵기에 따라 별도로 나눠 작업하기도 합니다.”

커스텀 폰트를 의뢰하는 기업들이 많나요.
“생각보다 많아요. 왜냐하면 기업 또는 브랜드에서 쓰는 폰트가 굉장히 많고, 그 폰트 하나하나가 브랜딩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색깔 있는 폰트를 기업이 원하죠. 그래서 한 번 의뢰한 후에 리뉴얼을 맡기는 곳도 있고, 모바일·PC 등 여러 버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어요.”

폰트 파일 하나를 제작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평균 3개월 정도 걸려요. 한글만 제작하는 게 아니라 영어, 라틴어, 일본어, 중국어 등 의뢰에 따라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한글만 해도 기본이 2,350자, 전체 한글을 제작할 땐 1만2,172자, 한자 기본은 4,880자나 되거든요. 문장부호만 해도 900여개를 제작해야 되니까 1년이 넘게 걸리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비용은요.
“비용도 프로젝트마다 다 다른데, 평균 하나의 폰트를 제작하는데 억대는 넘죠. 요청사항이 많으면 금액은 더 올라가고요.”

커스텀 폰트 의뢰를 받을 땐 제작 영역을 구체적으로 논의를 해야겠군요.
“그래서 사전 워크숍이 중요해요. 어느 부분까지 만들지, 시안은 몇 차례나 볼 지를 계약서에 꼭 명시해두죠.”



시안 횟수도 계약서에 명시하나요.
“예를 들어, 최종 시안까지 3회 또는 5회 시안 피드백을 주고받는다는 걸 계약서에 명시하게 돼 있어요. 만약 최종 시안을 받았는데 고객사에서 추가로 요청할 경우 비용은 추가되는 식이에요. 사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없었던 부분인데 고민 끝에 추가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조항이 없다면 추가 시안 요청이 일종의 고객사 갑질로도 이어질 수 있겠군요.
“그렇죠. 저희 입장에선 기간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마무리되는 시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시안을 추가로 요청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고객사의 결정이 미뤄지는 것도 저희한텐 굉장히 큰 리스크라 계약서 조항에 세부적인 일정을 추가로 넣고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 AI기술이 워낙 퀄리티가 높아져서 한 두 개의 글자를 디자인하면 자동화로 만들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나 보군요.
“일부 작업에선 AI 기술의 도움을 받지만 한 자 한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디자이너가 직접 다 확인을 해야 해요. 현재까지 나온 기술로는 자동화가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이후 과정은 뭐가 남았나요.
“작업물이 완성되면 언어에 따라 확인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어요. 쉽게 말해, 제작한 폰트가 포토샵에서는 잘 나오는데, 엑셀·워드파일에서는 안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이 과정을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와 함께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면 최종 마무리가 됩니다.”

하나의 폰트를 제작할 때 꾸려지는 팀 구성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통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리드가 정해지면 주니어급의 디자이너들을 붙이게 되는데, 이것도 상황마다 다 달라요. 왜냐하면 디자이너마다 평균 2~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니 다들 바쁘거든요. 보통 디자인 경력이 6~7년차 정도 되면 리드를 맡기는데, 팀을 잘 짜는 것도 디자이너의 영역이자 능력입니다.(웃음)”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오래 걸린 폰트는 뭐였나요.
“예전에 제가 엔지니어링을 맡은 SD 민부리 서체의 패밀리(종)가 굉장히 커요. 약 48종 정도 되는 폰트였는데, 중간에 수정되는 지점도 있어서 1년이 넘게 걸렸어요.”

폰트 디자이너를 하려면 디자인 전공은 필수겠네요.
“사실 폰트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디자인을 가르치는 국내 대학교는 많지만 폰트를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 않거든요. 폰트를 좋아하고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폰트를 가르치는 학원에서 배워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도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전문 학원에서 폰트를 접하고 배웠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직업적 허들이 낮아 보이진 않아요. 디자인 감각이나,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영역 같아 보여요. 폰트 디자이너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음···물론, 감각적인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한 개의 폰트 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걸 해 봤다는 건 여러 측면에서의 의미가 있어요. 이를테면, 폰트 제작 전문 툴을 사용할 수 있는지, 장기간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는 인내심, 즉 엉덩이 힘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죠.(웃음)”

시대별로 선호하는 폰트 트렌드가 있나요.
“저희 연구소에서도 폰트 트렌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미디어를 보는 디바이스에 따라 폰트의 크기나 스타일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문이나 잡지 종이매체가 성행하던 시절에 많이 쓰이던 폰트와 최근 TV나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보여지는 폰트는 확연한 차이가 있거든요.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 글자를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마케팅 방식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폰트 트렌드가 바뀌는 것 같아요.”

기존의 폰트와 새로운 폰트 구별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시안 단계에서 디자인의 방향이 대략 정해지면 기존 폰트에서 레퍼런스를 찾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특징을 가진 폰트들이 있는지를 확인하죠. 기존 폰트 스타일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도록 배제를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일반 디자인처럼 폰트 디자인은 특허출원이 가능한가요.
“아직 기준이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과거에 폰트 디자인 표절 및 도용 소송 사례가 꽤 있었는데, 디자인으로 인정되진 않았죠. 어떻게 보면 디자인 특허 분야에 폰트를 포함시키는 건 업계 과제인 셈이죠.”

좋은 폰트란 뭔가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좋은 폰트란 잘 팔리는 폰트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들어선 누군가가 쓰고 싶어 하는 폰트가 좋은 폰트가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취향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폰트를 쓰는 누군가가 만족한다면 좋은 폰트이지 않을까요.(웃음)”

근무환경은 어떤가요.
“저희 디자이너들은 고객사 미팅 외에는 사무실에서 폰트 작업을 하다 보니 일반 직장인과 비슷합니다.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은 있죠.”

직업병이 있나요.
“시대극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70년대 배경인데 최근에 만들어진 폰트를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폰트까지 신경 쓰기 어려웠겠지만 저 시대에 나오지 않았던 폰트가 떡 하니 걸려 있으면 집중이 안돼요.(웃음)”

폰트를 만든다는 건 창작의 영역이라 늘 영감을 받는 창구도 중요할 것 같아요.
“폰트를 다루는 해외 전문 사이트나 전문 서적이 있어요.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자주 보는 편이에요. 특히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는 기본적으로 제작해야 하는 언어라 어떤 형태로 제작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거든요.”

말씀하신 걸로 보면 아직까진 인공지능(AI)이 침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향후 폰트 디자이너의 비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저희 회사에서도 폰트 디자인 과정에 인공지능을 통해 작업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을 늘 고민하고 있어요. 특히 비효율적인 반복 작업 과정을 규칙화하고 이 중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다만, 모든 폰트 디자인 과정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긴 어렵다고 봐요. 전반적인 작업을 제어하고 디테일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해야 하는 영역이 필수적이라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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