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퇴직하거나…격무·악성민원에 스러지는 공무원들

김소영 2025. 8. 30. 08: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경남의 한 보건소에 근무하던 20대 공무원이 숨졌습니다. 숨진 공무원은 최근에야 '공무상 재해'를 인정 받았습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동료는 '악성 민원'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모두 한 보건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 어느 20대 여성 공무원의 죽음

전공의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회적 재난이 한창이던 지난해 2월, 20대 여성 공무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남의 한 보건소에서 긴급대응근무를 맡고 있던 김 모 주무관이었습니다.

김 주무관은 입직 3년 차부터 보건소 민원팀에서 근무했습니다. 동료들은 고인이 자주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증언합니다.

"공무원들이 하는 게 뭐가 있냐…이렇게 욕하고 짜증을 냅니다. 한번은 민원인이 대리처방 해줘 해줘 해서 00이가 안 된다고 여기에 불법이라고 쓰여 있지 않냐면서 손가락으로 안내를 했는데 어린 X이 삿대질을 한다면서 소리 지르고 해서. 참냐, 안 참느냐인 것 같아요. 00이는 참는 아이였고..." (민원팀 동료)

김 주무관은 민원팀에 적응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납니다. 격무 부서로 불리는 의약팀이었습니다.

"저도 공무원이거든요. 12월이 다 되어가는데 조달청 물건 사는 거랑 공무직 4대 보험 신고하는 걸 나한테 물어보고 하길래. 컴퓨터 있을 때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6개월 만에 갑자기 발령이 났다는 거예요. "(김 주무관 어머니)
숨진 김 주무관의 이모가 쓴 경찰 진술서


■ 과중한 업무에 악성 민원이 부른 비극

김 주무관은 2024년 1월 1일 자 발령을 불과 사흘 전인 2023년 12월 29일 통지받았습니다. 금요일이었습니다.

통지 이튿날인 12월 30일 토요일과 31일 일요일엔 출근해 초과 근로를 하며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습니다.

맡은 업무는 약국 등록과 휴폐업, 사고 마약류와 안마시술소 관련 업무였습니다. 복잡한 의료법과 약사법을 숙지해야 했고 행정 처분에 따른 부담도 컸습니다.

당시 의약팀 인원 5명 가운데 3명이 타 부서 전입자들로 생소한 업무를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김 주무관은 약사인 이모를 붙잡고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며 5년 전 폐업한 약국의 마약류 관리 기록 등에 대해 물어야 했습니다.

김 주무관은 특히 약사들로부터 고소 압박이나 항의를 들을 때 힘들어했습니다.

"엄마 고소당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거예요. 네가 만약에 죄가 없다면 무고죄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 그렇게만 말했어요. 엄마도 한번 일하다가 민원인이 고소한다고 하더니 안 하고 끝났다고. 하루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하면서, 그만두고 공장가면 안 될까…" (김 주무관 어머니)
노조가 작성한 ‘김 주무관 사망 사건’ 진상 보고서


의약팀 발령 3주 차부터 경찰에 출석해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 고발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야간에는 안마시술소 단속도 나갔습니다.

'전공의 파업' 기간에는 수시로 상황실 야근에 투입됐고 퇴근 뒤 비상대기가 이어졌습니다.

약사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하고 병원 파업 관련 동향 보고서 수시로 써냈습니다. 약사 면허 비치 불량, 무자격자 약물 제조 등 시시각각 처리해야 할 '국민신문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발령 첫 달 김 주무관의 초과 근로 시간은 65시간이었습니다.

"민원을 내시는 분들은 본인 한 명이겠지만 민원은 받는 공무원들은 여러 건이 모이잖아요. 주변 사람들도 워낙 바쁘다 보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들도 없었을 거고. 이 선택 말고는 다른 게 할 게 없구나라며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시는 거죠." (이현옥/경상남도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김 주무관의 사망은 동료들에게도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씻을 수 없는 자책감을 남겼습니다.

"월요일 출근을 안 해서 동료들이 집에 가서 지하 주차장에 차가 있는 걸 보고 집에 올라갔어요. 그날 갔던 직원들도 충격이 크고. 변사 사건이기 때문에 보건소 직원들도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내 코가 석 자라서, 그 정도로 마음이 곪아 있을지는…" (보건소 동료)
김 주무관이 일하던 보건소 의약팀


■ 순직 인정 뒤에도 악성 민원 여전…"진급 차단하겠다" 협박도

김 주무관의 순직 승인이 알려지고 보건소 동료들은 조용히 안도했습니다.

이들은 김 주무관이 숨진 직후부터 김 주무관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악성 민원'과 '업무 과중'이라는 노동 현실이 개선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김 주무관이 일하던 보건소 의약팀에서는 또 다른 '악성 민원'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정 모 주무관이 지난 7월 말 모 인터넷 언론사 기자로부터 협박성 발언을 들은 겁니다.

사건 당시 기자 A 씨는 보건소 사무실로 찾아와 정 주무관에게 모 요양병원에 가봤는지, 해당 병원에 영양사가 근무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정 주무관은 신분증 대조까지는 하지 못했다고 답했고 A 씨는 즉각적인 단속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쟁이 오갔습니다. 기자는 시장실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서장까지 나서 중재를 시도했지만 협박성 발언은 이어졌습니다.

기자: 철저히 내가 한번 보여줄게. 이런 사람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어 내가.
과장: 더운데 그만하시고. 충분히 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기자: 앞으로 참 힘들 거다. 봐라 내가 가만히 있는가.
과장: 더우니까 목이나 좀 축이시죠.
기자: 진급에 이름 올라왔다 하면 바로 차단시켜 버린다.

"일상적으로 반말하는 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몇 년 됐느냐, 보건직이냐. 어디 한번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라는 식으로 전체 직원들 앞에서 말씀한다는 거는 저희 조직 자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거기에 저는 엄청나게 모멸감이 들었거든요. " (피해 공무원)


■ "질병 공상 인정 기준, 현실화해야"

두 사건을 연이어 보도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공무원 사망 사건을 접했습니다.

7월 말 경남 고성소방서 소속 40대 소방관이 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소출동 소방관으로, 참사에 따른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당 소방관은 PTSD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소방관처럼 이태원 참사,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대형 재난과 관련해 공무상 요양 승인을 신청한 소방 공무원은 12명이지만 절반인 6건이 불승인됐습니다.

'불승인' 사례 가운데는 정신적 질환을 포함한 질병 신청이 5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질병에 대한 공상 인정 비율이 낮고, 그로 인해 병가 중 겪는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정신질환을 포함한 질병의 공상 인정 기준을 현실화하고 과도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합니다. (전국공무원노조 경남소방지부)

2023년 10월 ‘이태원 참사’

■ 죽거나 퇴직하거나…격무·악성 민원에 스러지는 공무원들

일하는 공무원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병' 수준이 아니라 '심리 재해'입니다.

"직무 스트레스 등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반응이 정신 또는 신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질환이나 자살 등과 같은 재해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실제로 정신질환 공무상 재해를 승인 현황을 보면 2022년 기준 재직자 만 명당 재해자 수가 산업재해와 비교해 11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악성민원과 업무 과중, 각종 재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재난관리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민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심리 재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집회를 하는데 한 청년 공무원이 단상에 올라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이 상황에서 죽거나 퇴직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정말로 청년 공무원의 실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권준/전국공무원노조 경남지부)

최근 정부는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했습니다.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극복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입니다.

공무원들의 죽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KBS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의 공무상 재해 신청은 146건입니다.

한 해 평균 36.5명의 공무원들이 공직 수행 과정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망자 가운데 '입직 5년차 이하'도 42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신청한 146건 가운데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경우는 45.2%인 66건에 불과합니다.

☞연관기사
‘악성 민원·업무 과중’ 20대 공무원 사망…순직 인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35151)

“업무 막막”…공무원 자살 순직 33% ‘입직 5년차 이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36648)

“진급 차단한다”…갑질에 우는 공무원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27337)

‘이태원 참사 소방관’ 공상 불인정…“제도 개선 필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43050)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김소영 기자 (kantapia@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