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쌀은 어디 가고, 쌀이 없다고? [취재후]

이수연 2025. 8. 30. 07: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드셨나요? 가정에서 소비하는 쌀이 줄어든 게 한두 해 일은 아닙니다만, 해마다 역대 최저치를 경신합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5.8kg였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먹는 거냐면, 152.9g에 불과합니다.

쌀 153g에 물을 부어 밥을 지으면 밥으로는 300g 정도 되니, 식당에서 주는 공기밥으로 치면 '한 그릇 반' 정도 양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보다 적게 드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밥은 하루에 한 끼 정도 먹고, 빵이나 면 혹은 육류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는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논도 계속 줄고 있고 쌀 생산량이 해마다 줄지만, 소비량 감소 추세를 따라잡을 수는 없어서 해마다 쌀이 20만 톤가량 남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쌀이 없다고 아우성이네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 쌀은 남는데, 쌀이 없다고?

1인당 쌀 소비량은 줄어들지만, 쌀 소비가 늘어나는 부문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체 부문에서 소비하는 '가공용 쌀'입니다.

1~2인 가구는 느는데, 이런 가구를 겨냥해 한때 잘 나가던 소포장 쌀 판매는 오히려 줄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소포장 쌀을 사다 밥을 지어 먹느니, 아예 햇반 같은 즉석밥을 사다 먹는 집이 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식구가 적은데 밥을 해서 오래 두고 먹느니, 바로 지은 밥처럼 먹을 수 있는 즉석밥을 간편하게 먹는 겁니다.

또한 떡볶이나 냉동 김밥, 냉동 볶음밥 등 다양한 쌀 가공식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출도 크게 늘고, 그만큼 가공용 쌀 소비량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33년이 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더욱 줄고, 가공용 쌀 소비량은 97만 톤까지 늘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가공식품에 쓴 쌀은 64만 4천 톤으로 2000년의 49만 2천 톤에 비해 31%가 늘었습니다.

1인당 쌀 소비도 주는데, 가공용이라도 쌀 소비가 늘면 좋은 거 아닐까요?

어떤 쌀을 쓰느냐가 문제입니다. 한쪽에서는 쌀이 남아돌지만, 한쪽에서는 쌀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기도 합니다.

■ "정부양곡 쓴 가공밥 5년 만에 4배로 늘어"

쌀 가공식품 시장이 확대되면서, 민간 양곡 대신 가격이 싼 정부양곡을 쓰는 물량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양곡은 뭘까요?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쌀과 정부가 사들인 뒤 몇 년째 보관 중인 묵은쌀, 이른바 '정부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공밥류'에 들어간 정부양곡이 2018년에는 1만 톤 수준이었지만 2023년에는 4만 2천 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가공밥에 들어간 쌀 가운데 정부양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에는 7.5%에 그치던 것이 2023년에는 23%까지 증가했습니다.

이 '가공밥류'에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즉석밥 종류와 냉동 볶음밥 등이 포함됩니다.

■ "가공밥 넷 중 하나는 수입쌀이나 묵은쌀"

정부양곡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요? 문제는 역시 가격이죠.

민간에서 구할 수 있는 산지 쌀값은 올해 1kg에 2,200원 선입니다. 보통 사람이 익숙한 20kg으로 따지면 4만 4천 원이죠.

산지 쌀값이 많이 내렸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나락을 구하기 힘들어 산지에서도 쌀 20kg에 6만 원씩 부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정부가 갖고 있는 2023년산이나 2022년산 묵은쌀은 1kg에 1,000원 선에 공급하고, 수입쌀은 이보다 더욱 저렴한 600원 선에, 업체들에 내줍니다.


쌀을 원료로 식품을 만드는 업체에서는 저렴한 쌀을 쓰고 싶겠죠. 묵은 쌀은 민간 양곡에 비해 단가가 반 이상 저렴하고, 수입쌀은 반의 반 수준이니까요.

냉동 볶음밥 뒷면이나 쌀 떡볶이 포장재를 보면 원산지가 표시돼 있습니다. 여기에 쌀의 원산지를 외국산, 미국산 등으로 표시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렴한 수입쌀을 원료로 쓴 제품입니다.

■ "즉석밥에는 정부양곡 안 준다…가공용 공급도 축소"

이렇게 가공산업 발전이 '남는 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커지자, 정부는 가공업체에 주는 정부양곡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정부양곡 의존도를 줄이고, 민간 양곡을 사서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을 발표하면서, 우선 즉석밥에 대한 정부양곡 공급을 제한하고, 이후 냉동 볶음밥 등에도 정부양곡을 주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떡까지는 아니어도, 우선 밥알이 살아있는 제품에는 정부양곡을 쓰지 말고 민간에서 쌀을 사서 쓰라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올해 시행 예정이어서, 올해 4분기부터는 즉석밥에 대한 정부양곡 공급을 끊고, 내년에는 '정부양곡' 냉동밥도 사라질 예정입니다.

연간 35만 톤가량 공급해 오던 정부양곡 가공용 물량도 점차 줄여서 2029년에는 30만 톤 수준까지 낮추기로 했습니다.

당장 올해는 34만 톤만 가공용으로 공급하겠다고 배정했습니다.

■ 잘 나가는 쌀 가공식품, 이제는 "원료 부족"

그랬더니 너도나도 아우성입니다. 올해 가공용으로 배정한 정부양곡 34만 톤은 다음 달(9월)이면 모두 소진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당장 10월부터는 쌀가공 공장 가동을 멈추고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산지쌀값이 많이 내렸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산지쌀값도 오름세여서 민간에서 쌀을 구하기 힘든 상황인 것도 이들의 어려움을 키웁니다.

하루에 쌀을 3톤씩 사용하는 쌀가공식품업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쌀은 9월이면 모두 소진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취재진이 찾은 경북 칠곡의 한 쌀 떡볶이 수출업체도 올해 정부에서 배정받은 물량은 이미 6월까지 모두 다 썼고, 다른 업체에서 겨우 물량을 끌어다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문은 늘었는데, 정부양곡 배정 물량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30%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진출을 위해 들여놓은 자동화 설비는 아직 가동조차 못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떡볶이 떡을 만들 원료인 쌀이 부족해서인데, 쌀이 그득해야 할 창고는 반 넘게 비어있는 상태였습니다.

■ 추석 앞두고 쌀 못 구해 '발 동동'

22일 국회에서 열린 '쌀 가공식품산업 발전과 식량안보' 토론회에는 쌀가공업체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10월이면 공장 가공을 멈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업체 520여 곳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게 되면 약 4천억 원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해외 수출업체 130여 곳은 수출 계약을 파기해야 할 상황이고, 추석은 쌀 가공식품의 최대 성수기인데 한해 장사를 망칠 상황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농식품부는 실제로 업체들이 필요한 양곡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수출을 위주로 하는 중소업체들에는 정부양곡을 공급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 다수확 품종도 키워야 한다? '가공용 쌀 생산 단지'가 대안 될까

토론회에서는 가공용 쌀 생산단지를 조성해서, 수량이 많이 나오는 쌀 품종을 전문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쌀을 적게 먹으니, 보다 높은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맞춰가겠지만, 가공식품 원료로 쓰기 위해 대량 수확이 가능한 쌀을 생산해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 기술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최고 수준입니다. 많은 국민이 '보릿고개'를 겪던 나라에서 통일벼라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해 굶주림에서 탈출한 역사를 가진 나라니까요.

K푸드 붐을 타고 해외에서도 김밥과 떡볶이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쌀 가공식품 산업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연관 기사]
“밥솥이여, 안녕” 쌀 소비는 줄고 즉석밥 소비는 늘고​(2025.08.18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32983

“다음 달이면 쌀 떨어져요” 쌀 가공업체 발등에 불(2025.08.18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32990

(촬영기자 조영천/ 그래픽 조은수 김지혜)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이수연 기자 (isuyon@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