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렌즈로 들여다본… 경제사상의 역사
불평등 향한 경제학자들의 인식 등 추적
사상가의 이론들 백화점식 나열서 탈피
인물의 생애·시대적 맥락 등 담아 설명
시장 결과 아닌 정책·이념 등의 산물 강조
불평등의 담론/ 브랑코 밀라노비치/ 이혜진 옮김/ 세종연구원/ 2만4000원


이에 비해 20세기에 들어 파레토와 쿠즈네츠는 불평등을 보다 중립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로 다뤘다. ‘파레토 법칙’으로 유명한 파레토는 ‘엘리트 대 대중’이라는 위계적 구도로, ‘쿠즈네츠 곡선’으로 잘 알려진 쿠즈네츠와 이후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에 이르러서는 개인 간 소득 격차를 중심으로 불평등을 분석했다. 이후 주류 경제학은 불평등을 점점 더 개인 간 차이로 정의하며 계급 개념을 경제학 논의에서 사실상 사장했다. 이로 인해 불평등의 원인은 정치·사회구조보다 교육 수준이나 도시·농촌 간 격차와 같은 내재적 요인으로 환원됐다.
책의 마지막 장은 “불평등 연구의 긴 암흑기”였던 냉전기를 다룬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던 시대. 불평등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주제로 여겨졌고, 양 진영 모두 경제학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활용했다. 동구권에서는 “공식적으로 계급이 사라졌으므로” 소득분포 연구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서구에서는 “계급은 사라졌고, 사람마다 자산이 다를 뿐”이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이 시기 경제학은 시장의 효율성과 균형을 강조하며 분배 문제를 사실상 회피했다. 불평등에 대한 경제적 사고는 계급에서 엘리트, 다시 개인으로 향했다.
그러나 불평등 연구는 21세기 초반 다시 활기를 띠었다. 냉전 이후 30년간 증가한 소득 불평등이 자명하게 드러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분배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되살렸다.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현대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불평등 연구를 부활시켰고, 연구의 영역을 확장했는지를 다룬다. 특히 피케티의 연구는 부와 비노동소득이 불평등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오늘날 불평등 연구는 시장에 초점을 둔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정치적 권력 구조까지 포괄한다. 젠더·인종 등 요소도 분석에 포함되며, 불평등을 단지 금전적 소득만이 아니라 더 넓은 차원에서 다룬다. 또한 한 국가 내 시민들 간 불평등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 간 불평등 문제로 관심이 확장되었으며, 이 분야는 밀라노비치 자신이 선구적인 역할을 한 분야이기도 하다.
책은 불평등이 단순한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정책과 이념, 정치 권력 선택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불평등이 다시 정치의 중심 주제로 떠오른 지금, 책은 경제학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중요한 이정표로 읽힌다.
여섯 사상가의 방대한 저작 속에서 소득 분배에 관한 핵심 관점을 정밀하게 추출해 불평등 담론의 계보를 그려내는 저자의 솜씨는 신묘하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주류 해석을 재조명하는 방식은 충분히 흥미롭다. 예컨대 저자는 매디슨 프로젝트 자료 등 최신 데이터를 활용해 애덤 스미스가 전 세게 불평등에 대해 매우 직관적 통찰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미스가 시장의 공정성과 부의 집중, 산업 독점에 대해 얼마나 우려했는지를 강조하며 ‘국부론’에 담긴 사상의 핵심 중 하나로 제시한다. 이로써 그는 스미스를 오늘날의 ‘좌파 경제학자’로 새롭게 해석해낸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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