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차이 한 잔이면 인도도 인생도 따뜻해진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먼센스] "왜 하필 인도야?" 나는 답했다. "국적기에 직항인데 비행기 티켓 50만원은 못 참지." 15년 전 인도행 비행기표 가격이 왕복 100만원이었으니 다른 여행지는 묻고 따지지도 말고다. 그런데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출발일인 4월 말은 인도 여행의 비수기다. 4월부터 9월까지 인도는 무더운 데다 비도 많이 내려 여행하기에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 북부의 맥그로드 간즈는 연중 우리의 봄가을처럼 선선하고, 설산으로 둘러싸여 매연 대신 상큼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사람들이 순해서 흥정하느라 온 에너지를 꺼내 쓰지 않아도 되는 여행자들의 낙원 같은 곳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도시로 더 알려져 있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를 탈출해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해발 1,700~1,800m에 있는 맥그로드 간즈에 가려면 다람살라라는 도시를 거쳐야 하는데,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다람살라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악명 높은 기차도 다니지 않을 정도의 산악 지대이고 비행기 노선은 드문드문 있다. 그래서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야간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인도 입성 첫날부터 덜컹거리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안전하게 코스를 짜도 변수가 생기는 게 여행이다. 인도는 더 그렇다. 고심 끝에 뉴델리에서 암리차르까지 비행기를 이용한 후 5시간 거리의 다람살라까지는 낮 시간에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물론 뉴델리로 돌아올 때는 야간 버스 당첨이다.
'순한 맛 카레' 암리차르
암리차르는 인도 북서쪽의 펀자브 지역에 있는 도시로, 시크교의 본산인 황금사원으로 유명하다. 황금사원은 MBC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2>에서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가 공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했던 곳이다. 역시 여행 초반에 암리차르를 선택하길 잘했다. 여느 인도 도시보다 깨끗하고 황금사원을 중심으로 둘러보기에도 좋아 '순한 맛 카레'라고 할 수 있다. 암리차르는 시크교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시크교는 카스트제도를 반대하며 창시한 종교인 만큼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내세운다.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시크교도인이다.
황금사원은 누구에게나 식사와 잘 곳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나는 모두 사양하고 무료입장의 혜택만 누리기로 했다. 줄지어 걸어가야 할 정도로 순례객이 많을뿐더러 인근에 편안한 숙소를 잡아놓았으니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특이한 점은 신발과 양말을 벗은 후 입구를 지날 때 꼭 물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발을 씻음으로써 몸을 정갈하게 하고 나쁜 기운을 씻어내는 것이리라. 또 터번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카프를 둘러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사원 안에 있는 큰 연못에서는 신자들이 물로 몸을 정화하고 있었다. 나도 연못 주변에 앉아 경내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은 거의 시크교도인이 된 것 같아 연못에 발이라도 담그려는 순간, 바로 관리자로부터 제지당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정화는 달라이 라마에게 맡겨야겠다.
TIP 국기 하강 쇼쇼쇼
암리차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와가보더에서는 오랜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기 하강식이 각 국민의 응원 속에서 펼쳐진다. 일종의 쇼다. 앙숙치고는 군인들의 퍼포먼스가 유쾌하고 분위기는 흥겹다. 우리나라와 북한도 판문점에서 이런 이벤트를 벌일 수 있을까?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국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숫자와 규모 면에서 인도가 파키스탄을 압도한다. 파키스탄도 마냥 밀리지만 않았는데, 외다리 기수의 무한 회전과 검은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기개가 만만치 않다. 양국의 군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동시에 기합을 넣는데 호흡이 30년은 같이 산 부부 같다. 쇼는 오후 5시부터 시작해 30분 정도 진행한다.

평온과 경건의 바이브, 맥그로드 간즈
맥그로드 간즈의 첫인상은 한 폭의 풍경화다. 인드라하르라는 설산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맑은 공기, 선한 사람들의 염원이 더해져 어디서도 보지 못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소가 지나가면서 똥을 싸기도 하고 좁은 골목길에 차가 엉켜 혼잡스럽기도 하지만, 기본 바이브는 평온과 경건이다. 원래 이런 곳에 티베트인이 망명해 온 것인지, 티베트인이 자리 잡으면서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달라이 라마가 설법하는 곳으로 유명한 남걀사원은 맥그로드 간즈에서도 가장 빛이 잘 드는 명당자리에 있다. 사원 맞은편에는 출라캉이라는 궁이 있는데, 여기에 달라이 라마가 기거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설법하는 날짜와 예약 방법 등을 확인했는데, 아쉽게도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설법회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달라이 라마 4세가 앉는 자리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긴다. 무엇이 나를 여기에 오게 한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매일 남걀사원에 갔지만 딱히 답을 얻지는 못했다.
남걀사원 주위에는 순례자의 길 코란이 있다. 길 곳곳에 불교 경전을 적은 알록달록한 천이 '결계'처럼 걸려 있어 분위기에 압도당하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사이를 산책할 수 있어 좋다. 물론 마냥 걷는 게 아니다. 수행자, 티베트인, 여행자 할 것 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마니차를 하나씩 돌리며 나아간다. 마니차는 티베트 불교 경전이라 할 수 있는데, 겉에는 만트라, 안쪽에는 경전이 적혀 있어 원통형 마니차를 돌리면 경전을 외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지나가기만 해도 외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기왕이면 1박 2일 추천, 트리운드 트레킹
맥그로드 간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트리운드 트레킹이다. 높이 2,875m의 트리운드는 난이도가 제일 낮은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하나다. 그럼에도 울창한 숲과 오솔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정상에서는 설산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아침에 출발해 오후에 돌아오는 하루짜리 코스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오후에 출발해 정상에서 일몰을 보고 밤에 별빛을 감상하고 아침에 일출의 감동까지 느끼는 1박 2일이 더 인기였다. 정상에서 텐트를 빌려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하산할 때 삼삼오오 친구, 연인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맥그로드 간즈의 핫 플레이스 같아 살짝 후회됐다.
정상까지 가는 2개 코스 중에서 다람코트를 거쳐 갈루사원, 매직카페, 정상으로 이어지는 왕복 코스를 선택했다. 시작부터 경사가 가파르지만 삼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길가에 사람 얼굴을 한 흰 원숭이가 앉아서 인간의 호들갑을 귀찮아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인도에서 본 소, 말, 개, 나귀, 까마귀 등은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제 삶을 사는 듯하다. 사실 갈루사원까지는 택시를 탈 수 있는데, 그랬다면 시간과 체력은 비축했을지언정 이런 풍경은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트레킹은 산 중턱에 있는 매직카페부터다. 이곳에서 준비해 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정상으로 향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1분마다 걷기를 멈춰 아무 데나 주저앉았다. 거기에 있는 게 소똥인지 말똥인지는 상관없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시간이 걸릴 뿐 목적지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산 정상은 그 모든 힘든 과정을 잊게 하고 보상해준다. 눈앞의 인드라하르는 다다를 수 없는 곳이면서도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36L 배낭에 등산화와 등산 스틱, 무릎 보호대를 챙겨 오길 잘했다.

TIP 김밥 먹고 차이 한 잔
맥그로드 간즈에서는 티베트, 인도 외에 이탈리아, 한국 음식도 쉽게 접할 수 있어 음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티베트인이 많다 보니 티베트 음식점이 가장 많다. 티베트식 만두인 모모와 수제비 템툭, 칼국수 툭파는 유명한 맛집이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개인적으로는 국물에서 조미료 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양까지 많아 대부분 남기기는 했다. 의외로 잘 맞은 음식은 카레 백반, 라시 등 인도 음식이다. 우유에 마살라 같은 향신료와 설탕을 듬뿍 넣어 끓인 인도식 밀크티 차이는 원래 좋아했다. 가격은 노상에서 파는 차이는 10루피(약 200원) 정도이고, 단골 카페는 20루피였으며, 암리차르의 스타벅스에서 마신 차이는 무려 350루피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차이 인심은 여전히 좋아 호텔에서 체크인을 기다릴 때도, 미용실에서 염색약을 바를 때도 "차이 한잔할래?"라고 한다. 한식당도 5~6개 정도 있는데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김밥, 라면 등 메뉴가 다양하고 먹을 만했다. 셰프는 대부분 네팔인이거나 현지인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글로벌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에도 기본적으로 김밥 메뉴가 있고,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라면을 판다는 점이다. 사랑 카페라는 한식당은 현지 젊은이들에게 인기인지 친구들끼리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고, 강남이라는 곳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분위기가 고급스러워 식당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글ㆍ사진 김민선(여행칼럼니스트)
하은정 기자 haha@seoulmedia.co.kr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