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불질렀다…엔 캐리 청산 공포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의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화색이 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이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면서 시한폭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미·일 금리 방향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상황은 ‘엔 캐리 트레이드’의 동시다발 청산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미국 국채나 신흥국 증권시장에 투자한 엔 캐리는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이었다. 지난해 8월 5일 한 차례 폭발한 이후 금융시장은 또다시 언제 터질지 노심초사해 왔다. 그러다 23일 잭슨홀 미팅에서 미국이 금리 인하를, 일본이 금리 인상 시그널을 내면서 타이머가 켜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일 간 금리 차가 좁혀지면 구조적으로 청산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이후 그해 7월 금리를 0∼0.1%에서 0.25% 정도로 인상했다. 올해 1월에는 0.5%로 올린 뒤 7월까지 4회 연속 동결했다. 그런데 24일 미국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례 콘퍼런스(잭슨홀 미팅)에 참석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는 금리 인상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저금리로 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는 구조적으로 자국의 금리가 오르면 투자자의 수익률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BOJ의 올해 통화정책회의는 다음 달 18~19일, 10월 29~30일, 12월 18~19일 세 번 남았다. 박상현 iM투자증권 연구원은 “다만 국채 금리가 많이 오른 데다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올라 있어 당장 다음 달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올해 초 1.1%대였으나 최근에는 1.6%대를 오르내린다. 2008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국채 금리가 뛰는 건 물가 상승 우려에 더해 일본 정부의 재정 건전성과 정치로 인한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여당인 자민당이 최근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확장 재정을 펼쳤던 자민당 정부의 정책이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국채 금리가 오르면 일본 채권에 대한 매력이 상승하기 때문에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할 유인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환율도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달러당 162엔까지 급락했던 엔화 가치는 현재 140엔 후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화 가치가 오르고 있는 만큼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해외 투자자가 상환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콘 자산운용의 클라우스 웨베 최고경영자(CEO)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고 BOJ가 4분기 금리를 올리면 엔화 가격이 달러당 140엔까지 오를 수 있다”며 “140엔이 마지노선인 만큼 엔화 가치의 흐름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가 많이 대거 유입된 신흥국 시장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금융위기 등으로 엔화 가격이 오를 때마다 신흥국은 통화 가치 급락과 국채 금리 급등 현상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8월에도 멕시코 페소화와 남아공 랜드화 등은 엔화 대비 약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엔화 매수 포지션을 축소한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는 “미·일 금리차로 인해 엔 캐리 트레이드는 마이너스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역시 자유롭진 못하다. 글로벌 금융시장 냉각에 따른 주가 하락이나 국채 금리 상승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주가가 내려가면 투자 여건이 위축돼 수출 기업의 투자·고용에도 부정적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이탈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은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캐리 트레이드의 범위를 보다 확대해보면, 과거 금융위기 사례와도 연계돼 있어 관련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미·일 간 금리 차가 좁혀진다고 해도 공격적인 엔 캐리 청산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재는 일본 자산을 정리해 자금을 옮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본 증시가 과열돼 자산 이동 타이밍을 재던 투자자가 많았지만, 현재는 미국·한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 전체가 고르게 강세인 만큼 지난해 8월과 같은 흐름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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