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건물은 그리스 신전처럼 지어라” 트럼프, 건축도 입맛대로

원선우 기자 2025. 8. 3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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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다시 아름답게” 행정서명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방 건축의 이상적 본보기'로 꼽는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1922년 완공된 이 기념관은 고대 그리스 신전을 본뜬 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한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향후 정부 청사, 법원 등 모든 연방 공공 건물을 고전주의 양식으로 짓도록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전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석조 양식으로 연방 건물을 지으라는 내용이다. ‘크고 아름다운(Big Beautiful)’ 것을 유독 좋아하는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인 2020년에도 같은 내용의 행정명령을 시행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폐기했다. 하지만 이번에 “연방 건축을 다시 아름답게(Making Federal Architecture Beautiful Again)”라는 구호로 ‘고전주의 건축 명령’을 부활시켰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서에서 “고전주의 건축을 통해 오늘날의 공화국을 고대 민주주의 선조들과 시각적으로 연결하겠다”며 “연방 건물은 공공 공간을 아름답게 하며, 인간의 정신을 고취하고, 미국을 고귀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인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이 백악관 등 워싱턴 DC 건물을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건축을 본떠 설계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정말 못생겼다. 끔찍하다"며 '최악 건축 사례'로 지목한 미 워싱턴 DC의 연방수사국(FBI) 본부 에드거 후버 빌딩. 1977년 문을 연 이 빌딩은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사용했다.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능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브루탈리즘 양식이다./미 의회 도서관

‘트럼프 스타일’의 고전주의 건축물은 백악관, 링컨 기념관, 국회의사당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건물이다. 장식 요소로 기둥과 돔을 적극 활용, 장중함과 위압감을 준다. 반면 트럼프는 단조롭고 투박한 느낌을 주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을 극도로 싫어한다. 대표적 브루탈리즘 건물인 워싱턴 DC 연방수사국(FBI) 본부(에드거 후버 빌딩)에 대해 트럼프는 과거 “너무 못생겼다. 끔찍하다”고 말한 바 있다. 1950~1970년대까지 유행한 브루탈리즘은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해 건물의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용성·기능성에 중점을 뒀다. 이날 행정명령서에서 브루탈리즘은 아예 ‘설계 거부 대상’으로 지정됐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하고 인기가 없던 현대 건축으로 파괴된 연방 건물에 아름다움과 자부심을 회복시키고 있다”고 했다. 명령서엔 건축 기준이 세세하게 명시됐다. 미켈란젤로, 팔라디오와 같은 르네상스 건축가부터 19~20세기 신고전주의 건축가들을 나열했다. 반면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적 건축양식은 “단편화, 무질서, 불연속성, 왜곡, 비뚤어진 기하학 및 불안정한 모습이 특징”이라며 ‘지양 대상’으로 규정됐다.

트럼프의 ‘고전주의 건축 명령’ 배경을 두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매가(MAGA) 문화 전쟁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WSJ는 “트럼프는 진보주의자들이 왜곡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시민 상징, 역사관에 대한 관점을 되돌리려고 한다”고 했다. 한편으로 화려함과 웅장함을 선호하는 트럼프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는 최근 자신의 집무실에 황금색 장식품을 대거 들이면서 “백악관을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처럼 만들려고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흩뿌려놓은 장식은 17·18세기 유럽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지적 깊이가 전혀 없는 단순 장식”이라고 했다.

미 건축계는 이번 트럼프의 ‘고전주의 건축 명령’이 1962년 사회학자이자 뉴욕주 상원의원이었던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이 만든 ‘연방 건축 지침’​을 폐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공 건축엔 최첨단 디자인이 반영돼야 하고, 정부가 획일적 양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깨졌다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WP에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퇴행적”이라며 “미의식과 창의성을 제한한다”고 했다. 인디애나대 고전학 교수인 엘리자베스 틸은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은 과거 빨강·파랑·금색 등으로 채색돼 있었다”며 “트럼프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축은 실제 고대의 원형도 아니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고전주의 건축을 선호했던 나치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등이 연상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난해한 건축’을 강요한 엘리트주의도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작가 사이먼 젱킨스는 가디언 칼럼에서 “트럼프가 또 헛소리를 할 수는 있지만 그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갖고 있다”며 “지도자가 미추(美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참신하다”고 했다.

☞고전주의 건축

고대 로마·그리스 건축을 이상화하며 계승하는 양식으로 기둥·아치·돔을 사용해 균형·안정·비례·위엄을 구현한다. 15세기 르네상스, 16세기 바로크, 18~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이 모두 고전주의 계보에 있다.

☞브루탈리즘(Brutalism)

1950~70년대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사용해 건물의 기능성·실용성을 극대화한다. 신의 영광이나 군주의 권력을 드러내려 했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모더니즘 건축의 한 갈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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