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는 곳 바로 옆에 전기차 충전시설…최근 5년간 '하자 분쟁' 2만건 폭주

배현정 2025. 8. 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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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사태 그 후 28개월…‘신축 포비아’ 확산
2023년 4월 29일,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 지하주차장이 붕괴해 불과 몇 달 뒤 입주민들이 드나들 공간이 한순간에 콘크리트 잔해로 변했다. 기둥 32개 중 15곳에서 철근이 빠졌고 콘크리트 강도도 기준에 못 미쳤다. ‘순살 아파트’라는 오명을 쓴 이 단지는 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했다. 국토교통부는 GS건설에 8개월 영업정지를 내렸고, 서울시는 품질관리 부실과 안전점검 불성실을 이유로 각각 1개월씩 추가 처분했으나 모두 집행은 멈춘 상태다. GS건설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지난 28일 서울행정법원이 안전점검 불성실에 대한 서울시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리면서 ‘중복 제재’ 논란이 부각됐다. 본안 선고는 시작됐지만 책임 공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건설 현장에 대한 믿음 역시 회복되지 못했다. 벽면에 균열이 가고, 빗물에 물난리가 나는 신축 아파트의 현실은 더 이상 특정 단지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 안전’에 대한 불신은 지금도 콘크리트 균열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하루 1t 가까운 물이 샌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33년간 가계부를 써가며 빚내 마련한 집인데, 이러다 무너지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합니까.”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자이아파트 입주민 A씨의 하소연은 신축 아파트에 대한 불안을 그대로 드러낸다. 2023년 2월 준공된 이 단지는 입주 3년 차임에도 누수와 슬래브(바닥판) 균열 등으로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A씨는 “처음엔 곧 고쳐지겠지 믿었지만, 2년째 땜질만 이어지니 언제 더 큰 사고로 번질지 두렵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도 “누수 지점 옆에 전기차 충전시설까지 있어 자칫 감전이나 화재로 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건설노동자 급증, 현장소통 차질
서울 동작구 지하주차장 누수 모습.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24일 찾은 흑석자이 지하주차장은 곳곳이 ‘누수 흔적 지도’처럼 변해 있었다. 주차 구역 일부는 붉은색 안전띠로 통제됐고, 바닥에는 대형 비닐 시트 위에 양동이와 플라스틱 통이 줄지어 떨어지는 물을 받았다. 천장 배관은 방수 테이프와 비닐로 덧대어져 있었지만 그 사이로 물방울이 흘러내렸고, 습기에 젖은 슬래브에는 길게 균열이 퍼져 있었다. 임시 조치로 버티는 듯한 현장은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동작구청은 최근 “누수에 따른 정밀안전점검”을 명령했지만, 후속 조치가 언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이 아파트는 GS건설이 시공을 맡았으나, 누수 민원이 집중된 커뮤니티 시설은 조합이 직접 발주한 고미건축이 지은 곳으로 하자 진단과 안전 위험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부분 보수만으로는 주민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대형 사고 후 정부와 건설업계는 “부실 시공의 고리를 끊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전국 곳곳에서 균열은 되레 깊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하심위)에 접수되는 하자 분쟁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하자 분쟁 건수는 2022년 4370건에서 2023년 4559건, 지난해 4663건으로 증가했다. 하자 판정 비율도 급증세다. 지난해 심사된 1774건 가운데 1399건(78.9%)이 실제 하자로 판정됐다. 불과 3년 전 49.6%에 불과했던 판정 비율이 이제 80% 가까이 치솟았다.
서울 강동구 신축 아파트의 복도 벽면 균열.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부실 시공 분쟁은 고급 주거단지도 비켜가지 못했다. 지난달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올파포) 아파트에서는 입주 8개월 만에 벽면 균열이 발견돼 정밀안전진단과 전수조사가 추진 중이다. 논란의 발단은 3단지 34층 복도 벽에 길게 난 수평 크랙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다. 일부 세대에서는 화장실 악취 민원도 제기됐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단지는 국민평형(전용 84㎡) 시세가 30억원에 육박하는 고급 아파트여서 논란을 더했다.

오는 12월 입주 예정인 서울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는 최근 건물 외벽의 탈락이 목격되며 잡음이 일었다. 지난 5월 입주예정자 커뮤니티에는 “104동 외벽 돌출부 하단이 깨져 있고, 105동도 군데군데 파손된 흔적이 눈에 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는 “겉모습도 부서져있는데, 안보이는 부분은 어떨지 가히 짐작이 된다”고 우려했다. 외벽 석재 건식 시공에 결함이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입주예정자협의회 관계자는 “외벽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보수 중에 있지만, 지하주차장의 누수와 도면과 다른 시공 문제 등도 제기됐다”며 “마감재로 덮어버리기 전에 하자 보수 여부를 확인하고 싶지만, 공식적인 결과를 전달받지 못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부실을 넘어 안전이 위협받는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입주를 시작한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더샵센텀하이브는 염분이 높은 물이 천장과 벽에서 흐르는 누수 현상이 발생했다. 이 건물의 지하 구조물은 상태평가 D등급, 종합평가 C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건축물의 결함이 심각해 긴급한 보수와 보강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현재 정밀진단에 따라 대부분 보수를 완료했고, 안전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내년 입주 예정인 아파트가 철거에 들어가는 초유의 사태도 일어났다. 대전 서구 관저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관저 푸르지오 센트럴파크’는 최근 일부 건축물을 철거했다. 지하주차장 기둥 등 주요 구조 부위의 콘크리트 압축 강도가 기준치(35MPa)에 크게 못 미치는 약 20MPa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일부 철거 후 재시공 과정에 있다”며 “예비 입주자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전체 전수조사와 입주 지연 문제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중(雨中) 타설은 콘크리트 품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원인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023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부실공사 119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한 민원 49건 중 19건(38.7%)이 ‘콘크리트 우중타설’이었다. 우천이나 혹한기에도 공사를 강행하면서 품질 관리가 뒷전으로 밀려난 탓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처음으로 우중타설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작업 조건과 관리 항목을 제시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수준에 머물러 위험한 관행은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다.

문제는 속도전이다. 건설노조가 지난 6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건설노동자 72.4%는 “공기 단축을 위한 속도전을 강요받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1.7%는 “대형 붕괴 참사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감리 보고의 실효성 부족도 부실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담합 혐의로 20개 건축사사무소에 시정 명령과 과징금 총 237억원 부과를 결정했다. 이들은 2019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조달청이 공공건물·공공주택 건설을 위해 발주한 감리 용역 입찰 92건에 대해 낙찰예정자를 사전에 정한 혐의를 받는다. ‘순살아파트’ 오명을 얻은 인천 검단신도시 AA13구역 감리업체 역시 담합으로 선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검단신도시 AA13구역 입주예정자는 “무너지도록 안전관리·감독을 했다는데, 어떻게 믿느냐”며 “정말 안전한 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콘크리트 더미가 치워지고 오는 10월 재착공에 들어가지만, 입주 예정자들의 가슴속 무너진 신뢰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입주예정자 D씨는 “완공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소식에 오히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며 “급히 지어 올린 집에선 살 수 없다. 전세라도 옮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하자 못 잡아내는 감리보고서도 영향
급증하는 외국인 건설근로자의 의사소통과 안전 인식 격차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2만9541명, 전체 건설근로자의 14.7%가 외국인이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 체류자까지 고려하면 체감 수치는 이보다 더 높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 전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투입되는 인력이 많아 법과 제도가 바뀌어도 현장에 닿지 않는 괴리감이 크다”고 말했다. 최원철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 역시 “요즘 식당 안내문이 5개 국어로 붙는 현실에서 품질과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의 울타리에도 틈은 존재한다. 법무법인 자하 우지연 변호사는 “2014년 대법원은 ‘하자 판단의 기준은 적법하게 변경된 준공도면’이라는 판례를 남겼다”며 “일부 시행사는 이 점을 악용해 사업계획 승인 도면과 실제 시공이 달라도 준공도면에서 흔적을 지우거나 공사에 맞춰 뒤늦게 변경해 원래 설계대로 시공하지 않아도 책임을 피할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건설사가 하자소송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2020년 3월부터 최근 5년간 국토부 하심위로부터 세부 하자 판정을 받은 건설사는 GS건설(1458건)이 1위, 대우건설(319건)이 6위, 현대건설(266건)은 10위였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일부 건설사는 차라리 소송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하자 하나하나를 고치기보다 법정에서 판결액을 지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근원적인 문제의 뿌리는 결국 안전을 비용으로 치부하는 구조다. 건설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용이 안전을 밀어낸다. 최저가입찰제도 아래 공사비를 최소화하면서 안전까지 담보하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 이후 건축비 급등도 신축 아파트 부실 논란과 맞닿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건설비 지수는 코로나 이전인 2020년 100에서 지난해 말 129.7로 뛰어, 불과 4년 만에 약 30% 가까이 상승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한정된 예산 안에서 비용을 맞추려다 보니 품질 관리가 후순위로 밀리는 상황이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현실 반영과 사회적 인식 전환 없이는 구조적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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