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삼키며 바다로 사라진 얼굴들”.. 사진이 다시 불러낸 해녀의 시간

제주방송 김지훈 2025. 8. 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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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작가 사진전 ‘섭지, 해녀우다!’
심연에서 노동, 춤이 되다.. 존엄의 얼굴이 관객과 마주한다
정혜원 作 ‘세기해안’ (2022)


# 바다는 언제나 푸르지만 그 푸름이 평온을 의미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살을 에듯 늘 차갑기만 한 바람.
파도는 한순간도 자애롭지 않았습니다.

그 안으로 숨을 삼키며 몸을 던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호흡을 붙잡은 채 심연으로 사라져간 얼굴들, 바로 제주 해녀였습니다.
그 얼굴은 여느 노동의 흔적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생존의 의지이자 존엄의 증거였습니다.

다시 그 얼굴들을 불러내며 묻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사진가 정혜원 작가의 전시 ‘섭지, 해녀우다!’가 9월 2일부터 11월 2일까지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열립니다.
과거를 박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도 바다 속에서 호흡하는 해녀들의 얼굴을 현재 시제로 소환하는 자리입니다

정혜원 作 ‘세기해안’ (2023)


■ 바다와 함께 늙어온 얼굴들


작가는 해녀들을 멀찍이서 관찰하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어촌을 드나들며 함께 밥을 나누고, 물질을 준비하는 손길을 곁에서 지켜봤으며, 때로는 직접 바닷속을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맺은 관계와 신뢰 속에서 사진은 탄생했습니다.

팔순의 해녀가 “장비는 좋아졌지만 몸은 늙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말하던 순간은 사진 속, 깊은 주름과 눈빛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머릿개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며 바다를 응시하는 정적, 물살에 몸을 던지기 직전의 고요, 세월이 새겨놓은 표정은 저마다의 기억을 안고 프레임에 스며 있습니다.

바다는 해녀에게 집이자 밭이었지만 동시에 육체와 생명을 갉아먹는 무대였습니다. 이 양가적 무게가 사진 속에 켜켜이 각인돼 있습니다.

■ 잠수의 리듬, 존재의 춤

해녀의 잠수는 단순한 채취 행위가 아닙니다.
호흡과 물살이 교차하는 순간, 몸은 춤이 되고 숨은 리듬이 됩니다. 바로 그 소멸 직전을 포착한 작가는 예술의 언어로 의미의 접점을 끌어냈습니다.

“홀로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의 모습에서 고독을 견디는 힘을 느낀다”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음이 숙연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사진 속 몸짓은 노동의 긴장과 동시에 자유의 해방감을 담고 있습니다.
관객은 그 경계에서 잠시 숨을 멈추며, 예술적 숭고와 현실적 고단함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혜원 作 ‘납작녀해안’ (2024)


■ 관객의 시선, 다시 살아나는 숨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화면 속 해녀의 주름진 얼굴과 바위 위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 눈앞의 풍경이 과거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숨결임을 깨닫습니다.

어떤 얼굴은 이미 세상을 떠난 마지막 초상이거나, 또 여전히 바다에 몸을 맡기고 있는 이들의 현재입니다.

그 감정은 곧 대화의 장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또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이는 유네스코가 세계에 던진 물음이자, 제주가 정책으로 답하고 있는 과제이며, 동시에 작가가 오늘의 관객에게 다시 묻는 질문입니다.

정혜원 作 ‘세기해안’ (2023)


■ 연대가 새긴 흔적

해녀의 삶은 언제나 공동체와 함께였습니다. “같이 죽고 같이 살지, 혼자는 못 산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법칙이었습니다.
사진 속 해녀들의 눈빛은 서로의 숨을 확인하며 버텨온 세월의 증거입니다.

잠수 전 숨을 맞추고, 바다에서 신호를 나누며, 물질 뒤 바위 위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까지 모든 시간이 연대의 기록이었습니다.
그 흔적은 얼굴의 주름과 표정으로 남았고, 사진은 이를 공동체의 서사로 재구성합니다.

관객은 그 얼굴을 마주하며,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근원적 진실을 마주합니다.

정혜원 作 ‘고양신양어촌계 해녀’ (2025, 4점 편집본)


■ 세계가 묻고, 지역이 답하다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세계가 주목한 것은 잠수 기술의 독창성만이 아니라, 여성들이 맨몸으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낸 강인함, 공동체적 연대,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제주도는 이후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제주 해녀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해녀박물관은 전시와 연구, 교육, 자료 수집, 해녀학교 운영을 통해 세대 전승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는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여전히 바다에 몸을 맡기고 있는 해녀들의 얼굴을 예술적 언어로 되살려 보여줍니다.

정혜원 作 ‘고른녀해안’ (2022)


■ 전시장 풍경, 현재의 호흡

해녀박물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압도적인 수중 촬영 사진이 관객을 맞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장면은 심연 속으로 끌어들이고, 차가운 푸른 조명은 수면 아래의 긴장을 재현합니다. 검은 잠수복과 흰 숨방울이 극적인 대비를 이룹니다.

거대한 파도로 밀려드는 대형 사진과 세밀하게 포착한 주름진 얼굴은 서로 다른 결로 시선을 붙잡습니다.
큰 바다와 작은 호흡, 집단의 서사와 개인의 표정을 오가며 전시는 하나의 무대로 어우러집니다.

그 공간에서 관객은 비로소 사진이 과거의 기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호흡임을 깨닫습니다.


■ 숨결을 잇는 시간

전시는 9월 2일 오후 2시 오프닝으로 막을 올려 11월 2일까지 이어집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10월 29일 오후 3시에는 아티스트 토크가 마련돼 있습니다.

작가는 “섭지코지 해녀들의 삶은 언제나 꿋꿋하고 당당했다. 그 숨결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전시 취지를 밝히며, 다시 한 번 관객들이 해녀의 삶에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정혜원 작가


대구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작가는 지금까지 14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습니다.
대표작 ‘소혹성의 사람들’을 비롯해 인간과 공동체의 기억을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였으며 2019년 한국사진학회 국제사진전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는 갤러리 마젠타 대표이자 한국사진학회, 한국여성사진가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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