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가수 인순이가 성조기를 품고 통곡한 사연은?

KBS 2025. 8. 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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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시간 : 8월 29일(금) 16:00~17:00 KBS1
■ 진행 : 김용준 기자
■ 출연 : 인순이 / 가수


https://youtu.be/OvIp4ySIr4c

◎김용준: 영향력 있는 여성상, 이 상은 미국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회운동가 펄 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지난 1978년에 제정된 상입니다. 특히 교육과 인도주의 또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변화를 이끈 리더에게 수여되는데요. 한국은 고상한 국민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다. 이 펄 벅의 소설 더 리빙 리드 서문에 나오는 글귀처럼 고상한 국민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에서 이희호 여사 이후에 25년 만에 한국인 수상자를 모셨습니다. 오늘만큼은 이분을 가수 인순이에서 본명과 함께 다른 직책으로 초대해 보겠습니다. 이 주의 사람,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의 김인순 이사장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순이: 반갑습니다.

◎김용준: 반갑습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인순이: 감사합니다.

◎김용준: 가수 인순이이자 김인순 이사장님으로 제가 소개를 했는데, 소개 어떠셨는지요?

▼인순이: 너무 좋았습니다.

◎김용준: 항상 가수 인순이 씨로만 다른 방송에서 모시는 경향이 있었는데, 저희가 이 부분 한번 조명해 봤고요. 우선은 펄 벅 인터내셔널의 영향력 있는 여성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는지, 또 어떤 면을 좀 좋게 봐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드셨는지 궁금하네요.

▼인순이: 저도 제가 왜 탔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김용준: 아직까지 좀 얼떨떨하신가 봐요.

▼인순이: 얼떨떨하고, 그냥 저는 힘든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을 했고 그리고 제가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힘든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빨리 볼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행했던 일들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좀 예쁘게 봐주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용준: 미국에 갔다 오셨는데 아마 다른 여러 가지 시상식이나 수상도 많이 해보셨겠습니다만 참 뜻깊은 수상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번 수상 후에 미국 현지에서 말씀하신 소감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녹취> 인순이 / 가수 (현지 시각 21일)
저는 한국 사람들 틈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서 저를 찾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태어났으며 왜 다른 모습이며 나는 어디로 가야 될 것인가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거기에 허비했습니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다른 아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렸을 뿐인데, 앞으로는 이런 일을 계기로 뭔가를 더 한다라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주위를 돌아보면서 사는 그런 사람이 될 거고요. 용감한 나라의 아버지를 주시고 해 돋는 나라의 어머니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상은 저 혼자만이 받는 상이 아니라 너무 힘들게 살다가 간 오빠 언니들도 있어요. 그 언니 오빠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혼혈인들을 대표해서 이 상을 제가 받는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김용준: 마지막에 또 울컥하시는 모습 보니까 그때가 또 떠오르시나 봅니다. 이렇게 잠깐 눈을 감으시고 소감을 들으셨는데, 지금도 조금 눈시울이 붉어지셨네요. 내가 아팠기 때문에 다른 아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렸을 뿐이다라고 또 겸손하게 소감을 말해 주셨습니다. 사진 하나 좀 볼게요. 이 사진, 이때가 지금 제가 알아보니까 중학생 시절의 이사장님...

▼인순이: 맞습니다. 교복 입고, 하복 교복 입고 있네요.

◎김용준: 네, 모습이신데, 그런데 사진 옆에 다른 내용이 있는 게 아니라 1208이라는 번호만 적혀 있는데, 이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요?

▼인순이: 펄 벅 재단에서 후원금을 받을 때 저의 번호입니다. 사실 펄 벅 여사님께서는 동남아에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에서 자란 그런 혼혈인들을 도와주는 재단을 또 만드셨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도 어릴 적에 도움을 받고 저 번호를 갖고 있으면서 그렇게 성장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너무나 특별한 감사함도 있고 가슴 아픔도 있고 그런 아주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그런 번호이기도 합니다.

◎김용준: 그러니까 그래서이신가요? 이번 수상 소감에서도 이 후원 번호, 1208, 1208을 언급을 하셨던데...

▼인순이: 네, 맞습니다.

◎김용준: 그 시절의 기억, 이렇게 후원을 받고 중학생 시절 또 앞으로 고등학생 쭉 거치시면서의 기억들, 그 시절의 기억은 어떠신지 잠깐 말씀 가능하실까요?

▼인순이: 어린 나이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학교를 등교했다가 가방 놔두고 펄 벅 재단에서 이제 차가 오면 거기를 가서 이제 그 키도 재고 몸무게도 재고, 이렇게 건강 상태를 재기도 하고 또 저희는 그때마다 이제 양부모님이라고 했어요. 그 후원자분들께...

◎김용준: 후원자분들.

▼인순이: 이제 저는 공부 이렇게 잘하고 있고 이번에는 성적을 어떻게 받았고 친구들하고 열심히 살고 있고, 이제 이런 편지들을 써서 가져다드리고 그다음에 이제 학비와 생활비를 받아서 모으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뭔가 부끄러움이나 그런 거 없이 그냥 재미로 그렇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는 이제 '아, 내가 도움받는 사람이었구나. 도움받는 게 정말 다른 모습이고 뭔가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아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거기에서 배우고 한 것은 또 펄벅 재단에서는 교육에 대해서 교육을 시켜야 된다, 그래야 성장을 잘할 수 있다라는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리고 다르지만, 인간은 똑같다라는 말씀도 해 주시고 누구보다도 제가 하소연했을 때 투정을 부렸을 때 마음으로 받아주는 그런 단체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위로받고 도움도 받고 한편으로는 외면하고 싶었던 그런 펄벅 재단입니다.

◎김용준: 또 그때가 또 중2에서 쭉 올라오면 또 사춘기도 같이 오다 보니까 그런 마음도 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인순이: 네, 맞습니다.

◎김용준: 말씀을 좀 들어보니까 재단에서 이렇게 후원을 받던 사람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후원하는 분이 되셨더라고요.

▼인순이: 네, 맞습니다.

◎김용준: 특히 이번 수상에는 개인 인순이로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이 업적도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데 다문화 청소년을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서 2013년에 강원도 홍천에 설립한 기숙형 대안학교, 이 해밀학교가 그런 건데요. 펄벅에서 받은 도움과 경험이 이 학교를 통해서 많이 펼쳐지고 있는지, 그리고 학교 얘기 잠시 해 주시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학교를 세우셨고 또 운영하고 계시는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인순이: 처음에 이렇게 커다랗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떤 학교를 해야 되겠다 뭘 어떻게 교육 사업에 뛰어들어야 되겠다, 이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 사춘기가 너무 길어가지고 사실 이미 다 벌어졌기 때문에 되돌릴 수도 없는 문제고 답이 없는 문제거든요. 그냥 살아야만 되는 그런 그게 결국은 답인데 너무 힘들게 그런 사춘기를 보내서 다문화 가정들이 많이 생기면서 그 아이들이 사춘기가 됐을 때 혹시 나처럼 그렇게 길게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냥 몇 명이라도 내가 옆에 있어 주면 이 아이들이 빨리 자기의 길을 찾지 않을까라는 그냥 단순한 마음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펄벅 재단에서의 그런 정신도 있고, 그리고 저는 지금도 생각하지만 매일매일이 저는 축복의 날입니다, 그리고 기적의 날이고.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에 계신 분들께서 저를 이만큼, 이 자리까지, 결국 이런 상을 받게 끔까지 저를 응원해 주시고 저를 품어주셨잖아요. 당연히 저는 할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예쁜 걸 보여드리는 것도 좋지만 제가 가장 힘들고 이 피 흘리는 가슴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면서 제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훨씬 더 나답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리고 학교도 또 하게 된 겁니다.

◎김용준: 그 말씀이 참 와닿네요. 다른 친구보다 사춘기를 좀 길게 보낸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다른 그냥 보통 평범한 학생들만큼만 사춘기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 아주 작은 마음으로 시작하셨고 그것이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커져 버렸네요.

▼인순이: 네.

◎김용준: 해밀학교가 세워진 지가 벌써 12년이 됐다고 하던데 기억에 남는 졸업생 있으시면 한 분 정도만 소개해 주실까요?

▼인순이: 네, 그 친구는 이제 고려인 3세 분하고 한국 그 선교사분의 자제의 자녀예요. 그런데 사실 말이 너무 어눌해서 다른 학교를 못 가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 학교를 들어왔는데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강원외고를 들어갔고요. 지금은 청주교대에서 공부를 하고 곧 선생님이...

◎김용준: 누군가를 가르치겠네요.

▼인순이: 맞습니다. 그러면 그 친구도 저처럼 본인이 아팠기 때문에 조금 더 이해하는 최근에는 다문화 아이들만 주로 많이 들어 있는 학교들이 많잖아요. 만약에 이 아이가 그 학교를 간다면 조금 더 그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용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에 전교생이 모두 다문화인 학교도 경기도 안산에서 나왔다고 하고...

▼인순이: 네, 맞습니다.

◎김용준: 군대부터 사회 각계 분야에 이렇게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참 많은데 지금 우리 사회는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조금 달라졌다고 보시는지 좀 의견을 듣고 싶네요.

▼인순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에서 관광객도 많이 들어오다 보니까 외국 사람 보는 거는 정말 너무나 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외국 사람들은 이제 가면 끝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외국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용준: 그렇죠.

▼인순이: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그래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사실 제가 이번에 이 상을 타면서 그쪽에 이제 하원의원님으로부터 성조기를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조기를 받는 순간에 제 가슴이 요동치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카네기홀만 가면 나 해냈어. 나 우리 아버지 나라에서도 난 해냈어. 나는 그러니까 나는 자유로워야 돼. 나는, 나는 잘했어라고 그냥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성조기를 받는 순간에 너무 가슴이 요동을 쳐가지고 아 드디어 내가 인정을 또 받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받을 때도 울컥했지만 호텔에 들어가서 저 혼자서 그냥 이렇게 막 성조기를 붙들고 이제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 건 우리 아이들 졸업할 때 난 태극기를 하나씩 다 다 선물할 거야. 너네는 대한민국 사람이야. 인정할게 우선, 우선 학교에서부터 너희를 인정할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거 성조기를 받은 것이 또 또 이런 지혜를 줄 수 있구나를 생각하면서 지금도 너무 기쁩니다.

◎김용준: 그 엄청난 카네기 홀 같은 무대에서도 당당하게 공연을 하셨는데 아무 떨림 없이 그런데 그 성조기 하나를 품에 안고 그렇게 큰 울림이 있으셨다는 게 참 놀랍고요. 그걸 또 이제 앞으로 학교에서 어떻게 또 태극기를 활용할지를 생각하셨던 것에 대해서 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김인순 이사장님에 대해서 지금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가수 인순에 대한 업적도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해요. 이번 시상식장에서 공연도 하셨잖아요. 펄벅재단에서 선생님을 그렇게 소개했더라고요. 많은 상을 탄 가수이자 인도주의자이다. 사회 인종차별 시선을 극복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고국에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고 소개했는데 정말 어떻게 보면 단순한 질문인 것 같아요. 나에게 있어서 노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인순이: 밖으로 나가는 통로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통로예요. 저는 어렸을 때 밖에 나가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래서 수녀님이 되려고도 했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제가 노래를 하고 있고 노래 위에서 울고 웃고 깔깔대고 있더라고요. 제가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여러분들께로 가까이 가는 길은 무대인 것 같습니다. 노래입니다.

◎김용준: 네 지금 뭐 수많은 히트곡 명곡이 많다 보니까 이걸 다 말할 수는 없고 제가 최근에 신곡 아직 모르시는 분도 있기 때문에 제목이 바보 멍청이 똥개예요. 그런데 제가 가사를 노래랑 좀 들어보니까 누구는 같이 있어도 혼자라고 느끼고 누구는 혼자 있어도 같이 있다 느낀다라고 시작하는데 혹시 이 노래에도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건가요?

▼인순이: 그렇죠. 그 뒤에 가사가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랑하지 않았나 나는 사랑하고 말 거야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실 다문화인이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미국 사람이기도 해요. 어떤 사람은 내가 사랑을 하는데 저 사람은 딴 데를 바라볼 수도 있고요. 그런 각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런 곡이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나 이거 내가 이 사람을 택했는데 이 사람은 다른 데를 보고 있었어. 나 바보 멍청이 똥 멍게 해삼 말미살 같아 나 어떡하면 좋아라는 그런 노래거든요. 그래서 이것 역시도 우리가 살아갈 때 줄 수 있는 어떤 그런 지혜의 한 부분이 아닌가도 생각해 봤습니다.

◎김용준: 시간이 많으면 쭉 듣고 싶은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소절만 좀 신뢰 관계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순이: 바보 멍청이 똥개 멍게 해삼 말미잘 나는 이렇게 여기 혼자 이렇게 나는

◎김용준: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10년 전에 KBS 특집 방송을 통해서는 경기민요를 부르시기도 하셨어요.

▼인순이: 네 맞습니다.

◎김용준: 저도 본 기억이 있는데 국악 공연은 또 어떻게 함께하시게 됐나요?

▼인순이: 이번에 이제 국립극장에서 1년에 한 번씩 여우락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제 국악을 기본으로 해서 각 개성 있는 사람들이 그거를 이렇게 약간 이렇게 바꾸는 형태도 하고 해서 이제 국악을 좀 널리 알리는 그런 공연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번에 서도민요 하시는 선생님하고 같이 이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저는 경기민요하고 남도민요는 조금 접해봤는데 서도민요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덕분에 또 연습도 많이 하고 좋은 노래들도 많이 불러봤습니다.

◎김용준: 지금 또 하나가 지난해는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셨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지난해에 저희 사사건건에도 한 번 출연하셨을 때는 저희가 동화 작가 인순이로 소개해 드렸고 그다음에 본업인 가수의 또 학교 재단 이사장에 국악 공연에 검정고시 그리고 골든걸스 걸그룹까지 인순이 선생님에게 도전이란 어떤 것이고 또 다음 도전은 혹시 준비하고 있는 게 있으신가요?

▼인순이: 도전은 제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거를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고 말씀 들을 하시는데 겪어보지 않으면 그게 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어떤 생명력이라고 그러면 도전하고 궁금한 거 알아보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용준: 요즘에 청년들 보면 여러 가지 불확실성과 변수, 또 시작하자마자 어떤 문턱도 높고 많다 보니까 도전하는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주저를 많이 해요. 왜냐하면 도전을 했을 때 혹시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기 때문인데, 도전을 좀 주저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또 청춘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조언을 하시겠어요?

▼인순이: 불확실한지 확실한지는 모르잖아요. 가봐야 알죠. 해봐야 알죠. 불확실하면 안 하면 되는 거도 확실하면 가면 되는 거고요. 그래서 경험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 경험이 많이 쌓일 때 내 것이 나오기 때문에 확실, 불확실, 성공, 실패, 그리고 실패를 많이 해본 사람이 일어나는 것도 빠르대요. 또 제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는 제일 처음에 성공한 사람보다 뒤에 성공한 사람이 훨씬 낫대요. 처음에 성공한 사람은 뒤에 실패가 왔을 때 그거를 감당하기가 힘든데, 실패를 여러 번 하고 뒤에 성공을 한 사람은 거기에 대한 거 이 성공이 얼마나 값진 것에 대해서도 알고 다음에 안 됐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도 빠르게 일어난다고 그러더라고요. 해보세요. 해보세요. 뭐가 있는지 뭐가 있는지 가봐야 알잖아요.

◎김용준: 해보시라.

▼인순이: 네.

◎김용준: 끝으로 저희가 항상 공식 질문을 드리는데 이 주의 사람에서, 내 인생의 장면 혹은 문장, 노래를 부탁드렸는데 노래를 골라주실 줄 알았는데 문장이었습니다. 그 문장 보겠습니다. 인순이 김인순 선생님 인생의 한 문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인순이: 접니다.

◎김용준: 아, 이 말 자체가 선생님이세요?

▼인순이: 네.

◎김용준: 왜요?

▼인순이: 환경,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그렇다 하더라도 살아야 되잖아요. 그리고도 기왕 살 거 같으면 멋있게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을 때 그게 얼마나 성취감이 있겠어요. 멋있게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을 때 그게 얼마나 성취감이 있겠어요. 그리고 누구나 다 안 아픈 사람 없고 안 힘든 사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다 같이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저만이 갖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아마 많은 분들이 다 똑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가슴에 품고 지금 열심히 살아가실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김용준: 인순이, 가수 인순이, 그리고 이사장으로서 김인순 선생님, 이주의 사람 펄벅재단의 영향력 있는 여성상 수상자, 다문화대안학교 해밀학교의 김인순 이사장, 가수 인순이 님과 함께해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8월 29일 금요일 사사건건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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