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의 세계 명반 산책] 여름의 끝자락에서, 헨델 수상 음악

2025. 8. 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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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기록적인 무더위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조지 1세는 수상 음악을 3회 연속으로 요청하여 헨델의 우려를 해소해줬다.

이런 상황에서 홀연히 런던에 나타난 헨델의 존재감은 여타 음악가보다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헨델의 수상 음악과 함께 잠시나마 폭염의 기세로부터 탈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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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기록적인 무더위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기상청이 발표한 7월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23일을 기록했으며 전국의 폭염 일수는 14.5일로 평년보다 무려 10.4일이 더 많았다. 8월이라고 폭염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유럽의 폭염은 한국보다 더 심각했다. 8월 19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한 여성 가이드가 콜로세움 관광 안내를 하던 중 폭염을 견디지 못해 사망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잠마리노 가이드의 사망을 애도하는 의미로 20일 저녁 9시부터 콜로세움을 소등했다. 스페인에서도 최고 45도에 이르는 폭염으로 인해 약 1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클래시컬 뮤직을 골라 보았다. 1685년 독일에서 태어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아버지는 음악인이 아닌 궁정 소속의 의사였다. 건장한 체구에 열혈남아였던 헨델은 함부르크에서 공연을 하던 도중에 동료 작곡가인 마테존과 의견 충돌에 부딪힌다. 분을 참지 못한 이들은 결투를 선언하고 마테존의 칼이 헨델의 가슴으로 향했다. 다행히 헨델의 상의 단추에 마테존의 칼이 충돌하여 극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면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수상 음악'.

소개하는 수상 음악은 마테존과의 결투 사건 이후에 탄생한 작품이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헨델은 독일 하노버 선제후의 악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하지만 런던에서의 생활에 만족했던 그는 고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계속 체류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하필 헨델의 처신에 불만을 가졌던 하노버 선제후가 영국의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헨델은 조지 1세라 불리는 선제후의 마음을 되돌려 놓을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인간은 상대방을 공격할 때 자신의 장점을 무기로 활용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헨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조지 1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음악이라는 방패를 전면에 내세웠다.

영리한 헨델은 국왕이 런던 템스강에서 뱃놀이를 하는 상황을 기회로 활용했다. 그는 조지 1세가 탄 유람선에서 감상할 수 있는 수상 음악을 열과 성을 다해 작곡했다. 1717년 6월 17일 초연한 수상 음악은 유람선 선상에서 국왕과 측근들이 감상하는 가운데 50여 명의 악사가 공연에 참여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조지 1세는 수상 음악을 3회 연속으로 요청하여 헨델의 우려를 해소해줬다.

추천 앨범은 지휘자 존 엘리어트 가디너와 잉글리시 바로크 솔리스트의 음반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15세부터 지휘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로크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가디너는 고전 악기를 활용한 연주를 즐겼으며 현재까지 25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다. 바로크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그였지만 베토벤이나 베를리오즈 등의 낭만파 거장의 음악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가디너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폭행하는 등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2015년 자신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상 음악은 3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과 정치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음악에서 열위인 국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홀연히 런던에 나타난 헨델의 존재감은 여타 음악가보다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상 음악이 탄생한 지 10년이 지난 1727년에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제 8월의 끝자락이다. 헨델의 수상 음악과 함께 잠시나마 폭염의 기세로부터 탈출했으면 좋겠다.

[이봉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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