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도시 발견] 서울의 정책 모델이 된 한국 도시들
서울도 추진했으나 결국 실패
광주의 도심내 철길 공원화는
서울서 본떠 좋은 결과 탄생
최근 등축제·열기구 띄우기 등
서울 도심서 열려 '모방' 논란
서울은 한국서 가장 힘센 도시
비판 교훈삼아 더 세심해지길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 말은 과장된 것이지만, 완전히 허구적인 표현은 아니다. 서울에 살고 있든 살고 있지 않든 간에, 시민 개개인의 삶은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을 맺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에서 새로운 현상이 시작되고, 그것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다는 식의 일방향적인 관계가 상상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경우도 많다. 오늘은 비(非)서울 지역에서 시작된 행정이 서울로 전파된 경우를 살펴보려 한다.
우선은 다른 지역의 행정을 서울이 받아들였지만 서울이 더 못한 경우다.
흔히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라고 하면 개발 시대 서울을 이끈 '김현옥 서울시장'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김현옥이 서울시장(1966~1970년)이 된 것은, 그가 부산시장(1963~1966년)일 때 보여준 행정력을 박정희 대통령이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김 시장이 부산에서 추진한 가장 중요한 일은, 부산 원도심에 거주하던 철거민들을 시 외곽으로 이주시키고 원도심을 재개발한 것이다. 광복과 6·25전쟁 뒤에 한국 주요 도시에 판자촌이 형성됐는데, 그중 부산의 판자촌 규모가 가장 컸다. 이 판자촌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 김 시장의 판단이었다.

부산에서는 1950년대부터 원도심의 빈민들을 시 외곽으로 보내는 정책 이주지 사업이 이뤄졌고, 김 시장은 이를 본격화했다. 이 행정을 수도권에 가져온 것이, 서울 강북 원도심의 중하층 시민들을 서울 외곽 및 오늘날의 성남 원도심에 해당하는 광주대단지로 이주시킨 정책이었다. 하지만 부산에서 먼저 이뤄진 정책 이주지 사업을 수도권에 가져온 결과는 참혹해서,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라 불리는 시민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중하층 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영·시민아파트를 짓는 사업이 정책 이주지 사업과 병행해서 이뤄졌다. 김현옥은 부산시장에서 서울시장이 된 뒤에 이 행정을 서울에 이식했는데, 그 일환으로 지어진 와우아파트가 1970년에 무너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산에서는 김현옥의 뒤를 이은 김대만 시장이 충분한 예산을 들여 시영·시민아파트를 지었다. 박 대통령이 "서울의 김현옥이는 건설 단가가 이렇게 높지 않던데?"라고 말하자, 김대만 시장은 "사람이 살 집인데 이 정도는 돼야 됩니다"라고 답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성병두의 부산시정야사'). 실제로 영주아파트는 아직도 남아 있다. 서울이 부산의 행정을 베꼈지만 실패한 사례다.
반대로 서울이 타 지역의 행정 사례를 배워와서 더 잘해낸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는 시내를 지나던 경전선 철로를 외곽으로 옮기고, 폐선 용지를 공원으로 바꾸어 '푸른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사례를 서울에 이식한 것이 옛 용산선 철로를 지하화하면서 지상을 공원으로 바꾼 경의선 숲길이다.
폐철로를 공원으로 바꾼 첫 사례가 광주인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하지만 광주에서는 철도를 시 외곽으로 옮기는 바람에 이용률이 낮아졌다. 시내 철로 구간을 남겨뒀다면 훗날 트램 등을 설치할 때 활용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은 철로를 없애는 대신 타 기관들과 협력해 지하화하는 길을 택하면서 교통 접근성과 녹지를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강에 등(燈)을 띄우는 축제, 도심에 열기구를 띄우는 축제는 서울과 타 지역 간에 갈등이 빚어진 경우다. 두 방식 모두 물론 동서고금 널리 이뤄져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두 가지 행사가 유명해진 것은 진주시와 대전광역시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이들 행사를 실시해왔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 지역에서 전국구 축제를 만들었더니 서울이 베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는 자체가, 서울로서는 뼈아픈 교훈을 얻을 만한 대목이다. 한 지역에서 성공한 벽화 사업, 출렁다리, 케이블카 등을 다른 지역들이 베끼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서울은 한국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도시다. 다른 지역들이 오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을 세심한 행정을 할 의무가 있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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