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통과에 경영 현장은 ‘대혼돈’…로펌으로 몰리는 기업들

주재한 시사저널e 기자 2025. 8. 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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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성 확대·쟁의 범위 넓어져 곳곳에서 혼란
정부 지침 늦어지자 기업들의 로펌 의존도 더 상승

(시사저널=주재한 시사저널e 기자)

"어디까지 교섭해야 하고, 어디까지 파업을 인정해야 하는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기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다. 사용자 범위와 쟁의 사유가 크게 넓어졌지만 정부의 세부 지침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구체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 대형 로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네 가지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 △노조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결정에 이견이 있을 때 파업 가능 △노동자가 아니어도 노조 가입 가능 △불법 파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새로운 리스크가 늘어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컨대 사용자 범위 확대는 '원청-하청' 구조를 가진 대기업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원청이 단체교섭의 당사자로 인정될 경우 수십 개 하청 노조와 동시에 협상 테이블을 차려야 한다. 교섭 단위가 커질수록 비용과 행정 부담이 커진다. 쟁의 범위가 경영상 결정으로 확장되면서 구조조정, 신규 투자, 조직개편 등 경영 전략에도 노조 파업 리스크가 붙는다. 불법 파업 손배 청구 제한은 기업의 대응 수단을 줄이고, 노조 가입 확대는 특수고용·비정규직까지 조직화될 여지를 넓힌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원청이 하청 노조 교섭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쟁의행위가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 내부에서도 혼란이 크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기존 단체협약과 새롭게 등장하는 하청 노조의 요구가 충돌할 경우 어떤 법리가 우선하는지,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한지 등은 기업 법무팀에서 가장 빈번히 논의되는 질문이다.

최준영 기아 사장, 이희근 포스코 사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노진율 HD현대중공업 사장,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왼쪽부터)이 8월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철강·조선·자동차 기업 CEO 간담회'에서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관련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불안 커지자 '법률 자문 러시'

현장의 혼란은 이미 법적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하청 노조가 현대제철을 상대로 파견법 위반을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노조 측은 원청이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고 있으면서 책임은 회피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이 어디까지 인정될지 불투명한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향후 교섭 구조 전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원청 책임 범위를 둘러싼 첫 사례 중 하나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경우 판례가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곧바로 법률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국내 주요 법무법인에 확인한 결과, 노란봉투법 입법이 가시화된 7월부터 인사·노무 자문 요청이 눈에 띄게 늘었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7월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기업들의 문의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특히 8월13일 노란봉투법과 기업 대응 방향에 대한 웨비나(webinar)를 진행했는데, 웨비나 전후로 질의와 컨설팅 요청이 이어지며 문의가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A 법무법인 관계자는 "기존 고객사 20여 곳에서 동일 사안으로 자문을 요청해 오는 이례적인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로펌 관계자 역시 "기업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노란봉투법 시행 시 회사에 미칠 잠재적 영향"이라며 "하청 근로자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지, 실질적 지배력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도급·위임 관계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어디까지 인정될지, 모회사·자회사 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쟁의행위에 대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등의 질문이 반복된다"고 전했다.

주요 로펌들도 기업 수요에 맞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이달 초 웨비나를 열었는데 현장과 온라인을 합쳐 1200명 이상이 신청하면서 뜨거운 관심이 확인됐다. 세종이 배포한 '노란봉투법 50문50답' 자료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에 세종은 노동그룹 내 20여 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실무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김앤장도 인사노무그룹 내 '노동정책 TF'를 출범시켜 산업별 맞춤형 자문을 제공한다. 로펌 측은 "입법 취지와 판례, 노동위원회 판정례, 고용노동부 발표 등 현재 리소스를 토대로 기업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도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광장·화우·YK 등 다른 대형 로펌들도 세미나 개최, 전담 TF 운영, 전직 관료 영입 등으로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초기 불확실성이 클수록 로펌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라고 해석한다.

8월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가이드라인 공백 메우기, 결국 사법부 몫으로

전문가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까지 최소 반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사용자성 확대와 쟁의 범위 조정 같은 핵심 쟁점에서 노사정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고, 부처 간 협의 과정도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기업들은 자체 법무팀 인력을 확충하거나 외부 자문을 늘리며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TF를 구성해 사용자성 판단 기준, 교섭 절차, 쟁의 범위 등에 관한 세부 지침과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는 시행령 위임 조항이 없어 정부 지침은 어디까지나 행정적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 법적 구속력이 약해 실제 분쟁이 발생하면 결국 법원 판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면서도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와의 관계를 전혀 정리하지 않았다"며 "하청 단위로 교섭을 나누면 격차 완화라는 입법 취지가 사라지고, 원·하청을 묶으면 하청 노조가 대표성을 갖기 어려운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동3권은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이를 구체화한 법률은 권리자와 의무자가 자신의 지위를 예측할 수 있도록 분명해야 한다"며 "이번 개정은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사실상 법원 판단에 맡겨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령 등으로도 다룰 수 없게 설계돼 있어 후속 입법 없이는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김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이라는 문구가 추상적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면서도 "노란봉투법은 고용노동부 지침, 노동위원회 판정례, 사법부 판결을 거치며 불확정성이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기업 일각의 '경영권 침해' 주장은 과장됐다고 보고, "그동안 원청이 누려온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 하청 노동자의 자유 억압에서 비롯된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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