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90> 얍 스헤런의 ‘투스와 타이니/내 어머니의 어머니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에 관한 시각적 사유

가족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만나며 비로소 생겨나는 관계다. 서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함께하며, 그 사이에서 또 다른 존재가 태어난다. 때로는 내가 아빠를 닮은 듯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엄마를 닮았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두 세계가 겹친 결과가 지금의 ‘나’라는 사실은 놀랍고도 경이롭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얍 스헤런(Jaap Scheeren)의 ‘투스와 타이니/내 어머니의 어머니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는 외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담아낸 사진집이다.
이 작업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얍의 부모가 외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면서 얍의 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지역 스포츠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외할머니는 아버지에게 기사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기사와 함께 할머니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메모를 적어 함께 보내주었다. 강도와 만남, 폭풍이 몰아치던 밤, 삼촌 이혼 같은 일상적이면서 특별한 사건이 담긴 메모는 얍에게 할머니의 내면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작가는 그 메모를 바탕으로 외할머니에게 연락해 직접 장면을 재현해 보자고 제안했다. 사진 속 할머니는 집 안팎에서 과장되게 움직이고, 연극처럼 재기 발랄하게 장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와 퍼포먼스 속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유쾌하고 연극적인 할머니의 사진은 두 사람이 함께 즐기며 작업한 사진이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얍은 할아버지와도 작업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외할머니와 성격이 전혀 달랐다. 그는 훨씬 더 조용하고 차분했다.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인물 사진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내성적이고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와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작가는 할아버지의 일상용품이 가득 든 상자 세 개를 작업실로 가져왔다. 헤어브러시, 면도용품, 세면도구, 슬리퍼, 조리 도구, 음식 등 그가 살아온 흔적과 취향이 묻어있는 물건이었다. 작가는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해 정물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 대신 그의 물건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 할아버지와 교감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처럼 외할머니와 친할아버지의 서로 다른 성격은 사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작가는 각기 다른 사진적 접근을 통해 두 사람을 표현했다. 책에서 투스(Toos)는 외할머니이고 타이니(Tiny)는 친할아버지다. 투스는 유쾌하고 활기차며, 타이니는 조용하고 사색적이다.

투스 파트는 다채로운 인물 사진과 재현 장면이 페이지마다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반면 타이니 파트는 정적인 정물 사진과 절제된 배열을 보여준다. 활발한 연극성이 느껴지는 할머니 사진과 고요한 정물성으로 표현된 할아버지 물건의 대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방향 구조다. 이책은 양쪽 끝 어디에서나 시작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한쪽은 할머니 투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책을 뒤집으면 다른 한쪽에서는 할아버지 타이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독자는 이 책이 서로 다른 개별적 존재인 두 인물의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 구조 자체가 두 사람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전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인물은 책 속에서 다시 만난다. 독자는 외할머니 이야기 끝에서 친할아버지를, 친할아버지 이야기 끝에서 외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책의 독특한 디자인은 각자 살아온 시간과 성격이 서로 다른 두 인물이 결국 만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시 말해, 책의 구조가 두 사람이 살아온 서로 다른 길이 결국 한 지점에서 교차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두 사람의 세계는 결국 이어지며, 독자는 그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새삼 깨닫는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어떤 때는 외할머니를 조금 더 닮았고, 어떤 때는 친할아버지를 조금 더 닮았다. 나는 이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기를 바랐다. 결국 이 책은 당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지금의 당신이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누구나 갖고 있는 질문인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에 대한 시각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친 독자는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한 책에 너무나 다른 두 종류의 사진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독특함이다. 두 인물의 차이는 서로의 끝에서 이어져 하나의 서사가 된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두 인물이 남긴 흔적과 삶의 방식을 마주하고, 그것이 곧 작가에게로 이어진 계보임을 깨닫는다.
이 책은 단순한 가족사진집이 아니라, 두 세계가 만나 만들어낸 또 다른 존재인 바로 나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탐구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누구를 닮았고,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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