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반성 않는데 정부는 수수방관... "구상권 자문위 설치 시급" [혈세 배상 대해부]
<3> 끝까지 받아내려면
[최정규 변호사·변상철 소장 인터뷰]
과거사 사건, 책임 물을 시간 많이 안 남아
구상액 확정만으로도 '범죄 각인' 효과 높아
현행 구상권 행사 결정, 전적으로 검찰 권한
"내실 있는 민관자문위원회가 운영 맡아야"

"29만 원 있는 전두환한테도 했잖아요. 어려울 것 같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정의는 없는 거죠."
법무법인 원곡의 공익법률지원센터(파이팅챈스) 변상철 소장은 조사관 출신이다. 2004년부터 6년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 폭력 기록을 훑었다. 진실화해위에서만 25개 간첩 조작 사건을 맡았다.
사건 당사자들과 마주 앉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변 소장은 진상 파악만으론 진정한 의미의 단죄와 화해가 어렵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의 태도에 분노했고, 위원회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정부에 배신감을 느꼈다.
그가 국가배상소송의 결과로 지급되는 판결금에 주목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밖에서는 주로 배상액에 관심을 갖지만 법원의 계산 방식에 공감하는 피해자는 거의 없다. 변 소장이 보기에, 얼마가 됐든 가해 공무원이 직접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참다못해 국가 권력 탓에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이 직접 나서 정부에 구상권 행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혈세 누수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촉구하니 변화가 생겼느냐'는 질문에 변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정부는 국가를 상대로 한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자체가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을 쏟는 듯했다.
변 소장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온 최정규 변호사는 정부가 피해자들을 실망시키는 원인을 구상권 행사의 구조에서 찾았다. 현행법상 구상권 행사는 전적으로 검찰 권한이라서 적극적 회수를 기대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변 소장은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가 보완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변 소장, 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국가가 배상금을 지급하면 정부가 개별 공무원을 대표해 사과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정규 : 그렇지 않다. 국가배상소송 과정에서 정부는 피해자들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는 항변을 계속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최근 형제복지원·선감학원 사건 상소 취하를 결정하긴 전까진 기계적 불복도 반복됐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정부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현재 가해자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구상금을 청구해도 변제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던데.
변상철 : 구상금을 확정 짓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행위가 범죄라고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처벌은 할 수 없어도 경제적 책임을 지움으로써 가해자가 정상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전액 추징엔 실패했지만 전두환의 29만 원은 사람들 뇌리에 박혀있지 않나.
-오랜 시간이 흐른 과거사 사건 특성상 가해 공무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을 것 같다.
최정규 : 사건 당시 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 판단을 위해선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데 이미 숨진 분들이 많아 진실 규명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간첩 조작 사건같이 과거 수사기록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간 정부는 가해자 파악이 가능한 사안에서도 소극적인 측면이 있었다.
변상철 : 정부가 진상 규명과 후속 대책 마련에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고령의 가해 공무원들이 사망하게 되면 구상금을 청구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국가배상소송 지연으로 구상권 행사까지 늦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피해 인정 단계부터 더욱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가소송법 시행령은 1심 담당 고검·지검에서 기록을 검토해 구상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게 한다.
최정규 : 국가소송법상 국가의 대표자는 법무부 장관이다. 2020년 개정된 시행령은 통일적 대응을 위해 각급 검찰청에 위임돼 있던 국가소송 승인권을 법무부로 이관했다. 수행권은 여전히 검찰청에 있다 하더라도 입법 취지를 살려 법무부가 구상금 청구에 적극 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변상철 :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나 서훈 공적심사위원회처럼 외부 전문가들이 구상권 행사 여부를 검토·권고하는 위원회를 법무부에 설치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실무적으로는 검찰의 업무 부담을 덜 수 있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종합한 결론이란 점에서 객관성·중립성도 확보할 수 있다.
-민간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나.
변상철 : 국가배상사건에서 가해 공무원을 특정한 뒤 책임 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엔 여러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다. 선배 공무원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에 심리적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시민사회단체가 자문위원회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고검에선 외부위원 2명을 포함해 총 5명으로 구성된 구상권행사심의위원회가 2011년부터 반기별로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변상철 :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년간 7건에 대해서 구상권 행사 여부 등을 심의·의결했다고 하는데, 전체 국가배상소송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위원회에 외부위원은 과반이 안 된다. 법무부 산하 위원회가 구상권 행사 업무를 통합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최정규 : 위원회가 자칫 정부의 면피용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법무부 자체에 국가배상 담당 인력을 늘려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재심에서 불법 수사가 인정돼 피해자에게 무죄가 선고된 경우, 수사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변상철 :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진 않는다.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올해 5월 "대통령이 되면 '국가범죄 시효 특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기억한다. 최근 일본에선 재일교포 간첩 조작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나. 반인륜적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진심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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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 끝나지 않는 눈물
- • 조작, 누가 물어낼 것인가... 28세 재일교포는 모국서 간첩이 됐다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10005665) - • 국가배상, 2조 넘게 나갔는데... 법무부, 가해자 구상권 통계조차 없다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10003525)
- • 조작, 누가 물어낼 것인가... 28세 재일교포는 모국서 간첩이 됐다 [혈세 배상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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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 사라진 청구서
- • 고병천에 구상금 회수 실패... 법원은 왜 '고문 기술자' 손 들어줬나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00002890) - • 이근안 구상금 33억 판결에도... 고문 가해자 버티면 추징 속수무책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10000683)
- • 고병천에 구상금 회수 실패... 법원은 왜 '고문 기술자' 손 들어줬나 [혈세 배상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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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3> 끝까지 받아내려면
- • 가해자 반성 않는데 정부는 수수방관... "구상권 자문위 설치 시급"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0923170005523) - • "정부는 국가 폭력 가해자에 구상권 행사해야" 국회에 모인 피해자들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17130005565) - • '고문 가해자' 후손 덕 보는데 서훈 취소는 왜 드물까 [혈세 배상 대해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490005927)
- • 가해자 반성 않는데 정부는 수수방관... "구상권 자문위 설치 시급" [혈세 배상 대해부]
반인권적 국가범죄 시효 특례법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민사상 소멸시효와 형사상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의 법안. 지난해 12월 31일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올해 1월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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