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하나에 짜장면값, 이유 있었네…90살 골프왕국의 열정

강승연 2025. 8. 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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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아마추어 퍼팅 실수에서 출발
엑스레이 검사로 골프공 품질 신뢰 구축
1949년 이후 77년간 PGA골퍼 사용률 1위
화학자·물리학자 등 75명 R&D팀 운영
설계에서 제작까지 1600개 특허 보유
‘Pro V1’ 신드롬…투어선수 70% 사용
212억2500만달러에 韓기업·PE에 매각
피팅·투어밴 서비스로 맞춤 경험 확장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릅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일순간에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메가 브랜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유통가의 속사정, ‘언박싱 프로’를 통해 들려드립니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회원 전용 콘텐츠 ‘HeralDeep’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메가 브랜드들의 성장 스토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골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는 90년간 혁신과 실험정신으로 전세계 골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골프공을 탄생시켰다. 아쿠쉬네트 창립자 필 영 [아쿠쉬네트코리아 제공]

“모든 것에는 항상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There is always a reason for everything.)” (타이틀리스트 창립자 필 영)

골프처럼 정교한 운동이 없다고 합니다. 티샷을 휘두를 때 발생한 미세한 발사각 차이가 오비(OB·Out of Bounds)를 만들고, 어떤 공을 쓰느냐에 따라 원하는 발사각, 탄도, 비거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골퍼들은 라운딩을 할 때마다 수만원어치 골프공을 잃어버려도 ‘나만의 공’ 찾기에 돈을 아끼지 않죠.

그 ‘한끗’ 차이를 만들기 위해 90년간 묵묵히 걸어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세계 1위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언박싱 프로’는 6000만 세계 골프 인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한 우물을 파온 타이틀리스트를 조명해 봅니다.

부정확한 퍼팅에서 시작된 90년 역사

타이틀리스트의 역사는 193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포드의 한 골프장 18홀에서 시작됐습니다. 아쿠쉬네트라는 고무 제조 업체를 운영하던 필 영(Phil Young)이 치과의사인 친구와 골프를 치러 왔다가 마지막 홀 그린에서 퍼팅한 공이 홀컵을 비켜갔던 것이죠. 꽤 실력 있는 아마추어 골퍼였던 그는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 골프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장 친구의 사무실로 달려가 골프공을 엑스레이로 촬영했고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공의 코어(중심부)가 일정하지 않았고 그 위치도 제각각이었던 것이죠.

골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그 길로 골프공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MIT(매사추세츠 공과대) 동문이자 고무 전문가인 프레드 보머와 손잡고 3년간 제품 개발에 매진했죠. 필 영은 고무 실을 고무 코어에 일정하게 감을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습니다. 특허까지 받은 이 기계를 통해 코어가 중간에 고정된 첫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이 1935년 출시됐습니다. 지금도 모든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은 엑스레이 검사를 거친다고 합니다.

2001년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는 골프의 판도를 뒤집을 골프공으로 타이틀리스트 ‘Pro V1’을 소개했다. [아쿠쉬네트코리아 제공]

최고의 골프공은 선수 손에 있다

우수한 제품을 만든다고 바로 소비자에게 알려지는 것은 아니죠. 판매 전략도 중요했습니다. 대부분의 골프 장비가 백화점에서 팔리던 시절, 타이틀리스트는 골프공에 안목 있는 ‘골프 전문가’를 통해서만 판매한다는 정책을 세웠습니다. 골프 전문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또 1936년엔 업계 최초로 골프공 비행을 시연하는 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기기는 당시 유명한 골프 코스들을 돌며 미국 전역의 프로·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골프공의 성능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시연에서 일관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과 달리, 다른 골프공들은 불규칙한 비행을 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타이틀리스트 마케팅의 전환기는 1945년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같은 프로 투어로 시선을 옮기며 찾아왔습니다.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믿고 선택하는 골프공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골프공’이라는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1949년 메디나CC에서 열린 US오픈 대회에서 기념비적 사건이 벌어지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넘버원 골프공’이 된 것입니다. 이후 타이틀리스트는 올해까지 77년간 US오픈 사용률 1위라는 대기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은 많은 프로 선수들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PGA,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KPGA(한국프로골프협회), KPL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DP 월드투어 등 전 세계 주요 투어 참가 선수 10명 중 7명 이상이 타이틀리스트 공을 사용하죠. 남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를 비롯해 저스틴 토마스, 로버트 매킨타이어, 리디아 고, 고진영 등이 대표적입니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연구개발(R&D)팀이 획득한 특허권 [아쿠쉬네트코리아 제공]

골프회사에 웬 화학자·물리학자? 특허 싹쓸이 비결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이 선수들의 신뢰를 받는 제품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연구·개발(R&D)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타이틀리스트를 운영하는 아쿠쉬네트의 실적보고서에서 간접적으로 그 노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아쿠쉬네트가 지난해 R&D에 투입한 비용은 6780만달러(약 925억원)에 달했습니다. 연매출(24억5700만달러)의 2.8%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R&D팀은 75명이 넘는 화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컴퓨터공학자, 엔지니어,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골프공의 구조, 소재, 제작 공정, 공기역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죠. 심지어 잔디를 관리하는 기술진도 있다고 합니다.

R&D에 대한 투자 덕분에 타이틀리스트는 골프공 설계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1600개 이상의 유효 특허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미국의 골프공 특허 50%가 타이틀리스트에 있습니다.

또 전 세계 6대 골프공 특허권 보유자는 모두 타이틀리스트 직원이기도 합니다. 미국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닷컴’에 따르면 R&D 선임 부사장을 지냈던 마이크 설리번은 미국에서 특허 1000건을 돌파해 아인슈타인을 제치고 역대 34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치열한 연구를 통해 R&D 팀에서 개발된 골프공은 타이틀리스트가 보유·운영하는 3개의 자체 생산 시설에서 생산됩니다. 대표 제품인 ‘Pro V1’을 예로 들면, 1개의 공을 만들기까지 12단계의 제작공정을 거쳐 총 72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공 하나하나 일관성과 품질을 따져보는 검수 과정도 까다롭습니다. 골프공 표면의 패턴인 딤플에 페인트가 균일하게 도포되는지 확인하려고 수작업으로 검사하기도 하죠. Pro V1은 91번, ‘Pro V1x’는 무려 120번의 품질 검수를 받아야 합니다. 검수 기준을 총족한 골프공만 타이틀리스트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타이틀리스트 골프공들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습니다. 골프공이 잘 깨지던 1970년대 내구성이 뛰어난 ‘설린 커버’를 최초로 소개했고요. 골프공 역사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우레탄 커버’를 사용한 골프공 또한 타이틀리스트가 1994년에 가장 먼저 내놓았습니다.

투어선수 10명 중 7명이 쓰는 골프공

타이틀리스트는 수많은 기록을 생성한 골프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골프공은 1949년 US오픈을 시작으로 77년간 사용률 1위의 ‘넘버원 골프공’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2025 시즌 상반기에는 전 세계 주요 투어에서 사용률 72%를 기록했습니다. 2위 브랜드(10%)와의 격차도 엄청납니다. 전 세계 투어 우승자의 62%는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을 썼습니다.

타이틀리스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골프공 Pro V1의 경우, 전 세계 투어 선수 3명 중 2명이 선택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Pro V1은 2000년 탄생한 제품입니다. 티샷에서 필요한 긴 비거리는 물론, 스핀력, 컨트롤, 부드러운 타구감 등을 한꺼번에 갖춘 종합적인 성능이 강점이죠.

흥미로운 일화도 있습니다. 타이틀리스트는 Pro V1 출시 전에 100명의 선수에게 시제품을 먼저 선보이는 ‘시딩 프로세스’를 진행한 후 같은 해 10월 열린 PGA 투어 ‘인베시스 클래식’에서 공식 데뷔를 시켰는데요. 이 대회에서 우승자 빌리 안드레이드를 포함한 47명의 선수가 골프공을 Pro V1으로 교체했습니다. 시즌 중간에 용품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부담이 따르는 모험인데도요. 골프 역사상 한 번에 가장 많은 선수들이 용품을 바꾼 대회라는 기록도 세웠죠.

타이틀리스트 클럽도 기록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시즌 주요 투어에서 드라이버, 아이언, 유틸리티 등 대부분의 부문에서 사용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드라이버는 PGA와 KPGA 투어에서 우승률 1위에 올라섰습니다.

골프공 ‘Pro V1’ 필드샷 이미지 [아쿠쉬네트코리아 제공]

알고 보면 한국 기업, 휠라에 안긴 사연

타이틀리스트의 주인이 한국 기업이라는 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타이틀리스트 운영사인 아쿠쉬네트는 1975년 위스키 브랜드 ‘짐빔’을 보유한 미국 주류회사 아메리칸브랜드(현 포천브랜드)로 한번 주인이 바뀌는데요. 포천브랜드는 1985년 고무 사업부를 매각한 데 이어 2010년 아쿠쉬네트 매각에 나섰죠.

1년 뒤 아쿠쉬네트는 12억2500만달러에 휠라코리아(현 미스토홀딩스)와 미래에셋PE에 팔립니다. 국내 자본이 글로벌 1위 소비재 브랜드를 인수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미래에셋PE가 2017년 투자금을 회수하며 아쿠쉬네트는 미스토홀딩스의 자회사가 됐습니다. 당시 미스토홀딩스는 휠라 한국 지사가 글로벌 본사를 인수하는 전례 없는 성공 노하우를 타이틀리스트에 접목하려는 구상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골프웨어 부문이 주축이었죠. 윤윤수 미스토홀딩스 회장은 2011년 당시 공개 석상을 통해 타이틀리스트의 기술력과 골프웨어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믁표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기업을 모회사로 맞아 한국 시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된 타이틀리스트는 본격적으로 골프웨어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골프가 단순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 북미, 유럽 시장과 달리 한국과 일본에선 골프가 비즈니스 활동의 매개로 활용됐는데요. 이에 한·중·일 3개국을 타깃으로 2013년 ‘타이틀리스트 어패럴’을 공식 출시합니다. 이어 2021년에는 ‘투어핏S’라는 프리미엄 퍼포먼스 골프웨어 카테고리를 개척하죠. 이 같은 사업 다각화 덕분에 소비 침체에도 올 상반기 타이틀리스트 부문 매출은 1조51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7%의 성장세를 기록합니다.

1935년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광고 [아쿠쉬네트코리아 제공]

1타가 승패 가르는 골프, 정교해지는 맞춤 서비스

타이틀리스트의 인기 비결은 골퍼 개개인의 신체와 스윙 스타일에 맞춰 최적의 클럽을 찾도록 하는 피팅 서비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이틀리스트 R&D센터가 개발한 ‘퍼포먼스 피팅’ 매뉴얼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동일한 품질의 체계적인 피팅을 받을 수 있다는데요. 국내에선 ‘타이틀리스트 피팅 센터(TFC)’와 ‘타이틀리스트 피팅 스튜디오(TFS)’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응급실처럼 장비를 A/S 해주는 ‘타이틀리스트 시티 투어밴’도 2023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투어 현장에서 선수들의 장비 수리 및 피팅, 커스터마이징 등을 지원하는 전용 서비스 차량 ‘투어밴’의 설비와 기능을 그대로 도심 속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시티 투어밴에서는 66종의 스코티 카메론 퍼터 시타·점검, 보키 디자인 웨지 기반의 핸드 스탬핑 커스텀 웨지 디자인, Pro V1·Pro V1x·AVX 골프볼 커스텀 제작 등 투어 선수들이 받는 전문 서비스를 똑같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웨지웍스(WedgeWorks), 커스텀 골프볼 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현장 제작을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클럽 피팅 네트워크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커스텀 클럽 판매도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2015년 28%였던 커스텀 클럽 구매 비중은 지난해 45%로 확대됐습니다. 아이언은 커스텀 클럽 비중이 약 60%를 차지했죠. 시티 투어밴의 경우, 골프 열기가 상대적으로 꺾인 올해 상반기에도 방문객이 781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골프공 얘기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타이틀리스트는 Pro V1을 필두로 7종의 골프공 라인업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내에서도 완벽한 성능을 원하는 골퍼들의 요구에 따라 RCT(Rader Capture Technology) 골프공을 개발했습니다. 레이더 기반의 런치 모니터용으로 특수 설계된 RCT 골프볼은 실내에서도 모든 샷의 발사각, 속도, 스핀 등을 정확하게 측정합니다. 기존에 트랙맨 등 런치 모니터에서 활용되던 추정값이 아닌 정확한 측정값을 제공하는 게 특징입니다.

타이틀리스트는 ‘열정적인 골퍼(Dedicated Golfer)’를 위해 모든 카테고리에서 넘버원 브랜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열정적인 골퍼란 자신의 스코어 향상을 위해 시간과 비용,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열혈 골퍼를 의미합니다. 창립자 필 영도 자신을 열정적 골퍼라고 자부했죠. 열정 골퍼를 향한 타이틀리스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이번 ‘언박싱 프로’를 마칩니다.

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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