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를 억압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북리뷰]

2025. 8. 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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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
주디스 버틀러 지음│윤조원 옮김│문학동네
“젠더, 국가·전통가정의 위협”
포퓰리즘 정치인 혐오 퍼트려
실제로 가족·사회 파괴하는 건
기후위기·불평등 방치한 체제
게티이미지뱅크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잔혹한 말로 서로를 상처입히면서도, 끝장난 공허한 관계를 애써 이어가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두 부부가 공유하는 단란한 중산층 가정에 대한 환상을 상징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게 두렵기에 그들은 억지로 꾸며낸 환상을 공유하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에서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올비의 문장을 살짝 비틀어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反)젠더 이데올로기 운동’의 실상과 그 정치적 효과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일찍이 ‘젠더 트러블’(1990)에서 저자는 한 개인의 성적 정체성이 사회에서 어떻게 수행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정치 철학, 페미니즘, 퀴어 이론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에서 버틀러는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 삼아, ‘젠더 혐오’가 어떻게 권위주의가 창궐하고 민주주의가 위축되는 현실과 관계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버틀러에 따르면, 오늘날 ‘반젠더 이데올로기 운동’은 성적 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학문적 논쟁이나 사회적 논의를 넘어선다. 이 운동은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권위주의 독재정권, 도널드 트럼프나 자이르 보우소나루 같은 포퓰리즘 정치인, 바티칸과 기독교 연합 같은 보수 종교단체, 나렌드라 모디 같은 민족주의 세력과 결합해 광범위한 국제 연대를 이루고 있다. 여기엔 생물학적인 성별을 고집하며 젠더에 반대하는 J K 롤링 같은 이도 포함된다.

주디스 버틀러

이들은 젠더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낙인찍고 혐오를 퍼뜨리는 데 직간접적으로 앞장선다. 푸틴은 자신을 공격하는 젠더 운동가들이 서구의 사악한 문화에 물든 게이로파(Gayropa)라고 조롱했고, 트럼프는 고정된 성이 있을 뿐 젠더는 없다고 선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조차 젠더를 ‘핵무기’에 비유하고, 젠더 교육을 ‘히틀러 유겐트 만들기’로 비난하면서, 젠더에 관한 실체 없는 공포를 퍼뜨렸다.

‘반젠더 운동’이 보기에 젠더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 신의 질서에 대한 거부, 자연에 관한 부정, 전통 가족을 해체하는 독소, 아동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죄악 등 사악한 모든 것이 모여들어 썩어가는 고름이다. 이로써 젠더는 대중의 불안을 집중시키는 허구적 환상이자, “생명, 문명, 사회 등에 대한 위협”으로 짜내 없애야 하는 존재가 됐다. 버틀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여성들은 예속 상태에서 전혀 불만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집권 후 여성가족부 해체를 추진한 걸 그 예로 든다.

2018년 폴란드 제슈프에서 열린 반LGBT(성 소수자) 시위 현장. 주디스 버틀러가 지적한 ‘반 젠더 이데올로기 운동’ 중 하나다.

‘버지니아 울프’가 조지 부부의 눈을 가렸듯, ‘젠더 환상’에 빠져 이를 정치 혼란과 사회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받아들이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지 못한다. 젠더에 관한 조작된 공포와 근거 없는 혐오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기후 파괴, 경제적 불안정성 심화, 전쟁, 경찰 폭력, 인종차별 같은 마땅히 느끼고 사유해야 할 불안감을 놓치기 쉽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우리를 공포와 불안에 빠뜨리는 진짜 이유가 아닌가. 가족과 사회를 파괴하는 건 노동조건을 악화하고 승자 독식을 강요하며 사회보장제도를 해체한 신자유주의 체제이지,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움직이면서 숨 쉬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걸 옹호하는 젠더 담론이 아니다.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데서 알 수 있듯, 반젠더 운동은 권위주의를 퍼뜨리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버틀러는 거듭 주장한다. “‘국가이익’은 기본적 자유의 말살을 통해, 여성과 퀴어한 사람들, 확장된 사회적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교육자와 학자, 정책입안자와 정치인이 누려야 할 기본 자유의 말살을 통해 확대된다.” 자신들이 느끼는 대로 사랑하고, 자유롭게 가족을 이루며, 바라는 대로 행복을 추구하려는 이들을 막으려면,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자유를 제한하며 그들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 말고 다른 수단이 없다. 이는 결국 대중을 전체주의 독재 아래 결집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랑할 자유’를 빼앗는 자는 결국 ‘모든 자유’를 빼앗는 법이다. ‘반젠더 운동’의 주장과 달리, 젠더 담론은 개별적 삶의 다양성과 자유를 확장하고, 민주주의를 심화한다. 따라서 젠더의 옹호는 권위주의에 맞서 인간 존엄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정치적 투쟁의 일부이고, “누가 살 만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대한 보편적 대답이다. 484쪽, 2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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