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대문 너머, 그 가족의 투쟁기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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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으로 일하는 아빠를 따라 해외에서 5년을 보내고 브라질로 돌아왔을 때 그는 열세 살이었다.
그 집에 간다는 건 마치 "우리 모두가 꿈꾸는 나라"에 미리 살아보는 일이었다.
40여 년 전 그 집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닫힌 문 뒤에서 가족이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책이었다.
그러고 나면, 한 가족의 소중한 일상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그 뒤에 닥쳐오는 풍파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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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월터 살레스
출연: 페르난다 토레스, 셀튼 멜로,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외교관으로 일하는 아빠를 따라 해외에서 5년을 보내고 브라질로 돌아왔을 때 그는 열세 살이었다. “내가 내 나라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제일 당혹스러웠다. 거리마다 경찰이 가득했다. 집집마다 문이 굳게 닫혔다. 군사정권이 모든 것을 그렇게 바꿔놓았다.
파이바네 집만 예외였다. 늘 문이 활짝 열린 바닷가 집. 금지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입 밖에 내선 안 되는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해방구. 그 집에 간다는 건 마치 “우리 모두가 꿈꾸는 나라”에 미리 살아보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도 파이바네 아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2년 뒤 1971년의 어느 날, 처음으로 그 집 문이 닫힌 광경을 보았다. 낯선 사내들이 자꾸 그 집 앞을 서성였다. 나중에 알았다. 어디론가 끌려갔던 엄마는 돌아왔지만 먼저 끌려간 아빠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남은 가족은 결국 도시를 떠났다. 그는 자라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중앙역〉과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만들어 상도 많이 받았다.
환갑을 앞둔 2015년, 그가 책 한 권을 읽는다. 읽고 나서 “이틀 동안이나 격한 감정에 시달”린다. 글쓴이는 마르셀로 파이바. 파이바네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 40여 년 전 그 집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닫힌 문 뒤에서 가족이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책이었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7년을 매달려 〈아임 스틸 히어〉를 완성했다. 올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바로 그 영화다.
주인공은 유니스 파이바(페르난다 토레스). 남편이 끌려간 뒤 홀로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마흔여섯 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변호사가 된 엄마이면서, 남편 실종 사건을 20년 넘게 추적한 끝에 군사독재 정권이 은폐한 진실을 세상에 알린 집념의 활동가. 1970년부터 2014년까지, 44년 세월을 담아낸 영화에서 감독이 가장 공들여 찍은 건 그 집 문이 닫히기 전 한 달이다. 열세 살 월터 살레스가 부러워했던 파이바네 가족의 넘치는 자유와 활기다.
실제 그 집과 꼭 닮은 건물을 찾아냈다. 촬영 전 한 달 동안 배우들이 그 집에 모여 먹고 놀았다. 그 시절 유행하던 슈퍼 8㎜ 카메라로 서로를 찍었고 함께 놀러 간 바닷가에서 진짜 가족처럼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영화에 묻어난다. 어느새 나도 파이바 가족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는다. 영화 시작과 함께 마르셀로가 데려와 키우는 떠돌이 개 핌파오처럼 나 역시 이 낯선 사람들의 미소와 활기에 금방 익숙해진다.
그러고 나면, 한 가족의 소중한 일상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그 뒤에 닥쳐오는 풍파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강제 연행과 불법 구금, 고문과 실종과 은폐의 악행을 집요하게 재연할 이유도 없다. 관객은 이미 느끼고 있으니까.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 여실히 실감하고 있으니까, 그들이 ‘어떻게 빼앗아 갔는지’ 구태여 길게 묘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그래서 잊지 못할 이야기로 남았다. 비록 들을 빼앗겼지만 끝내 봄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들의 아름답고 품위 있는 시간을 영화가 단단히 붙들어두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페르난다 토레스가 말했다. “예의를 잃어버린 나라에서 그(유니스)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어요. 문명화되지 않은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낸 가장 문명화된 인간입니다.”
역사 영화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실화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기억해야 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 그게 감독의 일이다. 〈아임 스틸 히어〉가 돋보이는 이유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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