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죽음을 기다리는 마음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떨까? 거기에는 두가지 상황이 있다. 첫째는 늙어가면서 점차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이른 죽음 앞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전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후자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어떤 상황이든 고상하게 죽는 것은 평범한 우리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 들어감과 인생의 허무함을 얘기할 때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1994년)이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라는 가수의 독백은 요즘 서른살의 감성은 아니다. 하지만 1990년 한국 남성의 기대 여명은 67살이었고, 당시 서른 즈음은 백세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의 쉰 즈음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할 것이다. 아무튼 청춘을 영영 떠나보내는 마음은 허무함과 서글픔이다. 세월 앞에 무력한 자신을 견디지 못해 소위 ‘영 피프티’를 외치며 젊은 감각을 흉내 내고, 노화를 부정하며 피부과와 성형외과 앞에 줄을 서고, 느리게 늙는 습관과 음식에 기대를 걸어 보지만 결국은 다 부질없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죽음은 인간에게 필연이기에 우린 질병과 노화를 마냥 부정할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수용하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노화와 죽음을 피하려고만 하다 보면 결국 ‘당하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이와 달리 불치병에 걸려 수개월이나 수주 뒤 이른 죽음을 맞는 상황도 있다. 나는 말기환자를 보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로서 마라토너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죽음으로 다가가는 환자와 호흡을 맞추며 함께 걷는다. 말기 육종암을 앓는 20대 아들 옆에서 거의 넋이 나가 있는 아버지는 급격히 여위어 누가 환자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 회진 때마다 아버지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나 정작 죽어가는 아들은 담담했다. 다만 치료받느라 학창시절이 사라져 친구 하나 없는 지금이 억울하다고 했다.
아파트가 여러채에 경기도 양평에 별장까지 가지고 있는 70대 자산가는 말기 전립선암을 선고받고 정신이 붕괴되었다. 매일을 술로 지내다 목숨을 끊으려 다량의 약을 삼키기도 했다. 수십억대의 부동산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위로도 의미도 되지 못했다. 가족들의 권유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는데 밤만 되면 소리를 지르면서 병실 아무 곳에나 오줌을 쌌다. 재산 때문에 자신을 죽도록 내버려 둔다며 욕을 퍼붓자 가족들마저 그를 외면하게 되었다. 내 환자 중엔 의사들도 있다. 신을 대신해 목숨을 살리는 직업이지만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무력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큰 명성과 권위를 누렸던 한 선배는 말기 암으로 자신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두려움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남은 시간을 가족과 의미 있게 보내길 권유했으나 항암치료를 고수하며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마지막 몇주는 커튼을 치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동굴과 같은 어두운 병실에서 세상과 벽을 쌓다가 숨을 거뒀다.
저마다 죽음을 맞게 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 7월 떠나간 헤비 메탈 선구자 오지 오즈번의 마지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파킨슨병을 앓던 그는 76살을 일기로 사망하기 3주 전 고향인 영국 버밍엄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이미 설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지만, 마치 헤비 메탈의 왕좌를 의미하는 듯한 의자에 몸을 지탱하면서 열정적으로 여러 곡을 불렀다. 그룹 ‘블랙 사바스’의 흩어졌던 원년 멤버들은 오랜 벗의 마지막을 배웅하듯 한데 모여 연주를 하였고, 많은 동료 뮤지션들도 합주로 오지 오즈번에게 경의를 표했다. 완전하지 않은 그의 노래에도 팬들은 열광하였고, 그는 자신의 불꽃을 다 태웠다는 듯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했다. 콘서트는 그가 팬과 동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자 생전 장례식과 같았다. ‘라스트 댄스’라는 말이 있다. 오지 오즈번처럼 은퇴 전 마지막 무대를 멋지게 장식하는 것이다. 설령 화려함이나 놀라운 결과가 있지 않아도 쉽지 않은 도전이기에 바라보는 이들에겐 큰 감동이 된다.
나는 ‘라스트 댄스’ 하면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연기자 김영애다. 그는 화려한 연예계 스타였지만 어느 순간 남편과 함께 황토팩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황토팩 중금속 검출’이란 논란의 보도로 사업은 주저앉고 부부 관계도 파경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2년 췌장암 수술을 받는다. 그는 삶의 시련을 연기로 극복했다. 사모님 역할을 버리고 억척스러운 국밥집 아주머니 등 궂은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재발된 암은 멈추지 않아 말기로 진행됐지만 그 역시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유작인 54부작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극 후반부로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어 몹시 여위어 갔지만 투혼을 발휘하며 모든 촬영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뒤 탈진하여 부축을 받으며 떠나는 그를 동료 연기자들과 촬영 스태프들은 도열하여 박수 치며 배웅했다. 그리고 두달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삶의 곡절마다 늘 연기자라는 정체성을 붙들었다. 그에게 죽음이 가져오는 회한과 허무함을 달래는 위로이자 구원은 바로 연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 문화부 장관인 이어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췌장암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해야 했을 때 마지막까지 자신의 서재에서 글을 썼고,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마지막 책이 출간 되었다.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던 이야기를 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을 벌레처럼 죽이는 홀로코스트의 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통찰했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했다. 예를 들면 힘든 노역 뒤 잠들기 전 수용자들은 노래하고 시를 낭송하며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 했다. 이런 모습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기 힘들 때는 정체성을 지키는 일상의 과제가 가장 큰 위로이자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용소에서 오페라 가수가 노래하고 시인이 시를 낭송했던 것처럼 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매일 저녁 잠들기 전 나치에게 압수당한 자신의 논문 초고를 복기하였다. 그렇게 자신을 잃지 않는 소소한 저항으로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다 보니 전쟁은 끝이 났고 해방의 날이 찾아왔다. 병원 대신 서재에 앉아 매일 글을 썼던 이어령과 드라마 세트장에서 매일 촬영을 했던 김영애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런 마지막을 예술가나 유명인들에게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합금지가 확산되던 2020년이었다. 간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한 그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였다. 매주 수요일 그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질문에는 매우 짧은 답만 하였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의 첫 마디는 “어떻게 살 방법이 없을까요?”였다. 통증은 어떠냐, 식사는 했느냐는 내 물음을 귀찮아했지만 그가 유일하게 눈을 번쩍이며 관심을 두는 주제는 자동차였다. 자동차 1급 정비사였던 그는 16년 된 노후 경유차를 교체해야 하는 내 고민에 반응해 몇가지 차종을 추천해 주었다.

차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던 중 어느 날 방문을 하니 그는 침대에서 노끈에 아령을 묶어 팔로 당기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 가는 자신을 보며 이대로 무력하게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고 했다. 한주 지나 다시 방문을 하니 침대는 도르래가 달린 제법 그럴싸한 운동기구로 개조되어 있었다. 그는 황달로 뒤덮인 앙상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외출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병문안까지 철저히 거절해왔다. 하지만 침대를 운동기구로 개조하다 보니 엔지니어의 본성이 발동되어 아프고 나서 처음으로 정비공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침대는 매주 멋진 운동머신으로 개량되었고 어느 순간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어느 날 그는 죽기 전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며 수첩에 그린 작은 도면을 보여줬다. 기운이 없는 말기 환자들이 편히 이용할 자동화된 화장실을 설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정말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나는 알았다. 죽음으로부터 나를 구원하는 것은 인생의 큰 성공이나 젊음의 흉내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정체성을 지키는 도전이라는 것을. 그게 없다면 실패한 인생이다. 죽음 앞에 먼저 선 이들이 남긴 교훈이다.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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