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짧고, 적응은 9년이나… 동물농장 아깽이 ‘순정이’ 뒷이야기

2025. 8.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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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냥 뒷조사 전담팀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동물자유연대 고양이 보호소 '온캣'에서 10년째 보호받고 있는 고양이 '순정이'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나름의 시나리오도 짜봤습니다. ‘어쩌면 가까이서 촬영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거리를 두고 어딘가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자리를 비우자’,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도 있으니 배터리는 충분히 충전해두자.’ 고양이를 촬영하는 일은 항상 쉽지 않았다는 경험에서 나온 계획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촬영하기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촬영을 앞두고 사전에 접한 이 친구에 대한 설명이 머리에 맴돈 까닭이었습니다. ‘사람과 친해지지 못한 고양이’. 지난 봄에 만난 ‘재용이’를 연상하게 하는 친구였습니다. 더군다나 사람과 친해지지 못한 채 아깽이 시절부터 9세가 되기까지 보호소에서 지냈다는 오늘의 주인공, ‘순정이’에게 ‘개냥이’와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는 무리였습니다.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며 촬영 예정일을 대비(?) 했습니다.

순정이(왼쪽)가 동물자유연대 '온캣'에서 함께 보호받는 고양이와 머리를 부딪히며 인사하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인지, 순정이의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악질도, 공격성도 없었고, 낯선 촬영 카메라를 다소 피하려 할 뿐이었습니다. 보통의 고양이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 듯해 카메라만 설치하고 사람은 자리를 떴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까, 몸을 웅크리고 있던 순정이가 기지개를 켜며 복도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온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머리를 부딪히며 인사하는 순정이를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순정이는 이런 일상을 누리지 못한 채 10년 전 어둠 속에서 울부짖다 생을 마감했을지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깽이에겐 너무나 깊은 어둠이었던 파이프… 생존 건 대탈출

지난 2015년, 빌라에 매립된 우수관에 갇힌 순정이의 모습. SBS TV동물농장 캡처

지난 2015년 여름, 서울의 한 주택가. 이곳에서는 밤마다 고양이 우는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유독 구슬프게 우는소리는 한 빌라의 벽면에서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고양이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고양이 울음소리의 정체는 건물 안에 있었습니다. 건물 콘크리트에 파묻힌 우수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내시경 카메라까지 동원해 보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작은 몸으로 굽은 형태의 파이프를 거슬러 올라갈 수 없어 고립된 것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호기심에 우수관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수 있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위치를 파악한 덕에 구조는 순조로웠다는 사실입니다. 고립된 고양이를 구조하려면 상황에 따라 며칠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양이가 구조자의 손길을 피해 도망가려는 사례도 있고, 상상을 뛰어넘은 곳에 고립된 까닭에 건물 벽면을 뜯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순정이의 경우, 건물 주인이 구조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고, 건물 밖으로 드러난 파이프를 일부 해체하는 작업만 하면 되는 까닭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합니다.

구조에 든 시간은 한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걸렸었던 것 같아요. 사실 파이프 구조가 좀 복잡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밖으로 빠져나오는 공간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곳으로 유도해서 나올 수 있게 했죠.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동물관리국장(당시 구조자)
구조된 순정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탈수와 기력 저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새끼 고양이는 파이프에 갇힌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습니다. 조 국장은 구조 직후의 모습에 대해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력이 떨어져 있었고 탈수 증상도 조금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하네요.

구조 이후, 건물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우수관을 높게 설치해 고양이가 들어갈 수 없도록 보수 공사를 실시한 겁니다. 조 국장은 “파이프와 같은 곳에 고양이가 들어가서 구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합니다. 고양이는 위험한 상황이 올 때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려고 하기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들어갈 때가 많으니까요. 결국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닥쳤을 때는 대부분 사유 재산인 건물을 일부 해체해야 구조가 가능한데, 순정이 구조 사례는 건물주가 도움을 자처한 아주 긍정적인 사례였다고 하네요.

이런 사례가 많다 보니, 건물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원상복구를 약속하고 구조에 들어갈 때가 있어요. 물론 강제할 순 없어서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지요. 결국 사회 구성원 간 합의를 통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동물관리국장

10년 걸린 사회화 “나이 먹으면서 유해진 거죠”

10세가 된 지금, 순정이는 과거에 비해 고양이 사회에 조금씩 적응한 모습이었다. 동그람이 정진욱

이름처럼 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깽이 때부터 10년간 순정이를 지켜본 조 국장의 소회였습니다. 당시 3개월령이었던 순정이는 사회화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조 당시에도 사람을 두려워한 까닭에 파이프 밖으로 빠져나올 기회를 한차례 놓치기도 했죠.

아깽이들 같은 경우,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아 얘는 입양을 가기는 조금 힘들겠다’라고 받아들일 때가 와요. 순정이 같은 경우도 아무래도 어릴 땐 성격도 있는 편이어서 더욱 그랬죠. 이건 좀 ‘냥바냥’인데, 성격이 빠르게 순해지는 애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애들이 있어요. 순정이 같은 경우에는 후자라… 아무래도 좀 많이 안타깝죠.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동물관리국장

지금이 되어서야 고양이들과 두루두루 친해진 모습을 보이는 순정이.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양이 친구도 가려서 사귀는 편이었다는 게 순정이 ‘전담 활동가’인 이해민 선임활동가의 증언입니다.

제가 처음 봤던 순정이는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예요. 고양이들과도 친한 친구들끼리만 잘 지냈는데, 요즘 와서야 좀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많이 여는 것 같아요.
이해민 동물자유연대 온캣 선임활동가
순정이는 편안한 분위기에서라면 마음껏 돌아다니고 활동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사람과의 접촉도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발톱을 깎아줄 때에도 두 명의 활동가가 투입되어야 했지만, 이제는 이 활동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해질 정도가 되었다고 하네요. 9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순정이는, 이제 가정집에 입양을 가도 괜찮은 걸까요?

물론이죠. 오히려 가정집에서 지내는 모습은 지금과 더 다를 거예요. 순정이를 자세히 보면, 분위기를 많이 타요. 주변에 긴장할 요소가 없고, 사람도 어수선하지 않을 때 만지는 걸 허락해요. ‘여기에 별일이 없나 보다’라고 생각될 때가 순정이가 마음을 여는 순간이에요. 저도 그걸 알고 순정이랑 가까워지기까지 2~3년이 걸렸어요. 그만큼 순정이에게 시간을 주고 여유를 주면, 충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꼭 그렇게 되길 바라요.
이해민 동물자유연대 온캣 선임활동가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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