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영화 ‘필라델피아’ 속에 살아 숨 쉬는 오페라

전남일보 2025. 8. 2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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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셰니에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영화속 최고 명장면 만들어 내
에이즈 환자 새 희망·의지 표현
노래로 진정한 예술의 힘 전달
'안드레아 셰니에' 광주공연 포스터.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근래 tvN의 '서초동', JTBC의 '에스콰이어',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TV나 OTT 드라마 미니시리즈에서 변호사 또는 재판 등 법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또한, 인권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소재로 한 국내 영화 '변호인(2013)'을 비롯하여 해외 명작으로 꼽히는 '모리티안(2021)', '크레이머 크레이머(1979)', '어 퓨 굿맨(1992)', '필라델피아(1993)' 등 수많은 영화가 인권, 진실을 주재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법정 드라마나 영화들은 시대가 주목하던 사건들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그 진실을 대중에게 알리며 다시금 주목을 받게 했다.

법정 영화는 이성적 인간을 다룬 법학과 감성적인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영화를 결합하여 이성과 감성이 맞닥뜨린 진실을 융합적 사고로 대중에게 표출하는 장르이다. 특히 영화 '필라델피아'는 에이즈와 동성애를 향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다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당시 사회에서 언급하기 어려웠던 소재로 인식되던 질병인 에이즈를 다룬 첫 번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대학 2학년 때 필자가 만난 미국영화 '필라델피아'는 큰 충격이었다.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당시 동성애와 에이즈는 금기의 단어였을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회문제였기 때문이다.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이라는 할리우드 최고 배우들의 열연에도 이 작품은 보는 내내 나에게 상당한 불편함을 줬으며, 이는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통념화된 인식의 틀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로 나를 이끈 것은, 당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과 더불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소재 등의 화제성보다는 오페라 가수로, 연출가로 꿈을 꾸던 저자를 유혹하는 오페라 한편이 영화 '필라델피아'를 이끄는 매개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등장하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수잔나와 백작 부인의 "편지 이중창"처럼 수많은 영화에서 오페라에 등장하는 음악을 OST로 사용하지만, 영화 필라델피아에 등장하는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는 너무 강렬하게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당시에는 동성애자라면 직장이나 사회에서 멸시를 받으며, 에이즈는 불치병으로 부적절한 관계의 소산으로 혐오스러운 질병이라 취급을 받고 있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영화 '필라델피아'는 주인공인 앤드류 버킷(톰 행크스)은 필라델피아 대형 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로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숨기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곧이어 증상이 발현된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회사는 그를 해고하지만 이를 부당해고로 여겨, 변호사인 조 밀러(덴젤 워싱턴)와 함께 소송을 하게 되고 승소하지만 악화한 병세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이다. 

덴젤 워싱턴이 열연한 주인공의 변호인인 조 밀러 역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이고도 보편적인 삶과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인으로 그도 저자나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동성애자를 멀리하며, 단순한 접촉에도 에이즈 감염에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고, 부당하게 차별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버킷의 변호를 맡는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와 주인공 버킷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진정으로 소통하게 되고 한층 더 열린 마음으로 발전된 관계로 자신들 앞에 있는 큰 벽에 저항하게 되는데, 그 소통의 매개체가 바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에서 등장하는 마들렌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라는 곡이다.

버킷은 동성애자들과 파티를 마치고 돌아온 밤, 다음날 재판을 위해 그의 변호인 밀러와 함께 거실에 있다. 그리고 버킷은 밀러에게 갑자기 "기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기도의 주제는 무엇이었냐"고 묻는다. 이와 같은 질문과 동시에 버킷은 축음기 위의 LP판을 켜고 방안에 흐르는 음악과 함께 자신 품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낸다. 방안을 뒤덮은 음악은 앞에서 언급했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지식인의 격동의 삶을 다룬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라는 곡으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이다. 이 장면 처음은 아리아 전주가 흐르고 곧이어 버킷은 밀러에게 흘러나온 음악에 관하여 묻는다. 그리고 이 음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라는 작품이며 마들렌이라는 역을 마리아 칼라스가 연주하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라는 곡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후 이 아리아에 버킷이 몰입하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함에 따라 볼륨이 커지고 장면 전체를 압도한다.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열연하고 있는 마들렌(막달레나).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이 아리아의 내용은 귀족 처녀인 마들렌이 프랑스 혁명 뒤에 몰락한 자신의 처지와 겪어온 어려움을 담담하게 시작해서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아리아이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여주인공 마들렌은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때 어머니는 자신을 지키려고 희생당하고, 몰락한 고향을 등지고 어린 하녀에게 의지해 연명하는 기구한 인생을 살고 있다. 버킷은 몰락하는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상황을 마들렌과 동일시하며 마리아 칼라스 가슴 저리는 격정적 음성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밀러는 처음에는 버킷의 사생활이라던지 그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초지일관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던 그는 음악과 하나가 되어 내뿜는 격정적인 토로에 버킷을 향한 알 수 없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저자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들 역시 이 순간을 영화의 최고 명장면이라 꼽는다.

버킷과 함께 한 아리아 내용을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자면 마들렌은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절망스러운 상황을 읊조리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 그녀는 하늘에서 들려온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천사의 목소리처럼 새로운 희망과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아리아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칼라스의 탁월한 연주 안에 담긴 절통한 심경과 드라마틱한 감성은 이 아리아를 절대 잊지 못하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시청자에게 "여러분은 이 남자의 편에 설 수 있습니까?"라는 울림이 들려 올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은 정답을 주저할 것이다. 저자는 영화에 등장하는 무거운 현실에 관하여 논하고 나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각자의 철학과 삶의 형태에 맞추어 자신의 가슴에서 울려오는 음성을 통하여 답하길 바란다. 저자에게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핵심 키워드를 나열해보라고 한다면, 'La mamma morta', <안드레아 셰니에>, '앤드류 버킷', '조 밀러',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라고 말하고 싶다. 에이즈, 동성애자라는 강렬한 소재가 핵심 키워드라 할수도 있으나 이러한 차별과 편견이 가득 찬 환경을, 강렬한 음악을 통해 소통해가며, 승리하는 두 남자의 특별한 이야기는 답답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오페라에 담긴 한 곡의 노래가 근접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깨어내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던져주는 것은 진정한 예술의 힘을 볼 수 있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Tip> 영화 '필라델피아' 중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 버킷(톰 행크스)과 그를 변호하는 조 밀러(덴젤 워싱턴)가 <안드레아 셰니에>의 아리아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들으며 소통을 이루어가는 명장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wRHwKZSu-w&list=RDDwRHwKZSu-w&start_radio=1>

"계속 살 것이니, 나는 삶이요. 천국이 내 안에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며 내가 네 눈물을 모으리라. 너와 함께 걸으며 너를 도우리라. 웃고 희망을 품어라. 내가 사랑이니. 피와 진흙에 둘러싸여 있느냐? 나는 신성하다. 나는 망각이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신이로다."(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가사 중)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