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의 복잡성과 남겨진 사람들 [권김현영의 사건 이후]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지난 2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만 한국은 여기에 집착한다”고 언급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미리 일본과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다 미리 정리했다”고 답했다. 언론에 공개된 짧은 문장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지만 다음 세가지는 알 수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를 ‘컴포트 위민’(Comfort Women)이라고 표현했다. 둘째, 이 문제는 한·일 간 불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불화의 원인은 한국이 여기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 이재명 대통령은 회담 직전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이 문제를 ‘정리했다’고 답했다.
우선 ‘컴포트 위민’은 가해국인 일본에 의해서 명명된 말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매매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제도적으로 동원되고 관리된 제도적인 성노예 시스템으로 인식한다. 1998년 제5차 유엔 소수인종·여성 차별 철폐 및 보호 분과위원회 회의에 발표된 게이 맥두걸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컴포트 위민’은 가해자 입장에서 서술된 완곡어법이며, 이 문제는 ‘무력분쟁 중의 제도화된 강간, 성노예와 노예제 유사 관행’(systematic rape, sexual slavery and slavery-like practices during armed conflict)이다. 즉, 전시 성노예가 정확한 말이다. 하지만 몇몇 당사자들이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붙이기를 거부하거나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작은따옴표를 붙여 이러한 명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장치를 넣는다.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도 대체로 이 말을 할 때는 양쪽 손의 손가락을 통해 표시를 함께 한다. 이는 당사자들의 심적 고통을 이해하면서 찾아낸 망설임과 마주침으로 발명된 규칙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 단어를 이야기할 때 인용부호 손짓은 없었다. 그에게 인권·젠더 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다만 이 문제는 복잡함을 허용하지 않는 트럼프식 말하기가 무엇을 무시하는지를 분명하게 환기한다.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단어 중심으로 반복해서 말하는 그 단순함이 향하는 지향은 정확하게 가해자의 옆이다.
한·일 간의 ‘불화’에서 문제의 원인은 한국에 있다고 지목되었다. 트럼프는 ‘픽세이티드 온’(fixated on), ‘스턱’(stuck) 같은 단어로 일본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표현했다. 두 단어 모두 고정되어 있고 고착된 상태를 뜻한다. 한국 언론은 이 단어들을 ‘집착’으로 번역했다. 고착은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그 자체를 표현한다면, 집착은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좀 더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집착’이라는 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바꾼다면, 고착은 현재의 정치적 어려움을 묘사한다. 어떤 방식으로도 후자가 나은데도 ‘집착’이라는 번역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아는 기자에게 물어봤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하며 아마도 더 쉬운 말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답했다. 쉬운 말, 단순한 말이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때로 쉽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해야 하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고투들을 모두 무용한 것으로 바꾼다.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 자리에서 논쟁을 하거나 잘못된 표현을 수정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미리 일본과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다 미리 정리했다”고까지 말했다. 이 정도로 말하는데도 나는 대리 수치심이나 굴욕감 같은 것이 그 순간 들지 않았다. 이것이 천년에 걸친 사대주의 외교의 ‘눈치’라며 칭찬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다. 실용주의와 중도보수 프레임의 강력함에 대해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 대통령이 가진 어떤 캐릭터성이 이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힘이었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은 트럼프가 아니라 피해자와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고착되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자꾸 사람들을 뒤에 남겨 놓는다. 나는 무엇보다 그 점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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