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손녀가 아닌, 쓰시마 유코의 딸로서 [.txt]

한겨레 2025. 8. 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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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 바이러스는 생전 엄마를 돌봐주었던 친구 메이코와 브라질로 여행을 떠난다.

지카 바이러스와 메이코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동질감을 느끼며 브라질 여행길에서 유년의 기억과 상처를 나눈다.

메이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카도 쉽지 않았던 엄마와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엄마의 장례식에 흰색 꽃 대신 붉은 장미를 바치는 방식으로 뒤늦게 엄마를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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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가 다시 만난 여성
붉은 모래를 박차다 l 이시하라 넨 지음, 박정임 옮김, 페이퍼로드(2023)

지카 바이러스는 생전 엄마를 돌봐주었던 친구 메이코와 브라질로 여행을 떠난다. 메이코는 브라질의 일본인 공동체에서 태어나 브라질 국적으로 살아왔지만, 농장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포르투갈어를 배우지도 못했다. 결혼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여기서도 메이코는 언제나 국외자다. 지카 바이러스와 메이코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동질감을 느끼며 브라질 여행길에서 유년의 기억과 상처를 나눈다.

엄마는 지카 바이러스를 낳고 얼마 후 이혼했고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혼외자로 남동생 다이 키를 낳고 키웠다. 자유로운 화가로서의 정체성이 언제나 우선이었던 엄마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왔고, 다이 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자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해 아들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엄마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보란 듯이 붉은 립스틱을 바르며 맞선다. 지카는 같은 여성으로서 그런 엄마를 지지하지만, 다이 키의 생부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의 경험은 동시에 엄마를 향한 뾰족한 원망의 마음을 심어주었다.

메이코 역시 얼마 전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나란히 떠나보냈다. 브라질 태생이라 일본 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자신을 무시했던 두 사람을 돌보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메이코는 시어머니와 남편, 시어머니와 시누이 사이 복잡하고 양가적인 관계를 새롭게 이해해 보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는 메이코 자신의 과거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도 깃들어 있다. 메이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카도 쉽지 않았던 엄마와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엄마의 장례식에 흰색 꽃 대신 붉은 장미를 바치는 방식으로 뒤늦게 엄마를 긍정한다.

이시하라 넨은 ‘자신의 아픔에 둔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둔감해질 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해 무방비가 된다’는 말로 가부장제의 폭력과 성폭력, 군사 제국주의의 폭력을 예리하게 바라본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2001년 일본 방송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다큐멘터리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의 2부인 ‘전시 성폭력을 말한다’를 방영할 당시 ‘위안부’와 전 일본군의 증언을 삭제해 공분을 일으켰을 때,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 ‘하얀 꽃을 숨기다’를 집필해, 일본과 한국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폭력을 주시해 온 작가에게 그저 다자이 오사무의 손녀라는 꼬리표를 붙인다면 무례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한 소수자와 일본 내 소수민족의 구비문학과 문화에 깊이 공감한 작품을 써서 주목받았던 쓰시마 유코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편이 낫겠다. 쓰시마 유코의 이혼 후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빛의 영역’과 ‘붉은 모래를 박차다’에는 상의도 없이 어린 딸을 유치원에서 데려간 아빠의 무책임한 모습이 겹쳐 등장한다. 두 작품은 모녀가 시차를 두고 소설로 나눈 대화로도 보인다. 이 대화의 의미는 뜻밖에도 메이코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난 단지 상기시켜 주고 싶었을 뿐이야. 세계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을.” 이 말에 지카는 곁에 없는 엄마를 향해 응답한다. “엄마, 듣고 있어? 나는 살아갈 거야.”

이주혜 소설가·번역가

이주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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