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넘쳐나는 보이스피싱에, 재판 지연 가중
작년 12월 부산지법 서부지원 401호 형사 법정.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현금 수거책을 맡은 50대 여성의 재판이 열렸다. 변호인은 재판부에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만 피고인의 추가 범행이 곧 기소될 예정이니 기일을 새로 잡아 한꺼번에 재판받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보이스피싱 사건이 너무 쌓여 있어 추가 기일을 잡을 여유가 없다. 바로 변론을 시작해달라”며 거절했다. 이날 법정 모니터엔 보이스피싱 사건 재판만 3건 더 예정돼 있었다.
전국 지방법원 형사합의 재판부가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높아지면서, 과거 단독 판사가 맡던 사건이 합의부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중요하고 복잡한 사건을 많이 다루는 합의부에 보이스피싱 사건까지 몰리면서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28일 법원행정처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지방법원 형사합의부에 신규 배당된 사건 중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의 비율이 29.9%에 달했다. 3건 중 1건이 보이스피싱 사건인 셈이다. 지난해 같은 달 11.3%에서 크게 늘었다. 서울북부지법(50.6%), 서울동부지법(43.5%), 인천지법 부천지원(40%) 등 일부 법원에서는 신규 사건의 절반가량이 보이스피싱이었다.
법원에서는 지난 2023년 11월 보이스피싱 범죄 법정형을 ‘10년 이하의 징역’에서 ‘징역 1년 이상’으로 높인 통신 사기 피해 환급법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형사합의부 보이스피싱 사건이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법원조직법상 법정형이 징역 1년 이상인 사건은 합의부가 맡도록 돼 있어, 법 개정 전에는 단독 판사가 맡던 사건들이 합의부로 넘어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사건 처리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 1심 불구속 형사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이 단독 판사는 181일이었지만 합의부는 229일로, 한 달 이상 더 걸렸다. 합의부는 판사 3명이 합의 과정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건 처리 기간이 더 필요하다. 한 형사합의부 재판장은 “기소된 피고인은 대부분 총책이 아닌 현금 인출책·전달책·수거책 등 하부 조직원이서 사건 내용이 단순하다”며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사건들이 합의부로 오다 보니 불필요하게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합의부가 기존에 다루고 있는 사건들도 지체된다는 점이다. 스토킹 피해에 시달리던 40대 회사원 A씨는 범인이 지난 5월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첫 재판 기일이 석 달 넘도록 잡히지 않아 법원에 물어봤더니 “보이스피싱 사건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재판 날짜를 잡기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소 후 넉 달이 지난 9월에야 첫 기일이 잡혔다.
법원마다 고육책을 짜내고 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형사합의부 미제 사건이 2023년 말 218건에서 작년 말 400건으로 급증하자, 올해 3월부터 민사 재판부에 일부 보이스피싱 사건을 넘기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달부터 보이스피싱 사건을 단독 사건 2심을 맡는 ‘형사 항소부’에 배당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법원조직법을 고쳐 보이스피싱 사건을 단독 판사가 심리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은 실제 음주 운전 재범 사건이나 특수상해·절도 등 법정형이 높은 사건을 예외적으로 단독 판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형사합의부
판사 3명 이상으로 구성돼 복잡하거나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를 말한다. 법정형이 1년 이상 징역·금고형이거나 무기징역·사형인 사건은 합의 재판부가 맡는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사건을 다루는 고등법원의 2심 역시 합의부가 재판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환율·알테쉬 불안에 中 직구 주춤... 1분기 증가율 0.6%
- 장동혁 “공소 취소로 죄 안 없어져…감옥서 후회할 날 올 것”
- 외교부 “호르무즈 韓 선박 화재 진압 완료… 선원 피해 없어”
- 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 향년 92세
- 국힘, 부산 북갑 후보에 박민식... 무소속 한동훈과 단일화 주목
- 호르무즈해협 선박 화재 진압... 두바이항 예인 예정
- 정부, 호르무즈 韓 선박 폭발·화재 관련 대책회의 개최
- 與, 호르무즈 韓선사 운용 선박내 폭발에 “선원 안전 최우선”
- 광주에서 고등학생 2명 괴한에 흉기 피습 당해 1명 사망
- 너도나도 AI로 앱 만들어볼까? 저질 앱 쏟아진 쓰레기장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