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가 일상인 바그너 팬… 격한 환호·박수로 “합격”

바이로이트(독일)/김기철 기자 2025. 8. 2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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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박종민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작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이례적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마티아스 다비츠는 정치색을 뛰어넘어 뮤지컬처럼 화려하고 희극적인 작품으로 연출했다. 박종민은 주요배역 포그너로 출연, 박수를 받았다.ⓒBayreuth Festival/Enrico Nawrath

‘바그너의 성지(聖地)'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베이스 박종민(39)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주요배​​​​​​​​역 파이트 포그너이다.

‘마이스터징거’는 독일의 장인(匠人) 문화와 전통을 기리는 바그너의 대표적 오페라(악극)로 공연 시간만 4시간 반을 넘는 대작이다. 지난달 25일 축제 개막작으로 올린 이 작품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함성과 박수, 열광적 발 구르기…. 관객들을 이례적으로 만장일치 환희에 빠뜨렸다.’ (디 차이트)

연출가, 지휘자는 물론 출연진에게도 직설적 야유를 퍼붓는 현지 분위기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포그너로 출연한 박종민이 2막에서 딸 에바역 스웨덴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닐손과 노래하고 있다.ⓒBayreuth Festival/Enrico Nawrath

11일 찾은 바이로이트 ‘마이스터징거’ 공연장에서 박종민은 작스, 발터, 에파, 다비트, 베크메서를 맡은 다른 주연들과 커튼콜에 나서 환호를 받았다.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인사했을 때 ‘부~’ 야유가 잠깐 들렸지만 대체로 우호적 분위기였다. 박종민은 “바그너 음악을 외다시피 하는 골수 팬을 상대로 독일어로 노래하고 얘기하기가 부담스러웠지만, 무사히 잘 끝나 다행”이라고 했다.

‘마이스터징거’는 16세기 독일 뉘른베르크를 배경으로 시가(詩歌) 창작과 연주로 이름난 구두 장인 한스 작스를 모델로 삼았다. 성 요한 축제 때 노래 경연 대회에서 장인들의 노래 솜씨를 겨루는데, 부유한 금세공 장인 포그너가 우승자에게 딸 에파를 주겠다고 공개해 열기가 끓어오른다. 박종민은 1막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포그너를 능숙하게 해냈다.

독일의 대표적 베이스 게오르크 체펜펠트는 바그너 오페라 주역 중 노래와 대사가 가장 많은 주인공 작스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파르지팔’ 주역 구르네만츠까지 맡아 체력이 달렸는지 3막 들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체펜펠트는 이날 이후 노래를 못 하거나 대타가 나서는 등 곤경을 치르다 마지막 날인 22일 무대에 복귀했다.

발터 역 미국 테너 마이클 스파이어스는 스타 탄생을 알렸다. ‘바리테너’(바리톤 음역까지 소화하는 테너)로 이름난 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주요 극장의 구애를 받는 떠오르는 별이다. 작년 8월 첫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다. 그는 싱싱한 목소리에 능글맞은 연기력까지 더해 바그너 가수로 주목할 만했다. 에파 역 스웨덴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닐손은 풍성한 성량과 매력적 외모로 박수를 받았다.

연출가 마티아스 다비츠는 뮤지컬 연출로 이름난 베테랑. 박종민은 “반(反)유대주의 비판 등 정치적 색깔을 빼고 희극적 재미를 살린 게 특징”이라고 했다. 3막에선 메르켈 전 독일 총리처럼 분장한 배우 둘을 출연시키는 등 코믹 요소를 가미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현역 시절부터 바이로이트를 자주 찾는 단골 관객이다.

연출은 가벼웠으나 음악은 가볍지 않았다. 최저 12미터까지 내려가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울려 퍼지는 관현악은 앞쪽 객석에서도 은은하게 들렸다.

올 12월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르케 왕으로 출연하는 베이스 박종민.

박종민은 빈 국립오페라 전속 가수로 활약하다 프리랜서로 나섰다. 최근까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마드리드 왕립 극장 등 주요 오페라 극장에 서 왔다. 다음 시즌에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보엠’에 나선다.

강병운(필립 강), 연광철, 사무엘 윤에 이어 바이로이트 축제 10년 만의 한국 저음(低音) 가수 복귀다. 단역으로 출발한 선배들과 달리 데뷔부터 주연급으로 출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올해 새로 조직한 합창단에도 한국 성악가가 20명 넘게 오디션을 통과해 무대에 섰다”고 했다.

12월 국립오페라단이 올리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르케왕(王)으로 국내 팬들을 만난다. 야프 판 즈베던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연주를 맡았다. 바이로이트에서 합격점을 받은 베이스 박종민을 만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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