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북극항로 시대, 부울경 통합은 필수다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 2025. 8. 2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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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광역 항만물류체계 구축, 해양산업 클러스터도 조성
오일·가스 허브 함께 추진…글로벌 주도권 쥘 수 있어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

21세기 기후위기는 새로운 해양질서를 탄생시켰다. 지구 온난화는 북극해의 해빙을 앞당기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의 북극항로(NSR)를 본격적으로 열고 있다. 기존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보다 최대 7000㎞ 단축되는 이 항로는 10일 이상 운항 시간을 줄이고, 물류비용은 20~30%까지 절감이 가능하다. 이제 이 변화는 단지 해운 산업의 재편을 넘어, 대한민국의 경제 패러다임을 흔들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 변화의 중심에 부울경이 있다. 부산항은 세계 2위의 환적 항만이며, 울산은 조선·석유화학·에너지 산업의 메카, 경남은 세계적 조선기술과 기계 산업 기반을 자랑한다. 이 세 지역은 북극항로의 최적 기종점(起終點)이자, 동북아 복합 해양물류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부울경은 이 기회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분절된 행정체계’ 때문이다. 각 시·도는 여전히 항만개발, 산업정책, 기업 유치 등에서 중복투자와 경쟁을 반복한다. 항만은 따로 놀고, 교통은 단절되어 있으며, 국제 협상력도 분산된다. 지금처럼 흩어진 상태로는 글로벌 북극항로 게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없을 게 자명하다.

해답은 명확하다. ‘행정통합’이다. 부울경 행정통합은 북극항로 시대를 맞아 동남권을 동북아 해양산업·물류 허브이자 극지 경제권의 핵심 거점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하나의 광역경제권, 하나의 전략, 하나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울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시너지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첫째, 초광역 통합 항만물류 시스템 구축이다. 현재 개별적으로 관리되는 부산신항과 울산항을 통합해 ‘부울경 통합항만공사’(가칭)를 설립하면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부산신항은 북극항로 전용 터미널을 갖춘 거점 환적 허브로, 울산항은 액체화물 및 에너지 전문항으로, 경남의 항만들은 배후 산업 지원 및 피더(feeder) 항만으로 기능을 특화하고 분담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북극항로를 통해 유입되는 막대한 물동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철도·도로망, 항공과 연계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동북아 슈퍼포트(Super-Port)’가 될 잠재력을 지닌다.

둘째, 미래 첨단 해양산업 클러스터 조성이다. 북극항로 운항에 필수적인 쇄빙선 및 내빙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기술은 우리 조선업의 강점이다. 부울경 행정통합을 통해 울산·거제의 조선소(쇄빙 LNG선 건조), 창원의 기계산업단지(핵심 기자재), 부산의 R&D 캠퍼스(해양과학기술 연구)를 연결하는 ‘북극 기술 산업벨트(Arctic-Tech Belt)’를 조성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선박 건조를 넘어, 설계부터 기자재, 건조, 금융, 운용까지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산업 생태계를 선점하는 전략이다. 또한, 북극항로 관련 신산업(극지 탐사, 해양 바이오 등) 육성 및 R&D 역량 결집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셋째, 에너지·자원 안보 거점화 전략이다. 북극항로의 또 다른 중요성은 자원 운송에 있다. 러시아의 야말 반도 등지에서 생산되는 대량의 LNG가 북극항로를 통해 동아시아로 수입될 것이다. 석유화학 단지가 발달한 울산을 중심으로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를 초광역 단위에서 추진한다면, 북극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저장·가공하여 국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는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는 관련 플랜트 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전망이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다. 이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경제·산업 생태계의 재편이다. 부울경이 따로 움직여서는 결코 대응할 수 없다. 정부도 이미 방향을 잡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북극항로 국제협력 강화, 친환경 선박 전환 지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부울경 스스로 통합의 비전을 세우고, 산업·학계·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북극항로-메가시티 전략위원회’ 같은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당장 통합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동남권 북극항로 경제자유특별자치단체’와 같은 특별지방자치단체 모델을 통해 북극항로 관련 핵심 기능부터 통합하는 단계적 접근도 고려할 수 있다.


북극해가 거의 해빙되어 상업적 운항이 가능하다고 예측되는 향후 10년은 결정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북극항로 전략과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을 결합한 10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내년이면 일본에 의해 부산항이 강제로 개항된 지 150주년. 이제는 우리 스스로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문명사적 운명을 개척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부울경이 ‘대한민국의 미래 항로’를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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