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적 최대 과제는 생태 위기…인간과 만물 공생을”
[짬] 김영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공동대표

“연좌하면서 제가 우린 살 만큼 산 것 아니냐, 나이 든 사람들이 나서서 계엄군을 태운 차량 앞에서 막자고 농담처럼 말했어요. 그랬더니 몇 분이 호응하시더군요.”
2018년 정년을 맞은 김영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소식을 아내한테 듣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국회로 향했다. 계엄 선포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라 국회 앞에 시민이 많지 않았다. 그때 부부의 눈에 시민들이 계엄군을 태운 수방사 차량의 국회 진입을 저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이 차량 앞에 연좌하며 다른 시민들의 동참을 독려했다.
그는 “도덕 교사 출신인 아내가 먼저 국회로 가야 한다”고 했다면서 그날 심경을 떠올렸다. “80년 광주민중항쟁 때 광주 시민이 무차별 학살당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일찍부터 알았어요. 제가 다니던 향린교회가 광주와 연결되어 소식을 앞서 들었거든요. 그때 아무것도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제 마음 속에 깔려 있었어요. 이번에 한번 행동으로 갚을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아무 것도 못해 부끄러웠으니.”
사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4개월이 지난 2022년 9월부터 거의 매주 거리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2023년 2월엔 박충구 감신대 명예교수, 해방신학자 김근수, 정종훈 연세대 교수 등과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약칭 민사네)를 만들어 40여명 회원들과 함께 매주 광장에 섰다. 그와 박충구 교수가 공동대표인 민사네에는 조헌정 목사,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최자웅 신부, 이철 전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고문이다.
지난 6월엔 민사네 3년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집 ‘정의실천’을 펴내기도 했다. 여기에는 민사네 시국성명과 시국논평, 회원 중심으로 18차례 연 시국포럼 발제와 토론 내용 등이 담겼다.
김 교수를 지난 2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윤석열은 역사상 가장 저열한 걸(중국 하나라 왕)·주(중국 상나라 왕) 같은 폭군이라고 봐요.”
한문학자이자 여의샛강생태공원 ‘샛숲학교’ 교장도 지낸 그가 지난 3년 아내와 함께 매주 거리로 나와야 했던 이유이다. “제가 윤석열에 가장 분노한 것은 건설 노동자를 ‘건폭’(건설노조+조폭)이라고 한 겁니다.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한 노동자가 없으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는 ‘검찰 카르텔’을 만들면서, 적반하장으로 노동자들을 건폭이란 말로 모멸하고 또 가난한 사람은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고 대통령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자격 미달이란 생각을 했죠. 신경림 시에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이 있는데, 윤석열은 가난한 사람을 인격체가 아니라 발톱 밑의 때처럼 여겼어요.”
조선 후기 학자 이광정이 쓴 망양록 연구로 모교인 연세대 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역 교수 시절에도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학자’였다. 2005년에 김명인·박혜영 교수 등과 함께 ‘우리 시대를 생각하는 인하대 교수 모임’(약칭 우생모)을 만들어 자본이 점령한 대학 현실에 대한 해법 모색에 노력했다.
인하대 교수회 의장 시절인 2015년에는 그가 주도해 대학 비룡탑 앞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식을 했다. 이 행사에는 학생들보다 대학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많이 참석했단다. 그가 이끄는 교수회가 청소 노동자들 편에서 목소리를 내고, 타월과 같은 기념품을 만들 때도 꼭 챙겨준 것을 잊지 않고 교수회 행사에 동참한 것이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에는 인하대 교수회 사상 처음으로 교수회 깃발을 앞세워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그는 우생모 결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대학이 자본의 힘에 초토화되고 있으니 비록 소수라도 진보적인 교수들이 뭉칠 필요가 있다고 봤죠. 회원이 15명에 불과했지만 뜻이 정당하고 또 조직되고 선전·선동 활동도 잘하니 대학에서 영향력이 있었죠.”
지난 3년 ‘거리의 한문학자’로 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그는 눈물이 쏟아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농민들 트랙터 시위에 젊은 여성들이 합류한 남태령 집회에 가려고 아침 일찍 남태령 쪽 역 계단을 오르고 있었어요. 그때 뒤에서 오던 젊은 여성이 ‘할아버지 날이 굉장히 춥습니다. 제 목도리를 드리겠습니다’라며 목도리를 건네는 거예요. 머리가 하얀 노인네가 자기들을 응원하러 왔다고 생각해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감동이었어요.”
2023년 결성해 윤석열 퇴진 운동 시국 성명·논평 내고 포럼 열기도
이만열·박충구·김근수 등 학자와
성직자 조헌정·최자웅 등 40여명 참여
3년 활동 보여주는 자료집 출간
“앞으론 한국 사회 어디로 가야 하나
담론 형성에 초점 맞춰 활동할 것”
민사네는 지난 7월 기존 운영진에 역사학자인 백승종 전 서강대 교수를 교육위원장으로 새로 뽑아 2기를 시작했다. 2기 활동에 관해 묻자 그는 “회원들이 지식인과 종교인인 만큼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담론 형성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사실 지금 우리 앞에 자본주의 위기나 생태 민주주의 도래 같은 인류사적 과제가 많아요. 윤석열 때문에 이런 걸 놓치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죠. 기후위기나 종교의 파시즘 현상, 자본의 노예가 된 대학의 상업주의 문제 등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뭔지 말과 글로 찾으려 합니다.”
그가 보는 오늘날 인류사적 가장 큰 과제는 생태 위기이다. 3년 전에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란 책도 냈다. “지금껏 인류는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해 인간이 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어요. 인간과 만물이 상호 공생하는 생태 민주주의로 가야 합니다.”
그는 우리 전통 사상에서도 생태 민주주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실학자 박지원은 이민택물(利民澤物·백성을 이롭게, 만물을 윤택하게)을, 실학자 정약용은 택만민, 육만물(澤萬民, 育萬物·만민이 윤택하게, 만물이 잘 자라도록)을 말했어요. 육만물은 꽃은 꽃답게, 나무는 나무답게 번성해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게 한다는 거죠. 인간이 자기 이익을 위해 덜 익은 것을 마구 베거나 농약 같은 것을 확 뿌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는 퇴임 뒤에도 ‘인문학을 위한 한문 강의’(2018), ‘고전에 길을 묻다’(2021) 등 고전 대중서를 꾸준히 펴냈다. 고전 문헌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대신 옛글의 뜻을 현 상황과 접목해 살피는 데 초점을 두고 책을 쓰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일기도 매일 쓰고 있다. “제 독서 철학이 ‘동서고금취사(東西古今取捨)’입니다. 제가 만든 말이죠. 동양이든 서양이든 옛날이든 지금이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역사 현실과 저의 요구에 맞는 책은 취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린다는 거죠.”
“지금은 인간 욕망만 좇는 오만한 사회
겸손해야 개인이나 사회 다 잘돼”
오늘날 가장 되새겼으면 하는 고전 글귀를 묻자 그는 중국 고전 ‘서경’에 나오는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을 들었다. “교만은 손해를 불러오고 겸손은 이익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노자의 비우고 낮추고 부드럽고 겸손하라는 말과도 통해요. 지금은 오만한 사회입니다. 자기 욕망 충족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생태적으로 유지되기도 힘들고 개인적으로도 망하는 길입니다. 백성들도 그런 지도자는 마음으로 따르지 않아요. 오만한 권력자가 힘에 따라 통치를 하면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 공동체는 엉망진창이 됩니다.”
60살 이후 삶의 신조가 ‘이웃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라는 김 교수는 “가지고 배우고 나이 든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한 자에게는 세게 대응하고, 약한 자는 따뜻하게 돕는다)”이라고도 했다. 그가 정치인 이재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단다. 그는 이어 “말보다 행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독립운동을 말로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것도 행동했기 때문이죠. 민사네 고문인 이만열 선생님도 ‘백 마디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하시더군요. 윤석열 탄핵 때 보세요. 처음 국회에서 탄핵이 안 되니 여의도에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10만, 20만, 30만이 모이니 탄핵이 되잖아요.”
나이 어린 제자들에게도 늘 깍듯했다는 그는 2016년에 인하대 총동창회가 주는 참스승상을 받았다. 그가 민사네에서 여러 지식인과 종교인을 아우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겸손한 성품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금도 후배 학자들이 책을 내면 정성껏 서평을 써 에스앤에스에 올리곤 한다.

겸손의 뿌리를 궁금해하자 그는 “제가 좀 착하게 생겼잖아요”라며 환하게 웃은 뒤 경북 의성에서 정미소집 막내아들로 자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 같은 거는 좀 타고난 것 같아요. 어릴 때 우리 집에 걸인이 자주 왔어요. 그때 저는 그들을 정말로 환대했어요. 어머니가 쌀을 한 되 주면 저는 옆에서 ‘어머니 조금 더 넣어주세요’ 하고, 걸인에게는 ‘다음에 또 오세요’ 했죠. 어머니가 그걸 보면서 ‘사내새끼가 이렇게 마음이 곱고 착해서 어떻게 하겠냐’ 걱정을 하셨어요. 제가 해병대에 간 것도 해병대 장교 조종사였던 형님이 저를 보고 ‘아무래도 마음이 너무 착해 인생 살기에 조금 그러니까 해병대에 가는 게 좋겠다’고 권한 영향이 있었죠.”
그의 고향인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에는 1970년대에 동네 주민들이 세운 그의 할아버지 공덕비도 있단다. 그의 조부가 땅을 내놓아 새로 저수지를 조성하게 되어 마을 농토가 천수답에서 수리답으로 바뀐 데 대한 보답이었다.
“우리 집 가훈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입니다.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는 말이죠. 할아버지가 만드셨어요.”
스스로 즐거워한다는 뜻인 그의 호 자락도 조부 공덕비가 있는 마을 이름에서 땄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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