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순의 충청女지도] 서간도 망명 가족의 눈물… 일제도 결코 끊어내지 못한 정

2025. 8. 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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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대로 숱한 독립운동가 배출
작은아버지 어윤적, 항일투쟁 헌신
애끊는 조카딸 편지… 깊은 정 나눠
어능여 한글편지
어능녀(조카)가 서간도에 망명중인 어윤적(작은아버지)에게 보낸 편지(1918년 11월 29일). '만니초졍(萬里初程)' 수록.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작년 지월(11월)에 하서 받자와 뵈옵고, 그 후 흐르는 세월이 화살같이 빨라 한 해가 지나도록 한 장의 편지도 올리지 못한 이 무심한 죄를 십분의 일이라도 용서하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나이다. 새로이 동절기를 당하여 요사이 설한(雪寒)에 몸과 마음의 건강이 안녕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작은아버님 연세 많으신 터에 백리 천리의 고향 생각하시는 형편을 생각하면, 수천 리 밖에 멀리 계셔도 뵈옵는 듯하여 잠들기 전에 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왕 세상을 잘못 만나 그러하시든지, 생애로 쫓겨 그러하시든지, 고향 생각 과하게 하지 마시고 천금 같은 귀체(貴體)를 십분 건강하게 유지하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나이다. …(중략)… 이 서방은 봄에 다녀간 후, 편지 왕래 종종하여 소식 들으니 무고한 모양이오니 다행이오이다. 그러던 중 저는 흐르는 물 같은 세월은 쏜살같이 가는데, 형제숙질을 천리만리에 무단히 이별하고 쓸데없이 조용히 생각하면 나오는 것이 눈물입니다. 이 해 가고 저 해 가니 허황하고 맹랑한 마음은 밝게 타오르는 등불 밑에서 어떠타 형언하오리오? 이러하게 애가 탄 들 백 리 천 리의 빈 마음뿐입니다. 시절이나 편안하오면 내년 봄 사이에 한 번 가서 형제숙질이 다시 만나 반가이 뵈올까 하오나 기약할 수 없나이다. …(중략)… 이만 내내 기체후 안녕하신 문안 듣잡기 바라나이다. …(하략)… "(1918년 11월 29일)

이 편지는 어능녀(생몰년 미상)가 쓴 것으로, 중국으로 망명한 작은아버지 극재 어윤적(魚允績, 1847-1933)이 보낸 편지에 대하여 1년 만에 답장한 것이다. 편지의 발신지는 어능녀가 살고 있는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구방리 방터골, 수신지는 어윤적의 망명지 중국 만주 봉천성 본계현 감창이다. 만주 봉천은 오늘날의 요녕성 일대이다.

어능녀는 이 편지를 통하여 머나먼 타국에서 모진 고생을 견뎌내며 항일(抗日)의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작은아버지를 향한 애끊는 정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년 11월(1917년 11월 10일 발신)에 작은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는데, 한 해가 지나도록 답장 편지 쓰지 못한 죄를 용서하시라. 둘째, 겨울 눈 추위 속에 몸과 마음의 건강이 안녕하신지 문안 아뢴다. 셋째, 작은아버지 연세도 많은데, 백 리 천리 밖에서 고향 생각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잠들기 전에 잊을 수가 없다. 넷째, 이왕 이런 잘못된 세상을 만났으니, 고향 생각 과하게 하지 말고 천금 같은 귀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를 바란다. 다섯째, 이 서방(남편 이우민)은 봄에 집을 다녀간 후, 편지 왕래 종종 하고 별 탈 없다하니 다행이다. 여섯째,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형제숙질이 천 리 만 리 이별하였으니 쓸데없이 눈물만 흐르고, 한 해 가고 두 해 가니 허황하고 맹랑한 마음을 어떻게 형언하기 어렵다. 일곱째, 내년 봄 사이에 중국으로 가서 반가이 보고자 하나 기약할 수 없다. 여덟째, 내내 편안한 소식 듣기 바란다는 것이다.

애국지사 이우민과 배위 어능녀의 묘가 위치한 대전현충원 현충문 전경. 변영호 씨 제공

◇일제에 항거, 서간도 집단망명과 독립운동 펼친 독립유공자 집안=어능녀의 증조 어명희(魚命羲, 1795-1843)의 후손들이 500년 세거지 서울 강동구 고덕동을 떠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다가, 청주 상당구 일대와 보은 속리산 자락으로 정착하게된 것은 근대격동기 서세동점 불우의 시대상황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어명희의 손자 심재 어윤석(魚允奭, 1846-1898)과 극재 어윤적(魚允績, 1847-1933)은 4촌 형제간이다. 어윤석과 어윤적 중심의 함종어씨들은 화서 이항로의 학문을 사사한 중암 김평묵·성재 류중교·의암 류인석 등과 사제·동문 관계이면서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재와 의암은 화서학파 의병 활동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인물들인데, 일찍이 서간도에 정착하여 항일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터다.

어윤석이 1898년 1월, 어윤적이 1910년 2월 각각 일가족을 이끌고 서간도 집단망명과 항일수의(抗日守義) 생활을 결행한 것은, 성재·의암 선생의 항일투쟁 노선과 궤를 같이하는 항거였다. 어윤석과 어윤적 가 사람들은 중국에서 죽음을 맞아 중국 땅에 묻힌 사람이 많다.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은 어윤석·어경선(어윤석의 아들)·어취선(어윤적 아들)이고, 류인석·이소응·송은헌·민정식·박응연·이우민(어능녀 남편)·이원재 등의 독립유공자들은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 또는 사돈들이다.

대전현충원 내 애국지사 이우민과 배위 어능녀의 묘. 변영호 씨 제공

◇애국지사 이우민의 삶과 어능녀=어능녀는 어윤필(1854-1892)과 함양박씨(1855-1907)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윤필은 어윤적의 동생이다. 어능녀는 친정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작은아버지 어윤적을 부모처럼 의지하고 따랐다. 벽진이씨 이우민(李愚旼, 1891 -1943)과 결혼하여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구방리에서 살았다.

이우민은 1919년 4월 충북 괴산 지역의 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고문을 당하였고, 중국으로 망명한 뒤 상해 임시정부의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해 육영학교 설립을 추진하였고, 무장투쟁을 행동강령으로 내세웠던 '다물단'에 입단하였다. 중국 지역의 호북성·호남성·광동성·광서성 등지에서 한국인들을 동지로 규합하거나, 중국인을 상대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의 지지 기반을 확충하는데 힘을 쓴 인물이다. 1930년 천진 일대에서 의열단의 의거를 지원하며 활동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43년 5월 7일 만주 동경성에서 서거하였다.

어윤적은 만주 봉천에서 구방리 방터골 질녀 어능녀에게 보낸 편지(1917년 11월)에서 "너의 낭군이 금월 초팔일 상해에서 편지를 부쳐서 자세한 소식을 들으니, 연하여 평안히 지내고 며칠 후면 천진으로 올 것이니 그리로 답장하라 말하였다. 과히 염려 마라. 소년 예기(銳氣)에 허랑한 마음을 갖고 중국 남경과 북경 만 여리를 무단 왕래하니, 초초한 사내가 아니라 그러하지만, 과히 낭패로운 일은 없으니 도리어 다행이다"라고 썼다.

어능녀는 위의 답장편지에서 "이 서방은 봄에 다녀간 후, 편지 왕래 종종하여 소식 들으니 무고한 모양이오니 다행이오이다"라고 쓰고 있다. 1917년 어능녀의 정의로운 낭군 이우민이 27살의 나이로 상해·천진·남경·북경 등 중국 전역을 종횡무진하며 국권회복에 온 힘을 바치고 있는 모습을 숙질간 왕복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어윤적의 '극재일기'에 의하면(1918년 9월 27일) "조카사위 이우민의 편지가 남경 장사(長沙)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다. 어능녀가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이우민은 1918년 봄 아내가 있는 방터골 본가를 잠시 다녀간 후, 줄곧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잠들기 전 잊을 수 없사옵니다." 애타는 그리움으로 써내려간 편지=어윤적 가의 서간도에서 발수신된 편지 모음집인 '만니초졍(萬里初程)'에는 어능녀 관련 편지가 세 통 있다. 어능녀가 작은아버지 어윤적에게 발신한 편지 2통(1918년, 1919년), 어윤적으로부터 수신한 편지 1통(1917년)이다. '극재일기'에 의하면 "구방리 방터골(芳基洞)에 사는 조카딸 이씨 아내의 편지가 왔다"는 기록이 세 차례 더 있다.(1918년, 1919년, 1921년).

어윤적은 어능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향생각 간절하고 간절하여 낮이면 산에 올라 바라보고 밤이면 들에 내려 방황한다. 해동 삼천리에 달빛이 처량하고, 요동 칠백 리에 바람소리 소슬하여 쇠로한 내 간장이 봄 눈 사라지듯 하니, 창천아 창천아! 이것이 어떤 사람인고!"라고 썼다. 나라를 잃고 떠도는 노년 인생의 깊은 내면의 심리상태를 읽을 수 있다.

어능녀는 이렇듯 풍찬노숙 처절한 삶의 여정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작은아버지에게 "수천 리 밖에 멀리 계셔도 뵈옵는 듯하여, 잠들기 전에 잊을 수 없사옵니다"라고 한량없는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위로하였다.

어능녀의 이 한 통의 편지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며 수많은 선열들의 저항과 고통 속 생애를 그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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