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부주의만 탓할수 없어"… 금융·통신사 예방책임 묻는다

문광민 기자(door@mk.co.kr),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김대기 기자(daekey1@mk.co.kr) 2025. 8. 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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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20번째 대책 이번엔…
금융사, 잘못 없어도 배상해야
이상거래 사전탐지 책임 강화
통신사, 대포폰 관리책임 강화
대리점은 '원스트라이크아웃'
외국인 1인당 1회선으로 제한
보이스피싱 번호 10분내 차단
금융권 "피싱 경각심 낮아져
도덕적 해이 부추길 우려도"

◆ 보이스피싱 20년 잔혹사 ◆

정부가 28일 발표한 20번째 보이스피싱 종합대책은 피해자 개인의 부주의보다 제도적 허점에 책임을 묻겠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보이스피싱 피해는 더 이상 개개인의 부주의 탓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금융회사에 과실이 없더라도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법제화를 추진한다. 영국, 싱가포르는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금융사의 무과실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제도를 국내에도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금융사의 책임과 부담을 대폭 강화한 배경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자율배상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금융권은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자율배상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예외 조항이 많아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제도가 도입된 작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금융사가 비대면 금융사고와 관련해 배상한 금액은 1억7366만원에 그쳤다.

현행 자율배상제도는 '이용자 본인이 직접 지급 지시한 금융거래'에 대해 금융사는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 본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계좌로 돈을 이체한 경우는 '사고'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족 사칭, 협박, 대출사기 등 제3자의 지시에 의한 금융거래도 이 같은 예외 조항에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지 못한 경우에도 금융사는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번 대책에 따라 금융사들은 FDS를 고도화하고, 보이스피싱 전담 인력을 확충하는 등 대응 방안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사의 과도한 배상 책임, 소비자 도덕적 해이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가 범죄 예방을 위해 주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를 평가하기 애매해 분쟁 횟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정부는 금융권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최종안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배상 방식이나 조건 등에 대해선 금융권·유관기관·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해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 역시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의 책임이 대폭 강화된다. 대리점에서 타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불법 행위가 반복되면 본사가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휴대전화 불법 개통이 다수 발생할 경우 등록 취소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불법 개통을 묵인한 대리점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즉시 계약 해지된다. 또 외국인 여권으로 개통할 수 있는 휴대전화는 기존 2회선에서 1회선으로 줄고, 개통 시 안면인식 이중 확인이 의무화된다.

이 같은 조치는 그동안 대포폰 관리의 사각지대로 지목된 알뜰폰 통신사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명의를 이용한 대포폰에 대한 적발 건수는 2022년 7295건에서 지난해 7만1416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에는 특정 알뜰폰 통신사 한 곳에서만 대포폰 4만4000여 회선이 개통된 사실이 경찰에 적발된 바 있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기 전 선제적 대응 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오는 9월부터 경찰청을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이 운영된다. 2023년 10월부터 경찰청에서 통합신고대응센터를 운영해왔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상담 위주 응대에 머물면서 실질적인 피해 예방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확대 개편되는 '통합대응단'은 상주 인력이 기존 43명에서 137명으로 3배 규모로 늘어나고, 운영 시간은 평일 주간에서 연중무휴 24시간 체계로 개편된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를 긴급 차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기존 2~3일에서 10분 이내로 확 줄어드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동안 알뜰폰 통신사 측의 인력 부족과 시스템 미비 문제 등으로 범죄에 이용된 알뜰폰 전화번호에 대해선 긴급 차단이 불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알뜰폰 번호도 예외 없이 차단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전국 단위 전담 수사 체계도 구축한다. 전국 수사부서에 400여 명의 전담 수사 인력을 증원하고, 서울·부산·광주·경기 남부·충남 등 시도경찰청 5곳에는 221명의 피싱범죄 전담수사대·팀을 신설한다. 법무부는 형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을 상향하는 등 관련 법률을 정비하기로 했다.

[문광민 기자 / 안정훈 기자 /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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