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에서 새 앨범 영감” 가야금으로 재즈 연주하는 김도연

“장르는 질문일 뿐이에요. 저는 이 세상과 소통하려고 연주합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씨제이(CJ)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가야금 연주자 김도연(34)은 “어떤 음악가로 정의되길 원하나”란 질문에 답하기 전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 말을 꺼냈다. 단정하면서도 울림이 남는 한마디였다. 그는 ‘월드뮤직’이라는 낡은 구획을 거부한다. “이름표는 결국 서열을 만들잖아요. 저는 그걸 지우고 싶어요. 계획된 즉흥과 작곡, 지휘가 섞인 ‘의미 있는 자유분방’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그는 29일부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2025 에이시시(ACC) 엑스뮤직페스티벌’ 개막식 음악감독을 맡아 잠시 귀국했다. 개막식 무대에 서는 김도연 퀸텟은 “자유분방하지만 의미 있는 자유분방”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그는 “서로 다른 악기들이 부딪히고 스치는 사이, 관객은 낯선데 익숙한 ‘집’ 같은 숲에 들어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야금 연주자 출신이지만 재즈라는 서구의 문법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는 김도연의 음악은 언제나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악기는 목표가 아니라 길을 여는 도구다. 가야금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선명히 구분한 뒤, 부족한 자리는 동료의 악기로 메운다. 이러한 음악적 탐구 정신은 2021년 그래미가 ‘고대 아시아 악기의 미래를 개척하는 7인의 음악가’로 그를 선정하면서 미국 현지에서도 인정받았다. 앞서 2018년 첫 정규 앨범 ‘가피’로 한국대중음악상 크로스오버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김도연의 궤적은 단단하면서도 흥미롭다. 서울대 국악과를 거쳐 국악인 최초로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현대즉흥음악’ 석사를 받았다. 이후 버클리 글로벌 재즈 인스티튜트에서도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25년 ‘넥스트 재즈 레거시’ 펠로에 선정됐고, 뉴욕과 보스턴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학 중 씨제이문화재단의 장학 지원 대상자에 선정되면서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밤마다 아르바이트 대신 리허설을, 막막한 고민 대신 작곡을 붙잡았다. 그렇게 얻은 작은 균형이 결국 앨범 ‘가피’라는 첫 결실로 이어졌다. “누군가 제 가능성을 믿어주었다는 사실이 제겐 가장 큰 힘이었어요.”

그의 음악은 장르의 규칙보다 악기의 숨결에 기대어 선다. “가야금은 초고속 비밥(재즈의 한 장르)을 따라가긴 어렵지만, 그 대신 섬세한 미세 음정과 긴 호흡으로 서사를 이끈”다. 음향 조정의 어려움은 늘 따라다니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을 곡의 일부로 삼는다. “결국은 이야기예요. 못하는 걸 감추기보다, 할 수 있는 걸 최대로 펼쳐내는 거죠.”
내년 봄 발표를 목표로 작업 중인 새 앨범 ‘웰 스프링’은 죽음과 수용, 애도의 다섯 장면을 이야기처럼 따라간다. 닫힌 문 앞에서의 혼란, 흩날리는 재와 불꽃의 형상, 마지막엔 남겨진 자의 심장을 두드리는 노래들이다. 보컬과 가사를 품은 채, 여전히 살아있는 기억을 기록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새 작품의 기원에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있다. 광주의 시간을 증언하는 문장들, 잊힌 죽음을 불러내는 언어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읽으면서 가슴이 조여왔어요.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남겨진 사람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런 질문이 따라왔죠.” 그는 “그 질문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음악 밖의 세계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다큐멘터리나 에프원(F1) 레이스를 보며 “즉흥의 구조를 읽어내”거나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맛의 조화에서도 화음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거주 중인 뉴욕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갖 문화와 감각이 뒤섞이는 ‘멜팅팟’ 같은 도시라서 늘 새로운 영감을 건네주죠.”
“저는 예술인이에요. 의미를 무대에 올리고, 그 의미가 관객의 삶으로 걸어가도록 만드는 사람. 더 멀리, 더 깊이, 그 길을 계속 열고 싶습니다.” 정의와 규정을 원하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리고 그 말끝은, 앞으로의 무대를 향한 당찬 선언처럼 들렸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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