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숨결 따라 흐르는 소리, 삭임과 나툼의 신명

'나툼새', 생소한 말 같지만, 김지하가 '시김새'와 더불어 한국 미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었던 용어다. 이를 한국 미학의 가장 정점이라고 하는 신명(神明)의 구조를 풀이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빌드업 겸 정리해둔다.
'나툼새'는 김지하, '아우라지 미학의 길'(다락방, 2014)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논의했다. 시김새와 나툼새는 마치 음과 양의 원리처럼 짝을 이루는 한국 미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라임(押韻)이 맞는 용어이자 개념이다. 성악뿐만 아니라 한국 미학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다.
김지하가 워낙 철학적이고 시적인 분이라 선문답처럼 내뱉는 용어들의 내력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중 몇 개만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치 내 유년의 바닷가에서 큰 바윗돌을 들어 올리지도 않았는데, 굵고 두꺼운 전복을 발견하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나툼새'라는 명사는 '나투다'라는 동사가 있을 뿐, 사전에 없는 말이다. 마치 시김새를 '삭히다'라는 동사에서 왔다고 정의한 것처럼, 새로운 용어와 그럴만한 풀이를 창안한 셈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나툼'을 깨달음이나 믿음을 주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타낸다는 뜻으로 풀었다. 불교의 부처 얘기다. "단순히 꿈속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의식체를 불이나 물로 둔갑시키고 수많은 분신을 나투고, 공간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는 용례가 제시되어 있다. 어려운 풀이이긴 하지만 무엇인가 나타난다는 뜻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서 '-새'는 보통 모양, 상태, 양태 등을 뜻하는 접미사다. 행동이나 소리, 모양을 꾸며주는 말 뒤에 붙여 사용한다. 국악용어로 가장 활발하게 쓰인다.
시김새는 소리를 꾸며내는 방법으로, 꺾기, 흔들기, 밀기 등 음을 장식하는 기법의 모양새를 말한다. 추임새는 판소리나 민요에서 소리꾼을 북돋우는 고수나 청중의 감탄사나 장단 어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얼쑤, 좋다 등의 용례가 있다.
지금 말하는 나툼새는 김지하가 직조한 조어로 앞 명사들과 라임을 맞춰 해석하면 소리가 밖으로 드러나고 발현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 일상생활의 용례를 몇 가지만 들면, 옷매무새, 자세, 행새, 품새, 새새(형세) 등이 있다. 기회가 되면 차차 풀기로 하고 우선 나툼새에 주목한다.
나툼, 김지하의 조어(造語)와 불교에서의 함의
김지하의 얘기를 들어본다. "나툼 또는 나툼새에 견결되는 여량(餘糧)의 미학적 규범의 길이다(여량은 따로 다룬다). '새'란 본디 "…하는 가락", "…하는 뽄새", 또는 "…하는 기세"같은 말인데 이 경우의 나툼새에서는 도리어 나툼이라는 사방팔방으로의 대확산 경향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들어 올리는 기운참, 세력, 힘을 '새'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툼새는 나툼과는 약간의 차이를 두고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툼의 본색은 나툼새에 있다고 말한다. 축약하여 말하면 나툼은 어떤 것이 드러나는 현상이나 작용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일으키게 하는 기(氣)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본래 불교에서 온 동사였으나 한국 미학 전반에 차용해 명사로 개념 규정을 했다고 생각된다. 불교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박기열은 <'공의 나툼'의 체재와 원리에 관한 고찰>(한마음연구 제8집, 2021)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툼이라는 말은 단지 아무 것이나가 '드러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진리가 현현한다'는 의미다. 진리가 현현한다는 것은 진리가 중생이 알아볼 수 있도록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는 마음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즉 진리를 나투게 하는 주체는 바로 마음이고, 그것이 나투는 곳도 마음이다. 나아가 나투는 대상도 마음이다.
그렇다면 진리의 나툼을 일어나게 하는 원리로서의 마음 작용은 무엇일까? 반야경에서는 그것을 반야바라밀다의 삼매라고 말한다." '한마음요전(2019), 안양: (재)한마음선원'에 나오는 나툼의 원리를 분석한 논문이다. 일반적으로 다루기는 어렵지만, 진리의 마음이 드러난다는 뜻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불교적 공의 나툼 설명을 듣고 보니 오히려 김지하의 나툼새 설명이 친숙해 보인다. 아무래도 음양처럼 라임을 이루는 '시김새'라는 명사가 판소리와 민요 등 국악 전반에 널리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지하는 이를 간단히 줄여서 '확산'이라고 한다. 단순한 확산이 아니다. 종적 확산과 질적 확산을 거론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종국적으로는 아우라지가 시김새이고 무궁 확산이 나툼새라고 정리하는데 워낙 선문답 형식이어서 온전히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어쨌든 시김새와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나툼새를 제안했다는 점은 흰그늘이라는 개념 못지않게 번뜩이는 혜안이었다고 판단된다.
들숨과 날숨, 시김새와 나툼새의 정동(情動)
아주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들숨과 날숨의 관계와도 같다. 들숨은 삭이고 날숨은 나툰다. 들숨은 바깥 공기를 안으로 들이마시는 과정이다.
시김새는 음을 꺾고 눌러서 안으로 삭이는 기법이다. 감정을 내뱉기보다는 내면화한다고나 할까. 한자말로 하면 탄(呑, 삼키다)이다. 들이마셔 삼키고 억누른다는 뉘앙스다. '한을 삭인다'는 맥락과 부합한다. 따라서 시김새는 감정을 삼키는 들숨의 미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날숨은 들이마셨던 공기를 내쉬며 바깥으로 토해내는 과정이다. 나툼새는 눌렀던 소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발산이다. 한자말로 하면 탄(歎, 노래하다, 탄식하다) 혹은 탄(嘆, 탄식하다)이다. 한숨 쉬며 토로하는 것이니 감정을 토해내는 맥락과 합치된다.
즉, 나툼새는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토로하는 날숨의 미학이다. 이를 정리하면, 시김새는 감정을 안으로 삭여내는 과정의 들숨과 같고 나툼새는 삼킨 슬픔을 토해내며 발산하는 날숨과 같다.
이 라임은 삶과 소리의 호흡적 순환을 드러내는 한국적 미학 특히 판소리 등의 성악이나 국악 전반의 핵심 은유가 될 수 있다. 몸짓과 춤을 대입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를 시김새와 나툼새의 정동이라 할 만하다.
정동(情動, affect)이란 무엇인가? 희로애락과 같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을 말한다. 진행 중인사고 과정이 멎게 되거나 신체 변화가 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라고 풀이한다. 즉 신체의 일정한 상태를 사유의 일정한 양태와 함께 표현하며 삶의 활력의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남도인문학팁-김창조 산조페스티벌, 시김새 토크콘서트
오는 9월 14일~15일 영암군 가야금산조 기념관을 메인 삼아, '김창조 산조페스티벌-연결의 힘'이 열린다. 나는 국가지정 판소리 보유자 윤진철 국창을 모시고 토크콘서트를 진행한다. 토크 주제는 '소리의 깊은 맛-시김새'이다.
윤진철의 판소리와 속살 깊은 이야기, 예컨대 판소리의 시김새와 맛깔나는 전통주 등 발효 이야기를 듣고 맛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학인 우실하 교수, 원일 작곡가 외 이름난 연주자들이 다양한 강연과 토론, 공연을 펼친다.
해외초청으로 인도 카르나틱 뮤직도 감상할 수 있고 젊은 연주자들의 열린 포럼과 난장도 함께 할 수 있다. 한국 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명의 원리이자 서사의 한 자락을 잡을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