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은 '사회 정의' 문제"… 영국 자살대책 설계자가 말하는 해법
[편집자주] 매년 우리나라 국민 1만1000여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11년 자살예방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의 대응에 나섰지만, 'OECD 자살률 1위' 오명은 계속된다. 자살을 막는 안전망은 체계적인 시스템 부재, 예산·인력 부족, 각종 칸막이 탓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살예방 현장에선 "자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 상태"라는 토로가 쏟아진다. 머니투데이는 현황-원인-대안 3편에 걸쳐 자살 문제를 파헤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자살예방 개선책을 제시한다.

"자살예방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문제입니다."
영국 자살예방정책을 총괄한 루이스 애플비 맨체스터대 정신의학과 교수(사진)는 머니투데이와 서면 인터뷰에서 "영국이 낮은 자살률을 유지하는 이유는 자살을 사회 정의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국 자살률(10만명 자살자)은 10명 아래로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30년 가까이 자살률이 치솟은 우리나라와 달리 10명 미만 자살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정책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사회경제적 충격이 자살 문제로 번지지 않았다.
애플비 교수는 2000~2010년 영국 정부에서 국가 정신건강 총괄책임자를 맡았고, 2002년 국가자살예방전략(NSPS)을 설계한 주인공이다. 현재 정부 산하 자살예방전략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애플비 교수는 "가난, 정신질환, 인종차별, 유년기 학대 등으로 상처를 입은 사회적 소외계층이 대표적인 자살 고위험군"이라며 "이들의 자살을 막으려면 자살을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로 보고, 사회가 직접 희망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살예방 전략은 고위험군에 집중하면서도 '누구나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전 국민을 포괄해야 한다"며 "자살을 막는 힘은 결국 사회적 연대에서 나온다. 지역사회와 이웃, 친구와 가족까지 모두가 역할을 나눠 힘써야 한다"고 했다.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자살 문제는 우리나라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2023년 중 2014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서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10대 자살률은 2020년 6.5명에서 2021년 7.1명, 2022년 7.2명, 2023년 7.9명으로 지속해서 상승세다.
애플비 교수는 "청소년 자살과 관련 있는 요인은 따돌림,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건강 문제, 외로움, 자폐 등이다. 부모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린 청소년은 자라면서 자살 위험에 크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은 조기 개입팀을 운영해 초기 정신질환을 겪는 아동·청소년에게 신속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한국 학생들은 어려움을 숨기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중한 존재다' 등 확신을 심어주고 빠르고 실효성 있는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자살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해법도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살 예방과 직접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정책까지 효과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외로움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위험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복지 정책만 가지고는 부족하며, 대중교통·인터넷 등 생활 인프라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애플비 교수는 영국에서 자살률 하락을 이끌어낸 '안전을 높이는 10가지 실천 방안'도 소개했다. △알코올·약물 오남용 방지 △병동 안전 강화 △퇴원 후 추적 관리 시스템 △타지역 환자 입원 금지 △24시간 위기 대응팀 운영 △사후 관리에 가족 참여 △우울증 진료 지침 안내 △개인별 맞춤 관리 △지역사회 연계팀 운영 △센터·병원 직원의 낮은 이직률 등이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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