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김 없는' 자살예방정책… '통합 데이터 플랫폼'에서 시작된다

박상혁 기자 2025. 8. 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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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살 방치 사회<3편:생명 살리는 정책 대전환>③통합 자살 데이터 플랫폼 구축
[편집자주] 매년 우리나라 국민 1만1000여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11년 자살예방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의 대응에 나섰지만, 'OECD 자살률 1위' 오명은 계속된다. 자살을 막는 안전망은 체계적인 시스템 부재, 예산·인력 부족, 각종 칸막이 탓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살예방 현장에선 "자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 상태"라는 토로가 쏟아진다. 머니투데이는 현황-원인-대안 3편에 걸쳐 자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자살예방 개선책을 제시한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인근 모습./사진=민수정 기자.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강자이지만 자살 정보 분야에선 약자다. 수십년째 자살 문제로 허덕이는데 자살 관련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기반마저 갖춰지지 않았다. 자살예방에 수많은 기관이 참여하지만 데이터는 제각각 관리하고, 정보 공유는 제때 이뤄지지 못한다. 자살 고위험군 맞춤형 지원 서비스와 사례 관리가 실시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통합 자살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배경이다.
미국·대만 20년 전부터 '통합 플랫폼' 운영
해외 통합형 데이터 플랫폼.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해외에선 범정부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자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 정신보건국은 2003년 '사이킥스(PSYCKES)' 시스템을 도입했다. 의료진은 메디케이드(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주정부 건강보험) 가입자 중 800만명 이상 자살 고위험군의 5년치 의료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약 처방 입·퇴원 내역과 주립정신병원 이용기록 등 다양한 정보도 자동 연계된다. 응급 상황엔 환자 동의 없이 72시간 동안 열람 가능하다.

대만도 2006년 통합형 데이터 플랫폼 NSSS(국립 자살 시도자 관리체계)를 도입했다. 경찰과 병원, 기초자살예방센터와 지방자치단체가 통합 플랫폼에 자살시도자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다. NSSS를 기반으로 99% 이상 자살시도자가 추적 관리된다. 초기 대응 기관인 경찰은 자살시도 현장에서 확보한 조사 기록을 모두 NSSS에 기록한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대만 경찰은 자살시도자를 의무적으로 의료기관에 이송하고, 초기 조사 내용을 빠짐없이 NSSS 시스템에 입력한다"며 "병원은 치료 과정을 기록하고,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데이터를 토대로 사례관리자를 가정에 보내 관리하고 누락 데이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살 관련 데이터가 파편화된 채 관리된다. 현재 병원 92곳이 응급실에서 자살시도자에 대한 선제적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 관리 사업'을 펼치는데, 기초센터와 데이터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다. 자살시도자가 응급실 퇴원 후 거주지 소재 기초센터로 연계돼도 환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지 못한다. 병원과 기초센터가 다른 데이터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자살시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확보한 조사 기록도 기초센터에 공유되지 않는다. 자살예방법에 따라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만 전달한다. 자살자 통계도 통계청과 경찰청이 각자 기준대로 집계해 수치상 차이가 난다.

실시간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고, 통계도 제각각이니 자살 문제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동안 자살예방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주요인으로 분절된 데이터 문제가 꼽히는 이유다. 서울 한 기초센터 직원은 "자살예방에 필수적인 데이터가 공유되지 않고 중간에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민감정보 공유 체계, 데이터 유출 방지 시스템 필요
지난 21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8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자살 관련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자살예방 서비스 개발과 심층적인 자살 연구를 위해서라도 통합 데이터 플랫폼은 필수적이다.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축 시 데이터 유출 방지와 비식별화 작업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사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공유되는 만큼, 정부가 데이터 유출 문제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머니투데이가 오픈서베이의 리서치·경험분석 플랫폼 데이터스페이스를 통해 지난 12일 진행한 '자살 문제 인식 여론조사'(20세 이상 60대 미만 1013명, 표본오차: 80% 신뢰수준, ±2%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 1013명 중 86.5%는 '정부·지자체가 자살예방 지원을 받는 국민의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데이터 익명화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매우 동의는 51.2%, 동의는 35.3%였다.

이해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은 "민감한 기록이 공개된다는 점에 거부감이 커서 AI 기반 자살 예방 서비스 등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비식별화 작업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정부가 '자살 예방 정책 수립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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