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흐름에 뒤처진 한국 여자축구, 5년 만에 급성장한 여자당구를 배워라
김창금의 스포츠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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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여자축구 최고의 몸값 선수는 캐나다 출신 공격수 올리비아 스미스(21)다. 그는 7월 100만파운드(약 18억6천만원)의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리버풀에서 아스널로 옮겼다. 남자축구 월드 스타인 FC바르셀로나의 라민 야말(1억6900만파운드)에 비하면 17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잉글랜드에서 뛰는 많은 선수가 주급 50~100파운드(9만~18만원)를 받거나, 이적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던 점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2025년 7월 스위스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축구선수권대회(2025 여자 유로)도 여러 이정표를 세웠다. 외신은 “전체 31개 경기 가운데 29개가 매진됐다”고 전했고, 총관중 수는 65만7291명(평균 2만여 명)으로 직전 잉글랜드 대회(57만4875명·2022년)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대회 2연패를 일군 잉글랜드가 스페인과 벌인 결승전에는 3만4203명이 모였다.
여자월드컵 약진
유로보다 더 큰 규모의 여자월드컵에서도 급격한 팽창이 감지된다.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은 2023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 흑자(5억7천만달러) 전환을 이뤘다고 밝혔다. 관중 수도 총 197만 명(경기당 평균 3만911명)으로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135만 명)보다 크게 늘었다.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5월 “여자축구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 여자월드컵에서 1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해 재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2031년 미국 여자월드컵부터 참가국은 48개로 늘어난다.
세계적 추이와 달리 한국 여자축구는 고요하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 여자축구 랭킹 21위로 일본(8위)·북한(10위)·중국(16위)보다 낮지만, 전체 196개 나라로 범위를 넓히면 상위권에 있다. 7월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는 20년 만에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세 팀 모두 1승2무로 동률이었고, 독특한 순위 산정 방식에 우승하는 행운을 잡았지만 팬들을 기쁘게 한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안컵 우승 5일 뒤 서울 월드컵보조구장에서 열린 2025 WK리그 서울시청-인천현대제철의 경기는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그라운드 한쪽에 설치된 스탠드에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팬들이 들어찼다. 동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정민영·김민지·우서빈(이상 서울시청)과 김민정·고유진(이상 현대제철)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불러 모은 팬 열기의 단면이다.
대한축구협회 통계 사이트를 보면, 이날 경기의 관중은 563명이다. 하지만 8개 WK리그 구단 가운데 수원FC를 제외하고는 티켓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수라고 볼 수 없다. WK리그는 국내 최고의 여자축구 무대이지만, 선수들의 연봉 등 계약 내용이 공개된 적이 없다. 관중 수부터 구단의 수입과 지출 정보 등 기본 데이터가 부실하니,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중장기 발전 전략을 짜기는 쉽지 않다.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초를 다지는 데는 대한축구협회나 여자축구연맹, 정부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소홀하다. 여자축구 동호회 선수들은 2016~2024년 80명에서 6805명까지 팽창했지만, 초·중·고·대학·실업팀의 엘리트 여자축구팀이나 선수는 2024년 59개팀 1328명으로 10여 년 전보다 줄었다. 피파가 2027년까지 세계 여자축구 선수를 6천만 명으로 잡고, 팬 수를 5억 명에서 2030년 8억 명으로 늘리고, 피파 월드컵 상금을 대폭 올리는 등 여자축구의 붐업을 선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변화의 움직임은 있다. 2025년 여자축구연맹의 새 집행부는 직원 수를 대폭 늘리면서 일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각 구단 프런트가 참가한 워크숍을 열었다. 경기 결과나 일정표도 제공하지 못했던 누리집도 개편했다.
고교 졸업자의 WK리그 직행과 선수 연봉 상한선 5천만원 폐지 등 제도 개선도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WK리그에서는 대학팀들의 존립을 명분으로, 사실상 고교생의 드래프트 참여를 막아왔지만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동아시안컵에 출전한 여자축구대표팀 선수 가운데 김신지(AS로마), 전유경(몰데FK)이 이미 대학 재학 중에 외국으로 떠났고, 정다빈(고려대)도 이번 대회 뒤 노르웨이로 떠났다.
한국 여자축구는 구조적으로 워낙 취약해 활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김상훈 한국스포츠과학원 산업연구실장의 지적은 날카롭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선수들이 ‘나가는 시장’이지, 미국이나 유럽처럼 ‘모이는 시장’은 아니다. 선수 자산이 유출되기 때문에 연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여자축구는 이런 구조적 한계뿐 아니라 국내의 다른 스포츠 종목과의 경쟁에서도 열세다. 스타가 나온다면 달라지는데, 스타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지가 자라야 맺히는 열매와 같다. 그런 과정이 있었는가를 물어봐야 한다.”
여자축구연맹은 재미→관중 증가→스폰서 확장→수입 증대→연봉 상승→선수층 확대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상한다. 하지만 풀뿌리가 허약하고, 선수 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근본적인 한계다. 일본은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2021년 12개팀의 WE리그(Woman Empowerment)와 2~3부 격인 나테시코리그를 포함해 1~3부 34개팀 체제로 기틀을 잡았다. 국가 통제력이 강한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최근 여자축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길에 놓여 있다.
여자당구 성공 배경에서 배워라
이런 측면에서 여자축구 예능 프로그램이나 5년 만에 인기 종목으로 떠오른 여자당구의 성공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축구에서 남자 선수들과 동등한 경기력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자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열정, 땀, 고통이 엮어내는 감동 스토리는 남자와 다를 바 없다. 여자당구의 경우 초기 출범 때와 달리 선수들의 경기력도 상승했다. 기존 남자 중심 종목의 빛에 가렸더라도, 어떤 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주류로 편입할 가능성은 있다.
여자축구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있다. 혁명적 전환이 없다면 정체된 환경에서 탈피할 수 없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자세의 마케팅 관점이 출발점이다. 한국여자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가 앞에서 끌어야 한다. 한국판 올리비아 스미스가 쉽게 나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꿈은 꿔야 한다.
김창금 한겨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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