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검사도 법복 벗어라”…변호사의 역제안

권혁범 기자 2025. 8. 28. 08:2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임 검사들이 지난 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임관식에 참석해 가족의 도움을 받아 법복을 입고 있다. 연합뉴스


꽤 오래전입니다만, 매우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부산의 한 원로를 다급하게 인터뷰할 사정이 생긴 겁니다. 아버지뻘에다, 지역에서 ‘어른’으로 존중받는 그를 만나는데 그날따라 복장이 ‘불량’했습니다.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었던 것 같습니다.

골방에서 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양해부터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입은 옷이 예의에 맞지 않습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정치와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터라 ‘기자 다루는 일’에도 능숙했습니다.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기자는 원래 ‘노가다’ 일꾼이라,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게 더 어색한 거요. 그래야 현장 뛰어다니며, 정확하고 생생한 뉴스를 전할 수 있지요.”

그의 취지는 ‘기자는 기자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옷이 ‘양복에 넥타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때 이후 양복 입는 날이 줄었습니다. 통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입고 다닙니다.

옷은 ‘입은 자’의 신분이나 지위, 경제적 능력 또는 마음가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법복도 다르지 않습니다. 법정에서 판검사가 입는 법복은 권위를 상징하며, 무거운 책임을 부여합니다. 다만, 형사재판에서 검사와 대등한 자격으로 변론하는 변호인은 법복 대신 양복이나 정장을 입습니다. 통상 판검사로 일하다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법복을 벗었다’고 표현하죠. 변호사가 평소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 변론한다면, 이 표현은 잘못됐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부산 법조계에서 때아닌 ‘법복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발단은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 부산지법과 부산지방변호사회가 최근 국민참여재판 법정에서 변호인이 법복을 입는 것을 의논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국민참여재판은 무작위로 선정된 만 20세 이상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재판부에 유·무죄와 양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입니다.

2008년 부산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모습. 판사와 검사는 법복을, 변론 중인 변호인은 양복을 입고 있다. 국제신문 DB


이번 논란은 국민참여재판 때 검사는 법복, 변호인은 양복을 입으면 배심원이 느끼는 신뢰감에 차이가 난다는 지적에서 시작됐습니다. 변호사회는 애초 “변호사도 법복을 입자”는 쪽으로 논의를 진행하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검사가 법복을 벗으면 된다”는 역제안을 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사례를 보면 판검사와 변호사 모두 법정에서 법복을 입는 나라도, 양복에 넥타이 차림을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는 변호사도 법복을 입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1966년 대법원 규칙에서 ‘변호사 법복’에 관한 조항이 삭제된 이후 사라졌습니다.

변호사가 법복을 입느냐, 마느냐 하는 논의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2011년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의 품위를 높이고 의뢰인에게 신뢰를 준다는 취지로 법복 착용을 추진했습니다. 시제품을 제작하고, 창립 기념식 때 법복을 입고 단체 사진도 찍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법복 착용은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됩니다. 오히려 때마다 “폭염에 정장과 넥타이가 웬 말이냐”며 법정에서 간편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복장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변호사가 법복을 입거나, 검사가 법복을 벗은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법복 논란’은 품위와 신뢰를 높이여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법복을 입어야만 권위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야 훌륭한 기자가 되는 게 아니듯, 법복을 입어야 유능한 변호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당장 “구시대적 발상이다” “복장에서 권위가 나오는 게 아니다” “번거롭다” 등 반응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테죠.

이 같은 논란에 앞서 법원과 검찰은 국민 앞에 무너진 믿음을 회복할 방안부터 찾아야겠습니다. 변호사업계 역시 잊을 만하면 터지는 법조 비리를 바로잡을 방법을 연구해야겠습니다. 법복은 판검사나 변호사의 권위가 아니라 ‘법의 권위’를 나타내야 합니다. 또 법복은 개인의 위상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권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법에 근거해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