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을 탐한 실리콘 건축 [크리틱]

한겨레 2025. 8. 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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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함께 일하는 동료 프랑스 건축가들과 한국의 특별한 공사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 건축 현장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도구는 '실리콘 총'이다.

'빨리빨리'라는 현대 한국의 거대 종교가 실리콘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한국 건축은 그 총구에 누더기가 된다.

실리콘은 한국 건축의 신경안정제이자최음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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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몇해 전, 함께 일하는 동료 프랑스 건축가들과 한국의 특별한 공사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거품이 한껏 부풀어 있던 고급 주택 시장에서는, 유명 외국 건축가의 이름을 앞세워 최고가 분양가를 내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레지던스가 될 것이라는 그 현장을 둘러본 뒤, 그들은 내게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런 고급 주택에, 창문이며 문, 타일까지 전부 실리콘으로 마감했다고?”

한국 건축 현장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도구는 ‘실리콘 총’이다. 이 작은 도구 하나면 모든 공정의 구멍과 삐뚤어짐을 해결할 수 있다. 창호가 삐뚤어도, 벽과 가구 사이에 주먹만 한 틈이 생겨도 문제없다. 건축인들 사이에선 농담처럼, 그러나 다들 고개를 끄떡이며 말한다.

“괜찮아, 실리콘 코킹(밀봉)하면 다 가려져.”

하지만 모두가 그다음 이야기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실리콘은 갈라지고 곰팡이가 피어나며 흉한 얼룩을 남긴다. 그래도 상관없다. 보수공사를 하면 된다. 방법은 늘 같다. 갈라진 기존 실리콘 위에 새 실리콘을 덧바른다. 임시방편이 반복될 뿐, 건물은 단단해지지 않는다.

왜 이런 풍경이 당연시되는 걸까? 답은 단순하다. 건축의 목적이 ‘오래 쓰는 것’이 아니라 ‘빨리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주처는 하루라도 빨리 준공해 임대 수익을 올려야 한다. 시공사는 저가 낙찰로 이미 숨이 차다. 설계사는 예산에 묶여 시간 잡아먹는 디테일을 포기한다. 모두가 속도를 외치며 달려가다 보니, 정밀한 시공 따위는 사치로 치부된다. 결국 실리콘은 이 모든 조급함과 타협의 결과물이다. ‘빨리빨리’라는 현대 한국의 거대 종교가 실리콘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한국 건축은 그 총구에 누더기가 된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다 보면 고국 건축가들에게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왜 유럽은 그렇게 공사를 오래 하나?”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될 수 있으면 ‘건식 마감’을 쓰기 때문이다. 부재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맞추어 애초에 실리콘으로 메울 틈이 생기지 않도록 설계하고 시공한다. 그래서 공기는 더 걸리고 비용도 더 들지만, 그들이 바보라서 혹은 부자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지은 건물이 수십년이 지나도 구조와 마감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곰팡이가 낄 자리가 없고, 보수공사도 최소화된다.

‘웃픈’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한국은 초고층 빌딩을 세우며 건설 수출까지 해내는 나라다. 영화, 음악, 음식 등 케이(K)-컬처가 세계를 휩쓰는 요즘, 건축 분야도 프리츠커상 하나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조바심낸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아파트, 사무실, 상가는 여전히 실리콘 줄기로 봉합된 ‘조립식 허세 건축’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관행이 점점 문화적 습관으로 굳어진다는 사실이다. 건축주도, 시공사도, 감리도, 입주자도 이제는 실리콘 자국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없으면 불안해하기까지 한다. 실리콘은 한국 건축의 신경안정제이자최음제인 셈이다.

건축이 다른 디자인과 구별되는 점은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결코 거짓을 잊지 않는다. 갈라지고 벌어진 틈은 시간을 두고 복수한다. 실리콘에 의존하는 한, 한국 건축은 결코 ‘오래’와 ‘튼튼’을 말할 수 없다. 시간과 비용을 아낀 대가, 장인 정신을 포기한 결과, 정밀함을 거부한 증거인 실리콘은 기술이 아니라 변명이다. 3년마다 실리콘을 덧발라야 하는 프리츠커급 건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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