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가족사진 /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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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김상규의 시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의 내면을, 그의 어두움을, 그의 질곡을 어떻게 받아안아야 마땅할까? 조금 전 구약 시편 100편을 필사하면서 받은 느낌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에 더욱 그렇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라.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친다.
이렇듯 시편 100편은 감사와 찬송과 환호성과 기쁨이 넘치지만, 이 땅 위의 나날은 그렇지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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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 김상규
남몰래 여동생이 유언장을 보여준다/ 나는 훌쩍이다 벽장에서 잠이 들고/ 도망간 거위 떼들이 돌아오는 하짓날// 일기장에 적혀있는 이름을 다 외우면/ 또 다시 태어난단 마법을 믿는 나이/ 그런데 아버지는 왜, 토끼장에서 주무세요?// 살릴 것이 없어서 죽일 것도 없던 그해/ 근사미를 삼키고도 살아있던 할머니는/ 변소에 보살이 있다며 똥통을 휘졌고// 찍습니다, 속(俗)에서 더 가파른 속(俗)으로/ 모든 종의 족보가 시취로 꽉 찼듯이/ 관을 진 소라게들이 죽음 이후를 찾듯이
『오늘의시조』(2020, 제14호)
일련의 김상규의 시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의 내면을, 그의 어두움을, 그의 질곡을 어떻게 받아안아야 마땅할까? 조금 전 구약 시편 100편을 필사하면서 받은 느낌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에 더욱 그렇다.
온 땅이여,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라.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친다.
이렇듯 시편 100편은 감사와 찬송과 환호성과 기쁨이 넘치지만, 이 땅 위의 나날은 그렇지가 못하다. 무지무지하게 힘들고 팍팍하다. 소시민으로서는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벅차다. 상층부의 종족들은 이런 구체적인 삶을 모른다. 알아도 애써 외면한다.
「가족사진」은 있는 그대로 읽을 일이다. 그리고 각자 느낄 일이다.
이어서 「복수의 왕」을 보자.
오늘은 찔려 죽였어, 잘 벼린 사카이 칼로/ 악몽에서 영원히 깨지 않길 바라면서/ 담 아래 훌쩍이며 선 어제 나는 굿바이// 미안해, 잘못했어, 이런 말은 그만 할래/ 스미레 강가에는 벚꽃이 한창이고/ 추악한 존잴 벗기면 더 추악해 다행이야// 변기에서 건져낸 비굴한 내 얼굴도/ 살기 위해 더 맞았던 교실 속 난투극도/ 언젠가 사라지겠지, 향기 없는 오욕처럼//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같은 무게라면/ 복수가 어울리는 어른도 근사할 거야/ 차가운 버찌로 물든 멍자국을 만지면서.
이렇듯 김상규 시인의 시 세계는 범접못할 일면이 있다. 그와 비슷한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를. 그의 시 세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는 현대시조문학사에 발을 성큼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그 페이지를 어떻게 써나가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이제 온전히 그의 어깨에 올려진 몫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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