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준비하는 죽음을 듣다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 기자 2025. 8. 2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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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김은형 | 문화데스크

“동생이 주민센터에 사망신고를 하러 갔는데 담당 직원이 깜짝 놀라더래. 집에서 돌아가신 경우는 자기가 담당하면서 처음 본다고.”

지난달 모친상을 치른 친척 언니가 말했다. 그 직원이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사무소 담당 직원이 놀랄 정도로 집에서의 임종이 희귀해진 건 오래된 일이다.

그렇게 희귀한 일을 최근 한두달 새 지인과 집안 어르신의 부음 소식에서 세번이나 들었다. 최근 연명치료의 실효성에 대한 질문이 늘어나고 생의 마지막을 병원 등의 시설이 아닌 자신이 살던 집에서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이어지면서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엄마도 나도 같은 바람이기에 언니에게 어떻게 어르신을 돌보고 임종을 준비했는지 물었다.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오고 형제들끼리 의견이 갈리기도 했어.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또 많은 게 우연으로 이어지더라고.” 돌아가시기 10개월 전 어르신은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암이 몸의 여기저기로 퍼져 나간 상태였단다. 한 병원에서는 치료가 힘들겠다고 하고 다른 병원에서는 항암을 세번 정도만 해보자고 했다. 병원에서는 3~6개월을 여명으로 가늠했고 항암을 하면 두달 정도 더 식사하실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이십여년 전 이미 암 수술을 받고 항암을 해본 경험이 있던 어르신은 팔순 중반에 그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도, 그렇게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뚜렷했다고 한다.

호스피스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즉 의사의 진단서를 받기 위해 조직 검사 등 고생스러운 과정을 다시 거쳐 가족들은 몇 군데 병원에서 호스피스 상담을 받았다. 처음부터 가정형 호스피스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가족이 다닐 수 있는 거리와 프로그램, 가격대를 맞춰서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병동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한 병원에서 “어머니처럼 정신이 또렷하고 스스로 걷거나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바로 가면 정신적으로 더 힘들 수도 있으니 가정형 호스피스도 한번 생각해보시라”는 제안을 받았다. 자식들이 고생할까 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던 어르신도 그때야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단다.

“엄마를 돌보면서 제일 싫어진 게 연휴야. 그 전에는 그렇게 기다렸던 연휴가 다가오면 겁부터 났어. 나중에는 연휴가 왜 이렇게 많냐고 짜증을 낼 정도였으니까.”

좋은 방문 간호사를 만난 건 운이 좋았다. 주 3회 방문을 원했지만 의료진이 부족한 탓에 2회로 만족해야 했다. 간호사는 그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욕창 방지 매트 등 다양한 간병 도구를 가져다주면서 가족이 간병할 수 있게 도왔다. 하지만 가족은 배워도 관을 꼽거나 하는 일이 미숙할 수밖에 없고 늦은 밤이나 휴일에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연락할 곳이 마땅치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상태가 위중해질수록 돌발 상황이 수시로 생기는데 방문 간호사의 휴일이나 휴가 때 의지할 곳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무작정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여러번이었단다.

가정형 호스피스를 선택해도 임종은 병원에서 하는 경우도 많다. 막상 임종이 다가오면 가족들이 당황하거나 두려움을 느껴서다. 그런데 운 좋게도(?) 어르신은 방문 간호사가 오는 날 진료를 보면서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 것 같다고 가족들의 준비를 당부했다고 한다. 언니와 식구들도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동하는 구급차에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간호사 말에 병원행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의 헌신과 의료진의 노력, 그리고 몇가지 우연으로 어르신은 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요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엄마가 원한 대로 해드려서 잘했다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버지도 그렇게 집에서 모실 수 있을까 싶어. 몸이 고단한 건 둘째치고 내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거든. 돌아가시기 3개월쯤 전부터는 모든 가족이 24시간 비상 대기 상태였어.”

언니와 같은 마음이 많아져서인지 최근 정부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위한 간호사 인력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언니 말대로 집에서 죽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우리의 죽음이 지금보다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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