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로비스트 234명 우글거린 국제회의···플라스틱 감축 또 물 건너갔다
세계 온실가스 3.4% 내뿜는 플라스틱
한 해 4억 톤 생산···70년간 200배 폭증
플라스틱 생산 규제 없이는 해결 어려워
산유국·기업 방해, 3년째 협약 지지부진
한국 플라스틱 생산 4위, 적극적 나서야
편집자주
산업화(1850~1900년) 이후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 이 수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의 마지노선으로 불립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후속으로 1.5도에 임박한 기후위기 현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폭넓게 연재합니다.

대형 산불, 극한 폭염 등 기후재앙은 이미 현실이 됐지만, 세계 공동의 합의와 노력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4%를 차지하는 플라스틱을 규제하기 위해 170여 개국 대표단이 참여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 5.2)'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15일 빈손으로 폐막했지요.
내막을 살펴보니, 회의장에는 화석연료·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 234명이 우글거렸다고 합니다. 기후 국제회의마저 기업 로비스트들이 활개를 치는 현실. '세계 플라스틱 회의'는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910130003188)
플라스틱 협약의 핵심은 '생산 규제'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1950년에 연간 200만 톤 수준이던 플라스틱 생산량은 70년간 폭발적으로 팽창해, 2022년 200배인 4억 톤으로 늘어났습니다. 지금 추세면 2060년에는 12억3,100만 톤이 될 전망입니다.
문제는 플라스틱 원재료의 99%는 화석연료고, 플라스틱 폐기물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세계적으로 단 9%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생산 과정에서 엄청난 탄소를 내뿜는 것은 물론이고, 처치곤란 폐기물과 미세플라스틱으로 자연과 인체를 병들게 하고 있죠.

이에 2022년 3월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플라스틱 생산·소비·폐기물 처리 등을 전부 다루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핵심은 생산 규제였죠. 재활용은 한계가 큰데, '무한 생산 체제'를 방치했다가는 인류가 다 함께 위기에 놓일 테니까요.
각국 대표들은 우루과이, 프랑스, 케냐, 캐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부산을 찾아 5차례 난상토론과 물밑 협상을 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정됐던 부산 회의가 합의 없이 끝나자, 이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실상 6차 회의인 5.2차 속개 회의(INC 5.2)가 개최됐고요. 하지만 '요주의 인물들'의 방해로 5.2차 회의도 허탈하게 폐막했습니다.
EU 대표단보다 많았던 로비스트들

이 '요주의 인물들', 바로 ①산유국을 비롯한 '유사 입장 그룹(LMG·Like minded Group)' ②석유·석유화학·플라스틱 업계를 대리한 로비스트들 ③반(反)기후 정책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211130005816)
'플라스틱 협약'의 주된 쟁점은 △플라스틱 원료인 1차 폴리머의 생산 감축 △유해 화학물질 및 제품 유형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등 크게 세 가지인데요. 재활용을 강화하자는 데는 각국 이견이 적지만, '생산 감축'을 두고는 박 터지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 '생산 감축 반대파'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러시아 등 산유국 중심으로 뭉친 LMG입니다. 화석연료를 팔아 돈을 버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규제가 달가울 리 없는 것이죠.
은밀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스트들도 문제입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INC5.2에 파견된 화석연료·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는 역대 최대 규모인 234명으로 한국 대표단(25명)은 물론이고,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의 최대 지지자인 유럽연합(EU) 대표단(233명)보다 많았다고 해요.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으로, 세계 플라스틱 생산국 2위인 미국마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입장이 변해 "플라스틱 생산 제한을 포함하는 협약을 거부하라"는 서한을 각국에 보내는 지경입니다.
170여 개 국가 중 강력한 협약을 원하는 국가가 EU와 플라스틱 폐기물과 해수면 상승으로 고통받는 개발도상국 등이 100개 국에 달함에도, '플라스틱 돈벌이는 계속돼야 한다'는 일부 국가들과 기업들의 욕심 때문에 해결책 마련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는 것이죠.
"한국 정부, 생산 감축 의지 보여야"
대놓고 악당 노릇을 하는 산유국 뒤에 숨어, 한국도 눈치만 본다는 비판이 큽니다.
이번 INC5.2 회의를 제네바에서 지켜본 김나라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한국 정부는 (공개 회의장에서) 소극적으로 응하고, 쟁점 조항에 대한 공개 제안도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폐회 날 정부가 '추후 협상에서 국가 간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향후 협상장에서는 생산 감축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0709510005330)
'재활용 선진국'으로 꼽히는 한국은 '물질 재활용' 비율이 27%는 되지만 떳떳하기는 어렵습니다(그린피스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태워서 에너지로 쓰는 게 아니라, 다시 플라스틱으로 쓰는 방법을 물질 재활용이라고 하는데요.

2019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량은 90.5㎏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2.4㎏)의 2배가 넘습니다. 한국은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이기도 하고요. 애초에 많이 쓰고, 많이 만드는데 '한국은 재활용 잘하니 괜찮지 않아?'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중독된 우리의 생활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실상 7차 회의인 5.3차 속개 회의 개최까지 또다시 반년 이상 시간이 훌쩍 지날 겁니다. 지구와 인류를 살릴 '골든타임'을 흘려보내는 것이죠. 인류는 과연 '당장 돈 버는 게 중요하다'는 이기심과 '당장 편리한 게 좋다'는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의 파국은 이미 경고돼 있습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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