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위장에서 나온 김치찌개…'죽어야 만날 수 있는 의사'는 죽음에서 삶을 본다 [잘생, 잘사]
<4> 죽은 사람 몸에서 찾아낸 삶과 죽음의 의미
27년간 3000건 부검한 법의학자 유성호 인터뷰
그가 14년째 매년 유서를 새로 쓰는 이유
편집자주
잘사는 것 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과제인 시대입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품위 있게 늙고 평온한 죽음을 맞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최문선 논설위원과 함께 해법을 찾아봅니다.

시신 4구를 부검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고로 죽은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서 그는 매주 두 번 시신을 검안하고 부검한다.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이야기다. 죽음을 늦추거나 피하려고 찾아가는 여느 의사와 달리, 그는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의사다. 27년간 3,000여 명이 그를 만났다.
죽은 몸이 이야기하는 것을 기어코 찾아내 사망 종류와 원인을 밝히고 사망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유 교수 일이다. 그는 14년째 매년 유서를 쓴다. 죽음과 너무 가까이 지낸 나머지 삶을 비관해서가 아니다.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 매 순간을 누리는 길이라고 믿어서다. 죽음에 무심한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기를 바라며 책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를 썼다. 책에 유서도 공개했다.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물었다.
죽음은 삶의 거울...늘어나는 고립사 시신이 말하는 것은
-봄엔 자살자 시신을 많이 부검한다지요. 얼었던 강이 녹아 시신이 떠올라서요. 어떤 사람들이 부검대에 오르는가를 보면 계절은 물론이고 사회상도 알 수 있겠죠.
“요즘은 고립사 시신이 많아요. 빨리 발견되지도 못해 부패한 채로 오지요. 10~20년 전에 시작됐고, 이제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외롭게 살던 나이 든 남성이 과음하다 혼자 죽는 장면이 떠오르나요? 최근엔 30, 40대 여성도 많아요. 사회 구조가 달라진 거죠. 부검하며 경찰 기록과 유서를 함께 보는데, 대부분 직업이 없어요. 실직이 얼마나 삶에 치명적인가를 보여주는 거죠.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 것도 요즘 경향이에요. 산재 현장에서 일했다는 건 몸이 건강하고 삶의 의지가 강했다는 뜻이죠. 그래서 더 가슴 아픈 죽음입니다. 사망자 위장에서 몇 시간 전에 먹은 김치찌개 같은 것이 나와요. 든든하게 먹고 일하겠다는 생각이었겠죠. 믿는 종교가 없지만 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는 동안 기회라는 것을 한 번도 못 가져 본 사람들을 부검대에서 너무 많이 만나서요. 신의 힘으로 그분들이 어딘가에선 예쁨 받으며 살기 바랍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죽음을 매일 다루고 시신을 정기적으로 부검하는 삶이 어떨지 잘 상상되지 않습니다.
“법의학을 전공으로 고른 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였는데, 오래 하다 보니 저 자신이 도움 받고 있더군요. 부검을 뜻하는 ‘Autopsy’의 어원은 ‘Autos(자신)’와 ‘Opsis(보다)’입니다. 타인을 부검하는 행위를 통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 죽어 있는 나를 미리 보는 일이라는 의미 아닐까요. 죽음을 자주 접할수록 역설적으로 삶을 강렬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엔 저도 죽음이 두려웠고, 어이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학대당해 죽은 아이들을 부검하다 인간에 대한 회의에 빠져 관둔 동료들도 있어요. 그러다가 만난 것이 ‘삶은 유한하기에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니 더 충실하게 살며 순간을 음미해야 합니다.”
-그런 죽음에의 성찰, 죽음에 대해 냉정해지는 훈련이 가족, 지인과의 사별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재작년 여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눈감는 순간까지 그립고 힘들 겁니다. 다만 삶엔 끝이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후회 없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안절부절못하다 떠나시게 하긴 싫었거든요. 한국에선 임종기나 그 직전까지도 환자가 치료를 받게 합니다. 그러다 중환자실, 응급실에서 고통스럽게 떠나는데, 자녀들은 그걸 효라고 여겨요. 나와 부모님, 나와 아이는 서로 연결돼 있지만, 죽음은 죽는 사람의 것입니다. 말기에 치료를 계속하는 효과와 단점, 선택지를 말씀드리고 충분한 대화를 나눈 끝에 내린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약 두 달 동안 호스피스 병원에서 어머니 인생을 함께 정리할 수 있었어요. 어머니께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여행 계획은 끝까지 촘촘하게 짜면서 생의 마지막은 왜..."

-죽음은 단지 삶의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시작하는 일이니 준비하라는 책 속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음 준비를 강조하는 이유는요.
“어떤 삶을 살았든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데, 준비가 안 돼서 삶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는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 속에 죽거나, 우왕좌왕하다 죽거나, 너무 급작스럽게 죽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요. 잘 준비해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알 수 없기에 더욱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처럼 무모해요. 남은 사람들도 힘들고요. 내 삶의 마침표는 내가 찍어야죠. 교류 없이 살다 나타난 자식이 심폐소생술 하라, 마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한국인들은 죽음을 잘 준비해서 잘(?) 죽고 있나요.
“초고령화 사회가 닥쳐서 준비가 급한데도 죽음에 대해 닫혀 있습니다. 죽음 이야기를 불길하게 여기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세주의가 강하니까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회피하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죠. 그래도 최근 들어선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여요. 나이 든 여성들을 중심으로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비율이 여성이 확실히 많아요. 평생 자신과 가족의 삶을 손수 돌본 마음으로 삶의 마무리도 직접 하려는 거겠죠. 저속노화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에요.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합니다. 여행 계획은 마지막 날까지 촘촘하게 짜면서 삶의 마지막은 왜 내버려 두나요.”
유서 쓰다 우는 사람들...좋은 죽음은 좋은 삶으로부터

#.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유 교수가 꼽은 건 글쓰기. 12월은 그가 유언 쓰는 달이다. 받아 볼 사람은 아내, 아들과 미래에 태어날지도 모르는 손자, 손녀. 기대 여명이 30년쯤 남았다고 가정하고 쓴다니, 30년 뒤에 도착할 편지다. 종이에 출력해 상자에 보관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12월에 쓰는 건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엔 어떻게 살지를 계획하기 위해서다. “내년에 죽는다면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도 고민한다”고. 14년간 쓴 유서를 전부 모아 뒀다. 시간이 흐르며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 유서에서 보인단다. 과거의 내가 대견해지기도 한다. 유서가 전 인생에 걸쳐 쓰는 나만의 저널인 셈이다.
유 교수 유언은 구체적이다.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가족의 부담과 아픔을 덜어 주려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시설 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죄책감이나 망설임 없이 시설로 보내 주세요”, “입맛이 없어도 끼니를 거르지 마세요”. 장례 준비도 철저하다. “결혼식 때 입었던 양복과 구두를 신겨 화장해 주세요”, “술을 원하는 분에겐 화이트 와인을 준비해 주세요”. 결국은 그리움, 위로, 사랑의 말이다. “어쩌면 다시 만나겠지요. 저 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즐겁게 살다 오세요. 당신들의 행복한 웃음이 저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유서가 비장하기보다 따뜻합니다. 가족에게 전하는 당부 못지않게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삶을 스스로 평가하는 내용도 많고요.
“‘아파트는 첫째가 갖고, 현금은 막내가 가져라’ 유의 전달사항은 본질이 아니에요. 죽음을 상정하고 나 자신을 글로 기록해 보는 과정과 행위가 중요합니다. 유언을 써보라고 하면 ‘이렇게 살지 말 걸 그랬다’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고 우는 분들이 있어요. 유언 쓰기가 지금의 삶을 반성하고 바꾸는 계기가 되는 거죠.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적다 보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해져요. 평생 욕하고 때리기만 하던 아버지가 죽을 때 ‘사실은 너희를 사랑했다’고 한다면 받아들여질까요. 죽음과 삶의 준비는 별개가 아닙니다. 잘사는 게 곧 좋은 죽음 준비예요.”

-재산 문제를 유언으로 정리하고 재정적 준비를 할 필요를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한 건 왜인가요.
“죽음과 돈을 연결하는 것은 어쩐지 불경스럽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이 쓴 유서를 보면 굉장히 물질적이에요. 돈 이야기가 많습니다. 죽음 이후에 돈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정말 많아요. 돈 때문에 가족 시신을 인수하지 않기도 해요. 존엄성과 품위를 저버리라고 돈이 부추기는 거죠. 거꾸로 돈이 삶과 관계를 정리하려고 시도하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 절연한 아들에게 꼭 전해달라면서 '어릴 때 때려서 미안하다’는 유언과 돈을 남긴 어머니가 있었어요. 잘못을 비는 마음 아니었을까요. 돈과 삶,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돈 문제는 확실히 해둬야 해요.”
-누구나 ‘좋은 죽음’을 바라지만, 획일적 죽음을 강요하는 말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좋은 죽음이란 것이 있을까요. 있다면 좋은 죽음을 위해 뭘 해야 할까요.
“부담스럽다면 말 자체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죠. 좋은 죽음 대신 ‘이만하면 괜찮았던 삶‘을 꿈꾸면 어떨까요. 제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괜찮았던 아들, 괜찮았던 남편, 괜찮았던 아빠’가 되는 거예요. 그 총합이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겠죠. 어머니께도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셨어요’라고 마지막에 말씀드렸고요. 뭔가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죽음 준비와 삶의 준비는 같은 거예요. 좋은 죽음을 원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좋은 삶부터 준비하세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713420001715)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민채윤 사원 0125mcyy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김건희도 실버마크 달라" 버티던 트위터, 용산 요구 후 규정 바꿔 | 한국일보
- 54년의 기다림… 죽은 줄 알았던 8세 딸, 환갑 넘어 돌아왔다 | 한국일보
- 고양이 탈 쓴 채 흉기난동 20대... 체포되자 "야옹, 말할 수 없다냥" | 한국일보
- 가수 싸이, 의료법 위반 혐의 입건… 소속사 "수면제 대리 수령" | 한국일보
- 반려견에 마취 없이 용 문신한 中견주…"우리 개는 아픔 못 느껴" | 한국일보
- 이진숙 "내가 '빵진숙'된 이유는... 민주당의 작업 때문" | 한국일보
- [단독] 이 대통령 "나도 가짜뉴스 피해자"... 與 지도부 만나 '징벌 손배' 도입 강조 | 한국일보
- '트럼프에 선물' 수제 펜 관심 폭주… 아이디어 낸 탁현민 "기분 좋다" | 한국일보
- 한덕수 영장 기각... 국무위원 수사 암초 만난 특검 | 한국일보
- [단독] '리스크는 한수원 몫'...웨스팅하우스의 무리한 요구가 합작회사 멈추게 했다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