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리스크는 한수원 몫'...웨스팅하우스의 무리한 요구가 합작회사 주춤하게 했다

오지혜 2025. 8. 2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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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웨스팅하우스 합작회사 논의 불발
웨스팅하우스 과한 요구하고 나서
불공정 논란 덮으려다 혹 붙일라
원전업계 "신중한 접근 필요" 강조
미국 웨스팅하우스 전경. 웨스팅하우스 홈페이지 캡처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관계자들이 미국을 찾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을 모았던 웨스팅하우스(WEC)와의 합작회사(조인트벤처·JV) 설립이 현지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WEC 측이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요구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WEC는 원전 건설 과정에서 공사가 늦어지거나 해서 비용이 늘어나면 한국 측이 책임을 지게끔 하는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원전업계에서조차 한수원이 또 한번 무리한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나왔던 터라 논의 무산을 다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수원과 원전업계 일부 인사들은 황 사장 방미를 앞두고 합작회사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시장을 확대한 것이라서 '굴욕 합의' 논란을 잦아들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때문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섣불리 나섰다가는 제2의 불공정 합의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리스크는 한국이 가져가라는 웨스팅하우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조감도.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27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23일 방미길에 오른 한수원 관계자들은 25일 WEC 측과 만날 계획이었지만 사전 협의 단계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히면서 없던 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수원은 1월 WEC와 글로벌 합의 이후 미측과 합작회사 관련 논의를 물밑에서 진행했다.

문제의 핵심은 합작회사 설립에서 한수원이 어디까지 책임을 지느냐는 것. 미국 측이 원전 관련 공급망이 없는 WEC는 기초 설계를 하고 한수원이 설계·조달·시공(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총괄 사업자로서 사업상 위험을 부담하게 되는 방식을 제안해서다. 여기서 리스크는 건설 지연에 따른 비용 증가 등을 의미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공사비 증가로 한국전력과 국제중재법원에서 법적 다툼을 하고 있는 한수원에는 더 꺼림칙한 제안이다. 한수원은 결국 WEC의 요구를 받기 어렵다고 답했고 양측은 대화를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왜 무리하게 요구하나

그래픽=박종범 기자

WEC 측이 이 같은 요구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과거 실패 경험과 현재 미국 내 대형 원전 생태계에 대한 분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 WEC는 앞선 30년 동안 원전 건설이 없던 미국에서 AP1000 기반의 'VC 서머 2·3호기'와 '보글 3·4호기' 건설에 나섰다. 이때 당초 계획했던 일정보다 긴 시간 공사가 늦어지고 초과 비용 발생으로 2017년 파산 보호 신청을 했고 이후 회사는 팔렸다. 그 뒤에도 미국 내 원전 건설은 한동안 뚝 끊겼다. 즉 아직 사업적 위험성이 크다고 보고 이를 피하고 싶은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한수원 측이 불공정 합의 논란이 일면서 위기에 빠지자 그 탈출구로 합작회사가 등장한 점도 WEC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황주호 사장은 WEC와의 불공정 합의 논란에 대해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웨스팅하우스는 공급망이 없어 (시장에서) 포션을 가져가도 공급망 있는 쪽에 의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협력의 방향이 합작회사 설립으로 잡히면 우리 측이 포기한 미국·유럽 시장 진출도 가능해져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일부 원전업계 인사들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즉 합작회사가 더 급한 쪽은 한수원이었다.


불공정 논란 덮으려다 혹 붙일라... 원전업계 "신중해야" 주문

황주호(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철규(왼쪽)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9일 올해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 관련 대화를 마친 뒤 산자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업계를 중심으로 합작회사 설립에 한 차례 제동이 걸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불거진 불공정 합의 논란을 잠재우고 성과를 보여주려고 웨스팅하우스의 제안을 들어주는 식으로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함께 꼼꼼하게 리스크를 검토하고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원자로인 APR 계열 원전 수주를 담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합작회사가 AP1000을 짓기로 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득 될 게 없다는 점에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APR은 공급망이 한국 기업 위주로 구성돼 있지만 AP1000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팀코리아 전체의 이익으로도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게다가 AP1000은 웨스팅하우스를 위기로 몰고 간 이력이 있어 (미측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한수원이 손해를 크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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